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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Mar 04. 2024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34)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게 분명한 임무로 떠나는 여자 군인

    클레어, 아무래도 넌 영화를 너무 많이 본거야.

    여행갈 때 언제나 가지고 갔던 작은 베개. 그것을 배낭에 욱여넣을 때 나는 혼잣말을 하며 잠깐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바람을 넣어서 부풀리는 그 베개는 높이가 적당했고 얼굴에 닿는 부분이 부드러운 벨벳 천으로 마감이 되어있어 어디서건 잠깐씩 눈을 붙일 때 쓰기 좋았다. 나는, '잔다'는 생명의 행위에 아직도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배게 외에도 속옷이며 육포같은 간단한 씹을거리 등이 배낭에 함께 들어있었다. 어쨌든 일주일 간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니 반사적으로 꾸린 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법 두툼한 배낭이, 저 아래로 내려간 뒤에는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조금씩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볍게, 그 양감을 잃어갈 것이다. 나는 창 밖으로 쉴 새없이 흘러가는 PT357의 정경을 힐끗 바라보고는 잠시 잊고 있던 그 사실을 다시 스스로에게 깨우쳤다. 나는 도대체 왜, 깨끗한 새 브래지어며 탐폰을 이 짐에 넣은걸까.

    한 시간 뒤면 착륙선이 발사될 예정이었으므로 이제 십분 뒤면 짐 싣는 것을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배낭의 입구를 잠그는 끈을 단단히 동여맨 후 진공커버를 씌워 압착시켰다. 쉭 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배낭이 오그라들었다. 그 소리가 나에게는 인생의 군더더기를 털어내 버리는 어떤 신호음처럼 들렸다. 그와 동시에 지금 배낭에서 빠져나간 한 줌의 산소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이 분명 다시 찾아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었다. 이제 저 지옥 같은 행성으로 이제 낙하하고, 그리고 다시는 이 모선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그 결정을.




*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임무라는 말에, 강대한 적과 싸우거나 하는 설정보다는 인간이 이겨낼 수 없는 환경조건 속에 투입되어야 하는 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억지로 드라마를 만들지 않아도, 안티 히어로 없이도 인간이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이 그런 설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삶을 표상하는 물건들을 꾸리는 것이, 목전에 다가온 죽음을 거부하는 행위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며 도입부를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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