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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아빠 Jul 23. 2023

관사 입주의 기회를 얻다!

삶에서 처음으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경험을 얻다.

겨울이 끝나가면 공무원 사회는 바빠진다.

전년도 결산과 다음 연도 예산안 작성이 함께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산을 위해 국회와 국회의원의 자료요구가

매일 3건 이상은 기본에다 목요일 저녁과 금요일에는

작성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자료 요구가 내려온다.

이와 동시에 예산안을 위해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만들거나

신규 사업이 없어도 올해 예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대응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예산 편성은 항상 전년도 대비 몇 % 감액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외버스 안에서 급한 자료 제출 요구를 받고 

중간에 내려서 시외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며 

빚을 내서라도 숙소를 구해야지...생각했었다.  


(나) 엄마, 숙소를 구해야 하는데 보증금 빌려줄 수 있어요?

은행에 물어보니 입사 후 3개월은 지나야 대출가능하대요.

(엄마) 얼마나 필요하니?

(나) 보증금 3백만 원에 월 25만 원 정도면 회사 근처에 숙소를 구할 수 있어요.

(엄마) 알았다. 다음 주 중으로 3백만 원 구해볼게.


나는 엄마가 돈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잘 알았다.

카드사의 카드론 또는 외가 친척들에게 부탁하는 것…

직장인이 되고도 이런 부탁을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2달 동안 본 공무원 사회에도 환멸을 갖게 되었다.

내 아버지보다 최소 2배 많은 월급을 받는 직원들 근무 태도가 너무 황당했다.

회식과 운동 등 친목모임을 위해 출근하는 사람들이었다.

기관의 오래된 문제해결 대안을 신참 서무가 작성하게 하니 말이다.    

이래도 9시 출근 6시 퇴근만 지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이 구조에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공무원 합격만 하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 것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선임) 금 주 중에 기관장 교체 인사가 난다고 하네요.

인수인계서 작성해야 하니 각 담당자들에게 

업무현황 갱신해 달라고 하세요.

양식은 내가 보내줄 테니 그것으로 보내면 됩니다.

(나) 오늘이 수요일인데 다음 주 월요일자 발령이면

목요일 퇴근 전까지 달라고 해야겠죠?

(선임) 네, 자료는 기한 내에 잘 제출할 겁니다.

새로 오는 기관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  

(나) 고부군수 조병갑 정도 되나요?

(선임) 이런 시골 기관에 고부군수면 차라리 좋지.

아메리칸 스타일이랄까…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첫인상이 중요하니 잘 준비합시다.

(나) 알겠습니다!


아메리칸 스타일과 인정머리 없는 사람

신임 기관장이 오자마자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임 기관장은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는 직원이 있다면

부서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부탁을 해도 들어주는 타입이었다.

이런 태도 덕분에 부서장은 권위를 잃고

기관장과 사적 친분있는 직원들 중심으로 조직이 움직였다.

또 매주 금요일 점심메뉴는 칼국수였는데

전임 기관장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칼국수였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 식당에 가면 기관장 지정석에는 이미 칼국수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11시 30분에 식당에 도착해서 식사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그가 식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신임 기관장이 오시고 이런 분위기는 모두 사라졌다.

신기한 것은 한 동안 직원들이 더 불편하게 여겼다.

사적인 민원을 공적 절차로 요청하는 것에 낯설어했고

기관장이 아니라 웃어른으로 모셨던 모든 절차의 폐지를 힘들어했다.


(선임) 잠깐 이야기합시다. 저기… 숙소 구했나요?

(나) 지금 알아보고 있습니다. 왜 그러시죠?

(선임) 신임 기관장이 업무보고를 받으시던 중에

관사 입주 순서를 바꾸자고 하셨어요.

기관 소재지에 집이 없는 직원 중에서

직급 낮은 순서로 바꾸자고 말입니다.

월급을 보면 그게 상식적이라고 말입니다.

숙소 알아보는 것은 계속하시고 전세로 알아봐요.

(나) 네? 어...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선임) 그건 알아서 결정하세요. 그럼 일 봐요.


기관장이 계신 곳에 큰 절을 올리고 싶었다.

아무리 악습을 없앤다고 해도

현재 거주 중인 사람들을 내보내는 일은

많은 부담을 갖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관사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보증금 필요 없다는 말을 전했다.


신임 기관장의 취임

그리고 입사 3개월 만에 다시

공직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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