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에세이 24. 대화법
솔직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그렇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솔직하게 살 수 있을까? '라이어 라이어'의 주인공과 '정직한 후보'의 주인공들은 그 거짓말로 사회생활을 잘~했다. 물론 그 처세용 거짓말들에 상처 받은 주변 인물의 기도를 들어주신 신 덕분에 결국엔 거짓말을 못하는 상황이 오긴 했지만 그들이 각각 잘 나가는 변호사와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윤활유 같은 거짓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 아득바득 살진 않지만, 나도 소소한 거짓말을 했다. 이전 회사를 때려치울 때 나의 꿈 때문에 그만두고 더 좋은 자리를 찾았다고 했지만 사실 제일 큰 건 사람이 싫어서였다. 그리고 이직할 회사에 면접 볼 때도 이 회사에서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하겠다 했지만 거짓말이다. 난 이 회사 얼른 때려치우고 빨리 딴 거 하고 싶단 생각에 가득 차 있다. '솔직히' 오늘도 외근을 나갔다가 눈치 보며 한 30분은 천천히 들어갔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진 않는다. 굳이 거짓말까진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에선 적당히 꾸밈과 가림이 필요하다. 왜냐면 사람은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고, 그것이 항상 이타적이거나 선하지 않다. 그럴 경우엔 진의를 알아서 더 좋아질 게 없고, 오히려 마음을 숨기는 것이 사회적 배려일 수 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서 대화 상대방에게 서로에게 상처를 준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도, 돌려 말하면서 속내를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나는 A가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근데 xx 씨가 B가 좋다는 거지? B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라는 식으로 상사가 말한다. 그랬을 때, B로 추진하면 큰일 난다. 그때는 A로 해야 한다. 그의 진의는 A였다. 사회 초짜였을 땐, 정말 몰라서 B로 추진했다가 A로 급하게 선회한 적도 많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의 짬이 차니, '저렇게 말하면 A를 말하는 거군.' 란 판단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말하면 답답하다고 느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거지? 나는 의견을 말하는 것은 사회적 배려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룹이라면 더더욱!! 간단명료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헷갈리지 않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돌려 말하기를 잘하는 어떤 상사와 같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나름 존경하고, 또 능력도 있는 분이셨다. 그렇지만 나는 저 돌려 말하기와 모호한 말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사건이 터졌다. 서로 문장의 해석에 좀 이견이 있었는데, 저 돌려 말하기에 속아서 내 의견을 받아들여준 줄 알고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은근히 다시 권유하는 상사를 보게 되었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물론 내 의견이 맞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부분도 있다. 이건 내 잘못도 있다. 선호의 차이일 수 있었고, 심지어 내 의견이 틀릴 수도 있는데도 그때의 난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배신감이 너무 컸다. 차라리 그가 처음부터 내 의견이 틀렸다고, 자신의 의견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를 잠깐 탓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가 '솔직'하지 않아서 나는 상처 받았다.
그래서 하면 안 되는 일을 했다. 결국 나는 상사에게 꽤나 당돌하게 행동하고, 아예 그 은근한 권유를 못 알아듣는 척해버렸다. 오히려 '솔직'하게 말했다. 당신의 말하기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는 굉장히 상처를 받은 듯했다. 나의 직설적인 말들이 그를 당황시켰다. 그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돌려 말하기는 나를 위한 배려인 듯했다. 아마 반복해서 말하면 자신의 생각에 감화되어, 자신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되는 이상적인 의견 교환을 꿈꿨던 듯싶었다. 한참 어린 내가 던진 당돌함에 그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나와 그 상사는 계속 일은 같이 해야만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언쟁이 있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