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 남매의 아침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제 방에서 자고 있는 네 살 딸에게 가는 일입니다.
잠들어 있는 딸 옆에 누워서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투명하고 여린,
딸의 팔뚝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아직 꿈나라에 있는지 몸을 조금 뒤척이더니 다시 잠이 들어요.
그런 딸의 머리도 쓰다듬어 보고 얼굴도 만져봅니다. 배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배도 쓸어보고 잠든 등도 쓸어봅니다. 3키로그람이 조금 넘던 작고 작던 아이가 어느 새 이렇게나 자랐는지. 잠든 아이의 모습은 유난히도 커 보여요.
제 몸을 만지작 만지작 하는 엄마의 손길에 딸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잠에서 깬 제 딸이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엄마, 수민이 일어났어요?"
수민이는 이제 생후 6개월에 접어드는 제 딸 수안이의 동생입니다. 제 동생이 일어났는지 궁금한 겁니다. 수민이는 아직 자고 있다는 말에 딸은 네-.하고는 제 품으로 파고 듭니다. 저만 바라보던 엄마, 오직 자신의 엄마이기만 했던 저를, 동생이 잠든 틈에라도 온전히 누려보고 싶다는 듯이. 아마도 이건 제 생각이겠지요.
둘째를 낳은 이후로 늘 첫애만 보면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달려가야 할 때 달려가지 못하고, 안아줘야 할 때 안아주지 못해요. 늘 딸에게 하는 말은
"기다려줘."
자꾸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게 됩니다. 엄마 수민이 맘마주고 올테니까 기다려줘. 엄마 수민이 코 재우고 올테니까 기다려줘. 수안아, 엄마 수민이 기저귀 갈아야 하니까 기다려줘. 수안아, 엄마 수민이 목욕 시키는 동안 잠시만 혼자 놀면서 기다려줘.
화가 날 법도 한데, 울 법도 한데, 수안이는 제법 잘 기다립니다. 네-. 하고는 혼자 책도 보고 장난감도 갖고 놀고 1인 다역 소꿉놀이도 하면서, 제법 엄마를 잘 기다려줍니다. 아마도 네 살 수안이는 엄마를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수안아, 엄마가 지금 수안이랑 엄청 놀아주고 싶은데, 수민이가 너무 아기라 돌보아 줘야 해서 어쩔 수가 없네. 수안이가 누나이니까 엄마를 도와줄 수 있지요? 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누구? 바로 수안이야. 하는 엄마의 말을 믿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조금씩 딸에게 의지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제 품을 파고든 아이를 꼭 끌어안고 어제는 무슨 꿈을 꾸었니? 오늘은 뭘 하고 재미나게 놀까? 이야기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수민이가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수민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수안이가 눈을 반짝입니다.
엄마 수민이가 깼어요. 수민이한테 가도 돼요?
그래,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딸은 안방으로 다다다다 뛰어갑니다. 안방 침대로 가더니 일어나 버둥거리고 있는 수민이 옆에 누워 얼굴을 만지고 손을 만집니다. 아이 예뻐 내 동생, 하면서 말입니다. 수안이는 이렇게 동생을 처음부터 예뻐하기만 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절반은 나눠 간 동생이 미울 법도 할텐데 말이에요. 조그만 수민이의 손과 발을 만지작 거리며, 엄마 이것보세요. 수민이 발이 너무 작고 귀여워요. 라든지, 옹알이를 시작한 수민이를 보며 엄마 이것보세요, 수민이가 뭐라고 말을 해요! 라든지, 수민이의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아껴주는 수안이가 그저 고맙고 기특합니다.
그런 제 누나의 사랑이 수민이도 좋은가봐요. 수안이만 보면 싱긋싱긋 수민이도 웃습니다.
아무 것도 급할 것이 없는 아침. 시간에 좇겨 가야 할 곳도 없고 급히 처리 해야 할 일도 없어요. 빨래가 쌓여있지만 차차 하면 되지요. 싱크대에는 어제 저녁을 먹은 설거지 거리가 가득 차 있지만 이 또한 급할 것이 없습니다. 거실에는 정리되지 못한 장난감과 책들이 널부러져 있고, 계절 지난 옷들도 옷장에서 어서 정리를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그 역시 천천히 해도 되는 일들입니다.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 두 아이. 포동포동 말랑말랑한 투명한 살들. 꺄르륵 꺄르륵 넘어가는 순수한 웃음.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편안한 음악과 목소리.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게 행복한 아침입니다. 그 아침의 포근한 침대 위에 저도 가서 눕습니다. 딸은 엄마가 저와 제 동생 사이를 파고들자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엄마 저리가세요. 내가 수민이 옆에 누울 거에요. 하며 저를 밉니다. 그런 딸의 몸을 껴안으며 간지럼을 태우자 딸이 꺄르륵 꺄르륵 넘어가며 웃습니다.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한 둘째도 엄마가 제 옆으로 와 좋은지 싱긋싱긋 웃습니다.
그렇게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뒹굴뒹굴, 오늘 또 하루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리고 속삭여봅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행복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실은,
어제 많이 울었습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자꾸만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제 자신이 미워 울었습니다. 감사한 일 투성이인데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화를 내는 제 자신이 한심해 울었습니다. 이렇게 큰 보물을, 이렇게 반짝이는 별을 두 개나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어두워지는 제 자신이 이해가 안 돼 울었습니다.
매일매일 보고 싶어요. 내 별들이 얼마나 반짝이는지를, 내 사랑하는 두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이 곳에 하루하루 별처럼 빛나는 순간을 기록하자고요.
쓰지못해 괴로운 이 마음, 쓰면 행복해지겠지요.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더라도 쓸 수 있는 것을 써보려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쓰는 나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쓰는 내가 되었을 때에 제 두 아이들에게 말해줄 겁니다.
너희들이 있어서 엄마는 다시 쓸 수 있었어.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어. 정말 고마워.
라고 말입니다. 꿈 꾸는 엄마, 행복한 엄마, 하루하루 되고 싶은 내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는 그런 내가 되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