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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Jan 22. 2021

똥 냄새로 동물을 알아요

남편의 초능력과 색다른 어린 시절


    남편의 고향 동네에서 처음으로 얼마간 살게 된 어느 아침이었다. 가벼운 산책을 위해 집 밖에 나섰는데 고약한 냄새가 났다. 잔뜩 인상을 쓰며 툴툴대니 남편이 덤덤한 얼굴로 소똥 냄새라고 알려줬다. 이튿날, 역시 지독한 냄새가 있어 이 근처에 소 많이 키우니? 했더니 남편이 그랬다.

    

    “이건 양인데.”


    순간적으로 말을 잃은 나는 태연한 남편을 보고 의아했다. 어제 맡은 냄새랑 지금 나는 냄새가 다르다고? 거기에 어제는 소고 오늘은 양인 걸 어떻게 알아? 근처 농장의 분포를 알 테니까 바람의 방향으로 추측하나? 각종 의문에 소리를 내어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걸작이었다.


    “원래 동물 똥냄새 맡으면 무슨 동물 건지 알잖아.”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파트 외 주거공간에 살아본 적이 없고 자주 방문한 할머니 댁은 우리 집보다 번화가에 있어 시골 체험이라고 할 게 적었다. 교외에서 나름 자연을 만끽한 기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밖을 쏘다니며 놀던 아이가 아니라 어느 선에 그쳤으며 애완동물도 키운 적 없다.


    그러니 내가 동물 똥 냄새에 대해 알 턱이 있나. 길을 가다가 개똥이나 고양이 똥을 보면 어, 똥이다 하고 지나친 게 내 동물 똥 관련 경험의 전부다. 어쩌다 가족여행에서 축사 근처를 차로 지나면서, 혹은 봄이 돌아올 때마다 교외 논밭에 뿌려진 비료 냄새에 이거 니 똥방귀라고 동생과 요란 떤 것도 추가한다.


    그런 내게 남편이 밝힌 바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범주의 초능력이었다. 손뼉 치며 신기해하는 날 보며 남편은 내가 저를 놀리는 줄 알았다고 한다. 별 것 아닌 일을 두고 소란해서. 나중에 안 건데 비단 남편뿐 아니라 남편의 가족도 똥냄새로 동물을 구분할 수 있다. 전부 남편처럼 예민한 건 아니라 바로바로 정확히 아는 게 아니어도 짐작은 가능하단다.


    남편의 능력이 진짜인지 궁금했던 나는 그 후 한동안 너저분한 냄새만 맡으면 남편을 귀찮게 했다. 시골이라 돌아다니다 보면 기회가 많았다. 이건 뭐야? 아까 지난 길에서 나던 거랑 달라? 이번 건? 그리고 남편은 매번 귀신같았다. 개와 고양이는 물론이고 염소, 소, 양, 말, 돼지, 토끼에 오리까지 다 맞췄다.


   기겁한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에게 이를 전했다. 남편은 뭐 그런 게 신기하냐 했지만 우리 엄마 아빠도 놀랐고 특히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쭉 자란 내 친구들은 나만큼 뒤집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왜 가능해? 와, 별 일을 다 본다. 세상에는 똥 감별사도 있구나. 남편은 과한(?) 반응에 즐거워했다.


남편 동네 근처 도로. 겨울이면 수천 마리 양과 소가 수확이 끝난 옥수수밭에 거닌다


    남편의 능력을 납득하게 된 건 차차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난 후다. 까마득한 시골에서 동물 농장과 함께한, 내 것과 아주 딴판인 삶이다. 드넓은 뒤뜰 절반이 숲이라고 해도 충분할 만큼 키 큰 나무로 덮여있고 그 너머로 온갖 축사가 있었단다. 그 안에는 온갖 가축이 가득했고.


    새벽같이 일어나 여물을 주는 게 일과의 시작이고, 특히 겨울에는 식수에 얼음이 어니까 따뜻한 물을 받아서 가져다줘야 했다고 한다. 잠결에 신발 신기가 귀찮아 맨발로 갔다가 하얗게 쌓인 눈 위로 얼어 터진 발에 핏방울이 맺혀 빨간 발자국이 점점이 찍힌 날도 있었다는 소리에 나는 입을 떡 벌리는 것 말고 다른 반응을 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배경이 현대가 아니라 영화 마녀(‘The Witch’, 2015)와 비슷한 시기로 그려졌다. 수도에서 물 받았다는 게 펌프 움직여서 받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하니까 뜰에 수동 펌프가 있긴 있었는데 그건 아니라고 해서 금방 고쳐지기는 했다. 그래, 아미시는 아니니까.


    그런가 하면 집안에서는 개와 고양이, 햄스터, 기니피그, 거북이, 개구리, 카나리아와 왕관앵무를 각기 몇 마리씩 길렀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쥐도 수시로 들락거렸단다. 생쥐는 다른 모든 동물이 정리된 지금도 종종 보이는데, 도시에 사는 시궁쥐와 달리 제법 귀엽게 생겼다. 하지만 맨손으로 잡아본 적 있다는 소리에는 비명이 나왔다.


    어쩌다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작은 생쥐가 덫에 걸린 채 살아있는데 너무 귀여워서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양손으로 곱게 들고 밖에다 풀어줬다는 소리에 착한 마음씨에 감복해야 할지 아니면 쥐는 만지면 안 된다고 누가 안 가르쳐줬냐 물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살아있는 걸 보면 별 이상 없었던 모양이지만.


    제일 좋아한 동물은 오리로, 세 마리를 들여 시작해 무섭게 번식하고 야생 오리가 들어오기도 해서 이백 마리가 넘는 큰 군락을 이뤘다고 했다. 남편이 공립학교로 진학하고 미식축구를 시작하면서 바빠서 제대로 돌보지 못했더니 어느 날 다 같이 하늘로 날아올라 떠났다는데, 대이동 전날 제일 처음 키우기 시작했던 우두머리-시조 할아버지-오리가 작별 인사하듯 가까이 와서 치댔다는 게 동화 같다.


    이 모든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한 한편 웃음이 난다. 다른 게 아니라 지금 남편을 보면 얘가 그런 식으로 자랐다는 게 믿기 어려워서다. 뭐라고 하지? 남편은 평생 큰 도시에서 산 것 같은 인상이다. 한국에서도 예쁘게 봐주신 걸 테지만 곱게 큰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겼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함께 살면서 온갖 가축 똥냄새를 감별하고 이런저런 동물 영상 속 울음소리 및 움직임으로 영상 속 동물이 무슨 의사를 표명중인지 술술 읽어내는 걸 직접 겪지 않았다면 나도 그가 푼 옛날이야기를 다 믿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나중에 은퇴하면 뜰에 오리를 키우자 그러는데 이백 마리는 안 된다고 말해뒀다. 남편 반응은 한결같다.


    "We'll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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