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먼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촉촉 Jun 14. 2021

새로운 삶을 주는 죽음

먼-데이 에세이 23. 장기기증

피곤한 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뭔가 몸이 찌뿌둥해서 만세 하듯 팔을 추켜올렸다. 그런데 손목이 닿았는지 맥박이 쿵쿵 거리는 소리가 베갯잇을 타고 내 귀에 들렸다. 툭.. 툭.. 툭 일정한 속도로 뛰고 있었다. 처음엔 소리라는 개념이 없었다. 너무나 내 안에서 들린 소리 같아서, 그러다 팔을 내렸다. 그랬더니 그 소리는 사라졌다. 그래서 팔을 번쩍 들어서 다시 맥박 소리를 들었다. 그래 이게 맥박이구나 하는 인식이 그제야 들었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뛰고 있다.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 정동극장에서는 1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한참 공연 중이다. 이 공연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이 극은 시몽 랭부르가 서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뇌사상태에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무대에 올라선 배우는 24시간 동안 그의 심장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을 표현한다. 처음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부터 그의 어머니, 그의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와 장기이식 대상자, 장기이식을 집도하는 의사 등등 남녀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인물들을 한순간의 표정과 목소리 변화, 신체의 활용으로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물론 이 극은 배우의 연기를 즐기기에도 너무너무 매우 좋은 극이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1959년 피에르 몰라레의 논문 이후, 의학계는 심정지가 죽음의 신호가 아닌 뇌 기능의 정지를 죽음으로 판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몽의 심장은 뛰고 있었고, 그의 혈색은 따뜻했지만 그는 죽음으로 판명받았다. 고민하던 부모는 결국 장기적출에 동의한다. 그러나 엄마 '마리안'은 그 결정을 해놓고도 번민하며 아들을 잃은 슬픔에 절망에 빠진다.


늦은 밤, 생애 처음 장기적출 수술에 투입된 간호사는 생각한다. "나는 수술실에 누운 사람을 살리는 수술만 해왔는데......... 아니야.. 오늘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저 머뭇거림 속에 있는 말은 결국 역설적이게도 수술대의 사람의 심장을 멈춰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뇌가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는 심장은 뛰고 있는데 말이다.


또 심장을 받게 된 수혜자 '끌레르'도 생각한다.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자신의 이 아픈 몸을 고칠 수 있는 것은 기쁘지만, 자신이 심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즉, 다른 사람의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식을 받게 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듣고도 이런 아이러니 탓인지, 심근염 탓인지 그녀는 허물어지듯 땅에 주저앉고 만다.


사실 장기기증은 그런 것이다. 결국 내 눈앞의 누군가를 물리적으로 잃어야 한다. 뇌사로 인해 이미 예정되어 있는 죽음이라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토마 레미주' 역시 가족들에게 이식을 강권하기보다는  “중요한 것은 부모님 생각이 아니라 시몽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생각이었을까입니다.”라고 충분히 거부할 수 있는 자율을 준다. (프랑스는 특별한 의사표현이 없으면 장기의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장기이식 수술을 보며 '토마 레미주'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수선이라는 것은 고쳐서 더 나아진다는 표현이다. 나는 이 표현이 장기이식을 통해 그 사람이 재창조되는 가능성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장기 이식은 사람을 살리는 죽음이다. 그래서 그 끝은 다시 삶이다.


얼마 전 아는 분이 간단한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고 코마 상태에 빠졌다. 비록 몇 번 인사를 나눈 정도였지만, 젊고 건강한 남자분이었던 터라 그 일은 꽤나 충격이었다. 그를 아는 이들 모두 며칠간 기적을 바랐지만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며칠 후 뇌사판정을 받아 그의 장기가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졌다. 그와 친한 이를 통해 전해 들은 그의 아버지의 말이 있다.

그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전보다 아주 많이 행복하게 오래들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기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야 아들이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우리 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그가 남긴 새 삶들이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출처 :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613507581

https://www.jeongdong.or.kr/portal/bbs/B0000252/view.do?nttId=5228&menuNo=200002


먼- 데이 에세이란?

'먼'데이마다 애'먼' 사람들에게 글을 뿌리는, '먼'가 할 말 많은 사람의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명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