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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촉촉 Jul 05. 2021

무엇이든 평가해드립니다
객관적으로??

먼-데이 에세이 25. 평점

우리는 항상 사회적 평가를 하고, 사회적 평가를 당한다. 학생 때는 시험으로 평가를 당했고, 선생님에 대한 교사 평가를 했다. 취업준비생 시절에는 직장에 적합한 사람인지 알아보는 시험과 면접을 거쳤다. AS같은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일 때는 서비스 만족도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친절함을 수치화해서 평가하기도 한다. 


사실 비교를 통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일 것이다. 예전엔 그 비교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얻기 힘든 경험이었으나, 지금은 자신의 경험은 아니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타인의 경험으로 쉽게 비교해볼 수 있다. 오히려 온라인 구매가 늘어나면서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리뷰와 평점은 아예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물론 이런 평점 시스템은 좋은 점도 있다. 공급자 입장에선 품질이 좋다면 추가 마케팅 비용 없이도 좋은 리뷰를 통해 입소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소비자의 직접적인 평가를 확인함으로써 품질의 개선을 꾀할 수 있다. 소비자 역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추후 더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고, 또 좋지 않은 품질의 상품을 걸러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기서 평가대상은 물품이나 재화뿐만 아니라 노동의 '서비스'도 포함된다. 


그러나 평가대상에게 '평가'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가 학생일 때, 교사 평가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많은 교사들의 반발이 있었다. 대표적인 반대 이유는 교권하락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학생의 입장이었던 나는 그들의 우려가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오히려 지나친 폭언이나 체벌 등을 걸러낼 수 있는 인권의 최소한의 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장인으로서 업무평가를 받는 입장이 되자 그들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평가를 한다는 것은 분명 평가를 당하는 사람의 우위에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평점은 권력이 된다.


 그나마 교사 평가나 사내 업무 평가 등은 실제 경험과 일정기간의 성과를 누적해서 확인하므로, 평가 결과에 대한 상호 간의 신뢰가  있다. 그런데 최근 플랫폼 노동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플랫폼 노동관계(Platform Labor Relations)란 무수하게 많은 개인과 사업체들이 인터넷이나 특정 사이트를 통해 고객과 노동을 제공하는 관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일상생활에 깊게 들어와 있는 '배달의 민족' 같은 음식 배달, '카카오 T대리' 같은 대리운전, '숨고' 같은 특수 노동 제공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개별로 맺게 되는 노동관계는 대부분 일시적이며, 중개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기준 등이 마련되기 어렵다. 결국 우리가 평소에 가졌던 편견, 개인적 호불호 등 자의적이고, 개별적인 기준에 의한 평가가 이뤄진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마치 객관적인 기준인 양 수치화되어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평점 시스템의 기반엔 소비자들이 '상식'선에서 평가를 할 것이란 기대가 있곤 하지만, 사실 그 '보통'과 '상식'을 깨는 사람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혹시 모를 진상을 만나지 않기 위해, 노동 제공자는 항상 과잉친절을 제공해야 하는 피로감이 쌓인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태스크래빗(Taskrabbit)을 쓴 경험을 이야기 해준 적이 있다. 태스크래빗은 일을 대신할 사람을 구해주는 일종의 구인구직 사이트다. 청소 같은 단순노동부터 도배나 배관처럼 전문적인 노동까지 종류는 다양하며, 공급하는 개인이 그 가격을 매길 수도 있고, 반대로 수요자가 원하는 가격에 맞춰 노동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서비스를 공급받고 나면 그 노동자를 평가하게 되는데, 그 평점이 추후 다른 소비자들의 선택의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 사람들은 좋은 평점을 얻기 위해, 지나친 노동조건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친구가 이사를 하며 인테리어 업자를 고용했는데, 그 분이 사소한 실수로 다치자 평점만은 깎지 말아 달라며 애원했다고 한다. 제공되는 서비스의 문제가 있던 건 아니었는데 혹시 내 친구의 마음이 변할까봐, 자신의 몸보다 평점을 신경 썼다는 것이다. 그 애원이 내 친구에겐 오히려 섬뜩함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꽤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우리나라도 AS 서비스 기사님들, 은행 창구 직원이나 콜센터 상담사 분들에게 꼭 한 번씩 평점을 부탁하는 말을 듣게 된다. 과도하게 친절한, 가끔은 비굴해보이기도 하는 그들의 태도는 그들의 정신적 노동을 가늠케 한다. 사실 실제로 우리의 손가락 몇 번에 그들의 급여가 왔다 갔다 한다. 그럼에도 소비자는 아무런 제재 없이 너무나 쉽게 그 사람의 꼬투리를 잡을 수 있고, 그게 마치 권리인 양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결국 상호 거래가 아닌 한 쪽이 호혜를 베푸는 양 평가를 내려 주는 것이다. 


얼마 전 쿠팡이츠에서 진상 손님에 시달리던 점주분이 뇌출혈로 쓰러져 결국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봤다.  아마 식당의 실수로 새우튀김 한 조각을 받지 못한 그 손님은 튀김 하나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토로하며 당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앞세우며 평점 1점을 주었다. 0.1점에도 휙휙 뒤바뀌는 순위에 평점관리에 신경 쓰던 점주에겐 끔찍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부분 환불을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가시 돋친 말로 점주를 괴롭히고 전체 환불을 요구했다. 결국 그녀의 뇌는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이후 그 진상 손님에 대한 성토와 함께 그것을 막지 못한 쿠팡이츠 본사 측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리뷰와 평점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도 본 적이 있다. 물론 평점 자체의 순기능도 있으니 무조건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통제가 되지 않을 때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분명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사람이 서비스를 평가할 수는 있어도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 사회여야 한다.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23960392

플랫폼 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하여 -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먼- 데이 에세이란?

'먼'데이마다 애'먼' 사람들에게 글을 뿌리는, '먼'가 할 말 많은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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