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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유 Oct 24. 2016

당신은 누구십니까? (7)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 생각이 났다. 그에게서 꼭 용기를 얻고 싶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손을 들었다. 아까부터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전력 질주하는 마음으로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듣던 내게 그는 시선을 주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은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글을 쓰다가 자괴감이 들 때는 없으셨나요? 내가 이것밖에 못쓰나 싶어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던 순간들이요."


그리고 한참을 횡설수설했다. 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제게 용기를 주세요."


뜬금없는 용기 타령이었지만, 그는 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또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안도하며 그의 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글을 쓸 때 찾아오는 자괴감은 좋은 겁니다. 그 뒤에 희열이 올 줄을 아니까요. 자괴감과 희열은 항상 쌍으로 오는 것 같아요."


자괴감과 희열은 항상 쌍으로 온다. 그러므로 글 쓸 때 찾아오는 자괴감은 좋은 것이다. 그 뒤에 반드시 희열이 오니까.


그 말이 나를 살렸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토록 괴로운 자괴감을 맛보지 않고선 결코 희열을 맛볼 수도 없는 것이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경험했으면서도 나는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나를 그가 일깨웠다.


"글 쓸 때 찾아오는 자괴감은 식당에 찾아오는 진상 손님과도 같아요. 진상 손님이 왔다 갔다고 해서 우리 식당 음식 맛이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 않듯이, 그런 거예요. 3년 동안 첫 소설을 썼는데 그 이후 심한 자괴감이 찾아왔어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자괴감에 힘들어하는 나를 치유한 것은 결국 다시 소설을 쓰는 거였어요. 글로 인해 자괴감을 맛보았지만, 그런 나를 치유한 것도 결국 글을 쓰는 것이었죠. 그러니 힘들더라도 끝까지 꾸역꾸역 써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말은 산 정상에 올라가 보라는 말이었다. 산 정상에 올라가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고. 


"그러니 계속 쓰세요. 아닌 것 같아도, 아닌 줄 알면서도, 끝까지 가보세요."


나는 그만 입술을 꽉 깨물고 말았다. 그러지 않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아서.

포기하고 싶었던 수많은 순간순간들이 떠올라서.

지금도 포기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여서.

하지만 꿈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여서.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용기가 맘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게 느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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