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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촉촉 Aug 30. 2021

지식의 가격

먼-데이 에세이 31. 도서정가제

이전 직장의 디자인팀 부장님과 했던 대화다.


"요새 사람들은 다 스마트폰만 보지. 지하철만 가도 고개를 푹 숙이고.. 참 문제야"


"그렇죠. 물론 저도 그렇지만.."


"책을 읽는 사람도 있어. 그런데.."


책 종류가 자기 계발서 위주라든가 심심풀이 책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다 빌려봐. 어딜 가든 도장이 콱 박혀 있는 책만 본다니까."

"책이 살만한 가치를 못 느끼는 거지. 아니 누군가가 만든 생각을 돈 주고 사는데 인색한 거지."


2015년에 그 대화를 듣고 그렸던 그림일기



그 당시는 사회 초년생이라 책을 사기보다 빌리는데 익숙하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이 과연 내가 그들의 생각을, 지식을 제 값 주고 사는 것일까?

거기서 얻어진 지식이 정당한 내 것일까?

라는 지식의 가격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 이후로도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렸다. 심지어 지난 주말에도 도서관에 갔다. 하지만 책을 구매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아직 도서관에 없거나, 예약이 꽉 차있는 신간을 원하는 경우도 있었고, 외우거나 기억할만한 구절을 책에 메모하는 버릇도 생겼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월급이 늘고, 체력은 줄어 도서관에 가는 수고를 줄이려 한 것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콘텐츠를 사는 비용 자체가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비디오와 만화대여점은 동네마다 있었다. 사실 도서관보다 매주 그곳들을 더 자주 돌아다녔다. 이렇듯 어렸을 때 나에게 창작물, 콘텐츠는 잠깐 빌려서 읽는 것이었다. 게다가 인터넷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음악과 영화의 불법 다운로드가 일상이었다. 수많은 만화책이 스캔본으로 떠다녔고, 많은 소설들이 소위 텍본(텍스트 버전)으로 쉽게 검색이 되었다. 사람들이 남의 지식을 쉽게 얻었고, 그런 불법적인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불법 유통책이나 유통과정의 몇 명만 돈을 버는 구조였다. 창작자는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창작자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영화, 음악인들은 굿 다운로더 캠페인을 벌였고, 책 단행본에는 스캔하지 말자는 캠페인성 광고가 실렸다. 그런 인식 개선 캠페인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느샌가부터 일반 사람들도 지식 콘텐츠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불법 다운로드를 지양하게 되었다.


여기서 작가로 대표되는 지식노동자들은 한 가지 다른 제약을 내세운다. 바로 '도서정가제'이다. 작가들은 영화산업같이 멀티플렉스가 조그만 영화관을 다 대체하고, 소위 잘 나가는 배급사의 영화가 상영관을 점령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동네서점들 같은 다양한 유통망이 있어야 규모의 경제에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4년부터 최대 할인율을 15% 까지로 하는 도서정가제가 마련되었다. 실제로 그 전에는 온라인 서점들이 동네서점들은 감당할 수 없는 할인율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실제로 그 당시 나도 동네 서점에선 책을 살펴보고, 정작 구매는 온라인으로 싸게 구매하곤 했다.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2번의 개정을 거쳐 또 얼마 전 그 기한이 연장되었다. 그런데 시대는 변해 웹툰과 웹소설 등 새로운 읽을거리가 부상했고, 기존 종이로 출간된 서적들도 E-book 시장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10%의 할인도 줄 여력이 없는 지역서점들은 코로나 직격타를 맞아 더더욱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가들과 지역서점들은 불완전한 도서정가제가 문제라고 보고,  웹 콘텐츠 역시 규제의 바운더리 안에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도서정가제와 함께 책의 정가 자체가 너무 비싸졌고, 참고서 등의 도서가 주요 수입원인 동네서점들에게, 창작자 보호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오래된 책이나 웹 콘텐츠 류에도 같은 할인율을 적용하라는 것은 산업 이기주의라 항변한다. 실제로 특정 대형 서점들이 운영하고 있는 중고서점의 매출이 커진 것은 오래된 구간(舊刊) 조차 할인을 할 수 없는 현행 도서정가제의 영향이 클 것이다.


위의 이야기로 다시 올라가서.. 아마 나와 이야기했던 부장님은 본인이 디자이너라는 창작자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 콘텐츠의 가격에 대해 민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엔 나도 그 의견이 꽤나 이해할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서정가제와 같이 생각해봤을 때, 지식의 가격이란 것은 결국 공급자와 소비자들이 니즈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것을 공급자들이 정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이기주의라고 생각한다. 특히 창작자들의 선민의식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도서관은 책을 무료로 빌려준다는 공간이라기 보단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복지에 가깝다. 그 복지를 통해 책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홍보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이건 불법 다운로드와는 달리 통제되는 대여 서비스고, 오히려 상업적으로는 주목받지 못하는 학술지나 전문서적들도 도서관을 통해 유통되고 소비된다.


두 번째 소비자의 취향을 공급자가 예단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나는 소극장 연극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무대를 보는 체험을 위해 1회 몇만 원이 되는 비용을 충분히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이다. 또한 연극 제작을 내 업으로 삼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극장 연극을 한 번이라도 체험한다면 연극이 다시 부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소극장 경험을 그다지 흥미롭거나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았다. 결국 사람마다 느끼는 감각은 다르다. 동네서점과 작가들은 사람들이 동네서점에서 구입하는 경험을 갖게 되면 살 것이란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는 공급자들의 희망일 뿐 실제로는 다를 수 있다.


물론 공유지의 비극처럼, 지식 자체를 무료로 여겨버리면 창작자들의 환경은 황폐화되어 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저작권 보호와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의 처벌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식이 가격이 있는 재화라면 적정한 가격에 대해 소비자의 의견 역시 반영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행 도서정가제의 느낌은 그 지식의 가격을 지나치게 과다하게 책정해놨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의 제값'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출처 :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74695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4/08/20210408015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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