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직장인 반 프리랜서' 1년 회고 | 불타오르는 말기
우리의 프로젝트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먼저 모으자.
‘다정함’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스윗솔트’라는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서 엽서북도 만들고 전시도 하면서 얻었던 깨달음은 이거였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아무도 모르게 준비해서 한번에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공개함으로 우리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먼저 모으자, 라는 것.
영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의미 있는 기획이라도 생명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었다.
그리하여 회사 고민에 다정하게 답장해 주는 콘텐츠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콘텐츠 주제로 ‘회사 고민’을 선택한 건 ‘다정함’의 범위를 좁히고자 고민한 결과였다. 프로젝트 멤버들은 모두 한 회사에서 만난 동료였고 우리의 관심사와 고민이 주로 회사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일 관련 고민에 다정하게 답장하는 콘셉트로 이어진 것이다.
잘하고 싶어서 오래도록 고민하고 논의하고 기획하다가 무려 8개월 만에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했다. 첫 게시물을 올리고 나서야 우리가 8개월이나 고민했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하게도 첫 콘텐츠의 주제는 ‘너무 잘하고 싶어서 시작조차 하지 못하겠어요’가 되었다.
이후로도 일하면서 우리 안에 떠오르는 의문과 고민과 답답함을 콘텐츠에 녹여서 발행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민들을 꺼내왔음에도 역시나(?) 사람들이 쉽게 모이지 않았다. 콘텐츠로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이 걸린다고 들었기에 각오는 했었다. 담담한 마음으로 콘텐츠에 계속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놀랍게도 그 아무도 반응해 주지 않는 인고의 시간을 버텼다.
물론 버티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여러 가설을 시도해보았다. 처음에는 게시물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었다가 더 많이 노출된다는 릴스 형태로 전환하기도 했고, 너무 긴 텍스트를 릴스로 풀어내기 쉽지 않아서 짧게 끊어 편집하기도 했다.
우리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조금씩 팔로워 아닌 사람들에게도 노출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만 꾸준히 하자!’하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바뀌었는지 전혀 노출이 되지 않았다.
바쁘게 하루를 살고 야근까지 한 다음에도, 마음 편히 쉬고 싶은 주말에도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고,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어떠한 반응도 없으니 힘이 쭉 빠졌다. 물론 1년도 제대로 하지 않고서 반응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안다고 실망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즈음 프로젝트 멤버 세 명 중 둘이 인생에 큰 변화를 맞았다. 한 명은 임신으로 출산 및 육아휴직을 떠날 예정이었고, 한 명은 퇴사 후 개인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다. 인생의 큰 변화를 앞두고 우리는 '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답을 내기 쉽지 않은 질문 앞에서 솔직하게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했다. 모두가 ‘우선은 이어가 보자’라는 마음이었다.
멤버들의 변화와 부재에 대비해서 워크숍도 하고 콘텐츠에 변화도 주면서 어떻게든 이어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바뀌니 지속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조금씩 마감을 어기기 시작했고, 콘텐츠에 밀도가 떨어졌다.
이대로 지속하는 게 의미 있을까?
이 콘텐츠가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게 다가가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의욕이 점점 사그라들까?
이 콘텐츠 제작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인가?
점점 커져 가는 고민을 듣던 팀원이 이렇게 말했다.
소설을 써보는 건 어때요?
소설이라니. 너무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욕망이었다. 내면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오래된 욕구이기도 했다. 나는 10대 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문예창작과 입시에 실패하면서 ‘소설 쓰는 사람이 되기는 글렀으니 돈이나 벌어야겠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랐다. 회계를 전공하고 그 일로 밥 벌어먹고 살면서 가끔 흙 속에 파묻어두었던 욕망을 꺼내 한 번씩 손바닥으로 흙먼지를 털어냈다. 잠깐 맨들맨들해졌던 그 욕망은 현실을 바쁘게 살아가면서 다시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랬던 나의 욕망을 동료가 발굴해 준 것이다. 소설, 그 욕망을 왜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언젠가, 그러니까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에서 글도 잘 쓰게 되고 아주 ‘기깔난’ 소재가 떠오르는 그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동료의 제안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건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아주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것이다.
너무 가망 없는 신춘 문예보다는 미완성이어도 제출할 수 있는 브런치북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침 브런치북에 소설 부문이 신설되었고, 2달 뒤에 마감이라고 했다. 2달이면 10편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그때는 쉽게 생각했었다…)
내 오래된 디지털 노트에는 가끔 떠오르는 소설 소재들이 잠자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끼적였던 소재를 꺼내 들었다. 바싹 마른 오래된 욕망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요 근래, 아니 요 몇 년 중 가장 생기가 도는 순간이었다.
내가 계속할 수 있는 것, 정말 하고 싶었던 것,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것.
결국 돌고 돌아 그것을 할 때가 지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