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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Feb 24. 2024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31) 20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모자가 우연히 만나서 할 이야기

* (글감에 추가되어 있는 조건) 20년 동안 만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지냈던 어머니와 아들이 12월 어느 날 우체국에서 양손 가득 소포를 들고 서 있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할까?



    밀라는 어깨로 우체국의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12월이었다. 우체국은 손에 무엇인가를 든 사람들도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 어딘가로 보내어지겠지, 라며 밀라는 잠시 우체국 안을 훑었다. 손에 든 것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알록달록 꾸민 카드 한 장을 팔랑이는 꼬마도 있었고, 깔끔하게 포장한 선물상자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중년의 부인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양 손 가득 봉투를 든 채 얼굴과 어깨 사이에 휴대전화를 끼고 통화하고 있는 정장 차림의 사내도 있었다. 밀라는 그 남자를 보고 '연말이니 거래처에 세금계산서라도 보내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와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12월이었다. 크리스마스, 눈, 반짝이는 거리, 그런 것들이 사람들이나 그들의 마음, 또는 좀 더 내밀한 자신을 어딘가 의탁할 곳으로 보내게 하는 그런 계절이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혼자 보내는 시간을 참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거리에 넘쳐 흘렀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어딘가 먼 곳으로 가야만 할 때 모이는 곳이 바로 이 우체국이었다. 지만 정장 입은 사내는 그와 그의 마음과 무관한 서류 뭉치들을 보내러 우체국에 들어와 있는 듯 보였다. 마치 밀라 그녀처럼. 밀라는 지금 그녀 자신으로부터 멀리 떼어내고 싶은 것들을 양손 가득 우체국에 들고 들어온 차였다.

    그녀는 들고 있던 소포들을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잠시 내려놓았다. 밀라는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포들이 땅에 내려놓아지는 순간, 무거운 열의 덩어리가 정수리에서부터 목덜미, 어깨, 그리고 척추와 허리에서 엉덩이까지 이르는 그녀의 몸 전체를 훑고 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분명한 느낌 같기도 했다. 그 열감은 엉덩이께를 잠깐 맴돌다가 금새 배 아랫배 쪽으로 쏟아져 나갔다. 밀라는 자신의 음부 쪽을 내려다 보았다. 빠져나가는 열감이, 바짓가랑이 근처에서 어떤 아지랑이 같은 형상으로 맺혔다가 흩어졌다. 그녀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테이블 옆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달 전부터 그녀는 생리가 멈추었다. 병원에서는 완전한 폐경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폐경 후에도 임신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들었지만 그녀는 이제 드디어 대리모라는 일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이 달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폐경기에 임신을 하면 유산 위험이 높다고 하였다. 착상 시술이 고역스러운 것은 일찌감치 익숙해져 있었지만 고객들에게 큰 위약금을 토해내야 하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 돈은 모을 만큼 모았고 더이상 그런 리스크는 지고 싶지 않았다.

    이십년, 길다면 긴 세월이었다. 양 손가락, 양 발가락을 모두 합쳐야 셀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무살 때부터 시작한 일이었고 이제 그녀는 마흔이었다. 밀라는 매 출산마다 아기를 받아 안았을 때 힘주어 동그랗게 옹그린 아기들의 손을 억지로 펼치던 기억이 났다.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나면 그녀가 키우겠다는 계약 조항이 그녀가 이 업계에서 내세우는 강점이었고 그 덕에 부모들은 그녀에게 다른 대리모보다 거액의 비용을 지불했다. 그래서 그녀는 손가락 발가락이 개씩 제 모양으로 붙어있는지 필사적으로 세었다. '이십'이라는 숫자에 집착해온 시간이었다. 이제 그 집착을 버릴 시간이었는데, 그것 또한 이십년이라는 시간 속의 숫자로 서로 들러 붙어있었다.

    밀라가 멍하니 우체국 안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서류봉투를 잔뜩 들었던 그 정장 입은 남자가 힐끗 그녀를 바라보더니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밀라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풀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그 많던 서류봉투가 사라져 있었다. 그가 그녀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 저 남자는 서류를 모두 보내버렸나 보구나'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여기까지 온 것은 이쪽 의자에 앉으려는 것인가보다 했고 밀라는 엉덩이를 움직여 옆에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예상을 깨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보내실 소포가 많아 보이네요. 좀 도와 드릴까요?"



* 대리모로 살아가던 한 여성이 살해의 위협을 받는다. 그녀에게 대리 출산을 의뢰한 재력가가 자신의 치부를 없애기 위해 킬러에게 그녀를 살해해 달라고 의뢰한 것. 그런데 그 킬러는 사실 그녀가 오래 전에 낳았던 아이였고, 둘은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알게 된다라는... 좀 뻔한 이야기? 근데 끝까지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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