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청소부로 일하는 여자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도, 가랑비도 아닌 적당히 내리는, 그래서 당연하게 하루 종일 내릴 것처럼 생각되는 그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설풋 잠에서 깬 몽롱한 의식 속에서 나는 누워있던 킹 베드 옆에 축 늘어진 커튼을 살짝 제껴서 바깥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쉣... ..."
욕지거리가 내쉬는 한숨처럼 터져 나왔다. 베란다의 방음 처리를 완벽하게 해놨음에도 비가 오는 느낌은 창문을 넘어서 전해져 왔다. 언제나 서늘하고 기분 좋게 몸의 잔털을 훑어주는 바스락대는 이불의 촉감이 사라졌다. 이런 날 사람들은 분명 우산이며 신발을 털지도 않고 빌딩에 들어와서는 부주의하게 회사 로비 곳곳에 흙탕물을 뚝뚝 떨어트릴 것이다. 나는 더럽게 더러운 자루 걸레로 로비를 하루 종일 훑어야 할테고. 나는, 이런 비오는 날이 싫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더욱 싫어졌다. 나의 먹잇감인 회사에서, 그 회사의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한 한달 전부터.
시작은 이러했다.
전날 종결한 프로젝트의 여운을 느끼며 내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어느 날이었다. 두 면이 통유리로 되어 전망이 넓게 트인 사무실에서 나는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있는 이십층 짜리 빌딩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내가 넘어뜨린 ㄱ회사의 사옥이었다. 빌딩의 이마에는 노란색 글씨의 회사 로고 -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 낡은 글씨체라서 영 볼품이 없었다 - 가 하나 붙어있었는데, 이제 다음 달이면 그것이 철거되고 빌딩은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ㄱ회사는 사장의 방만한 운영으로 경영 실적이 엉망이었지만 탐나는 특허 몇 개로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기업이었다. 사장만 회사에서 쳐 낸다면 비싼 값에 되팔 수 있는 맛있는 먹잇감이었으므로 나는 정석적으로 접근했다. 이중 장부, 배임 행위, 사장의 개인적인 비리나 추행 등을 비롯한 몇 가지의 내부 정보들을 사들여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ㄱ회사의 경영진을 어제 이사회를 통해 모두 날려버린 것이다. 턱살이 보기 싫게 늘어져 동화책의 타락한 마법사를 연상시키던 탐욕스런 인상의 늙은 사장은 내 이름에 욕을 섞어가며 고래고래 쉰 소리를 지르다가 회의실에서 끌려나갔다.
"다음부터는 회의 전에 미리 귀마개라도 좀 갖다두라구. 완벽한 줄 알았는데 이런 걸 잊다니 말이야."
내 옆에 앉아있던 우리 본부장은 회의실이 조용해지자 피식 웃으면서 농짓거리를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그저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의 농담은, 이번에도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칭찬의 다른 표현임을 알았으므로.
* 기업사냥꾼으로 일하는 엘리트 여성이 먹잇감이 된 회사의 내부 정보를 빼내기 위해 그 회사의 청소부로 일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 뻔한 일일 드라마용 소재로 쓸 수 있을 듯?
* 몇 일간 글을 못썼다. 하루에 30분을 내지 못하는 건 내가 게을러서일까, 아니면 정말 시간이 없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