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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촉촉 Jul 12. 2021

나이, 배움

먼-데이 에세이 26. 나이

나이가 몇 살이세요?

저... 89년생이요


누군가 나이물을 때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연도로 답한다. 그리고 말하고 생각한다

'121에서 89를 빼고.. 1을 더하면..  헉, 나 벌써 33살이야?


 중학교 때 엄마에게 보낸 인생 계획서에 따르면 25살엔 대기업 취직, 28 정도엔 엄마를 세계여행을 보내주고, 31살에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니 지금쯤 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무엇 하나 이룬 게 없다. 어렸을 땐 33살이 엄청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난 허우적대는 중이다.


나는 지금 계약직 사원이다. 이전 글에 쓰기도 했지만 연극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 기존의 경력을 포기하고 사원으로 입사했다. 기존의 경력이 엄청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안정적인 직장이었으니 큰 결심이었다.

그러니, 지금 매 순간 새로운 것을 배우고, 노력을 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나를 알게 모르게 옭아매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이다.  


예전 직장에선 내 나이에 대한 감각이 거의 없었다. 워낙 인사 적체가 심한 직장이라 내가 입사한 이후로 후배가 한 명정도 밖에 안 들어왔었고, 거의 7년간 막내로 회사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받고, 젊음에 대한 부러움을 받으며 살았다. 그리고 회사 밖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때도 취미로 배울 때에는 나이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근데 정작 내가 진로를 바꾸려고 하니 꽤나 많은 제약이 뒤따라왔다.

일단 어떤 산업에서든 신입은 대부분 20대에 포진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30대의 초심자라면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최소 5년에서 많게는 10년 정도까지 늦은 출발인 것이다. 같은 또래에 경력자인 누군가와 실력이 비교된다면 그것은 꽤나 자괴감이 들 것이다. 또 일종의 편견이지만,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을 것 또는 실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내 사정이 어떻든 30대의 실수는 너그럽게 용인되지 않는다. 게다가 또 우리나라는 나이에 한 서열문화가 강해서 나이 많은 후배를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신입을 뽑을 때, 나이는 꽤 큰 영향을 미친다.


 이건 단순히 사무직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배우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요시오이다가 쓴 '보이지 않는 배우'라는 책에 보면 '제이미'라는 일본 노(일본의 전통극의 한 형태)의 대가가 말하길 '배우는 10대 초반에 시작해서 10대후반의 신체 성장기를 겪고 20대 중후반에 (신체) 기술적 완성을 얻고, 30대의 연기적 완성을 얻는다.'고 했다. 그래서 만약 30대까지 재능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이후는 더욱 큰 성장을 얻기는 힘들다고 했다. 흠.. 젠장.

물론 저 제이미는 50대가 평균 수명이던 시절의 사람이니 최근에는 그 기한이 조금은 늘어났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예술분야에서 10대, 20대부터 꿈을 정하고 계속 정진해온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배우들은 워낙 늦은 나이에 빛을 보는 사람도 많지만, 그런 대기만성 사람들 역시 어린 나이 때부터 경제적, 상황적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꿈을 위해 계속 그 업계에 종사해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10년, 20년 해온 결과물을 내가 지금 뒤늦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연기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나이가 들면 억지로 가르칠 수 없다. 다만 필요하다면 스스로 배울 것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 틀을 깨기 어렵다. 의심도 많고, 자기 방어도 심하고, 쉽게 수용하지 않는다."
사실 나이 때문에 어려운 점은 사회적 편견과 절대적 시간의 차이도 물론 있지만, 가장 큰 건 자신의 마음가짐인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남들한테는 이상을 위해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다고 기세 등등하고 굴었다. 그리고 알량한 지식으로 내 나름의 계획을 짰다. 그런데 정작 극단의 막내로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며 허드렛일이나 하긴 싫어서, 그나마 남보기에 조금은 괜찮아 보이는 대학원으로 내 몸을 숨기려는 것은 아닐까. 


 40대의 나이에 영화제의 신인배우상을 휩쓴 강말금 배우와 60대의 나이에도 연극과 드라마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는 남명렬 배우가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30대에 각각 회사원과 영업사원이었던 과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 다 꽤나 긴 무명과 가난한 연극배우 시절을 버텼다. 그들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심지어 나이도 내려놓고 무無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이후에 그들의 경험이 다른 전공 배우들과는 다른 연기의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30대다. 나는 살 날이 살아갈 날이 훨씬 많고, 배운 것보다 배워야 할 것들이 훨씬 많다. 그런데 남이 정한 '나이'에 대한 사회적  위치로 스스로의 한계를 만든 것은 아닐까. 나이는 그냥 시간가면 먹게되는 거지, 내 노력으로 얻은게 아닌데 말이다.



출처 : http://esdmnews.com/board_view_info.php?idx=64947&seq=153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3901800&ctg=1502




먼- 데이 에세이란?

'먼'데이마다 애'먼' 사람들에게 글을 뿌리는, '먼'가 할 말 많은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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