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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두 Jan 31. 2021

주택에는 쥐가 나온다

시궁쥐가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시가에 들어와 산 지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은 밤, 침대에 누워 잠들 채비를 하는데 머리맡에 난 창문 근처에서 작고 기묘한 소리가 났다. 자그락자그락, 작고 단단한 것들이 철판을 연이어 두드렸다.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던 날이라 처음에는 빗소리라 생각했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빗방울 소리는 따로 났다. 궁금증이 도진 나는 진작 잠든 남편 옆구리를 찔렀다.


    “이 소리 들려?”


    게슴츠레 눈을 뜬 남편은 내가 말하는 소리가 뭔지 금방 알아차렸다. 잠자코 소리에 집중하던 그는 갑자기 웃고는 내게 귀여운 걸 보고 싶은지 물었다. 내가 의심에 찬 채 고개를 끄덕이자 남편은 조용히 해야 한단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창문을 가리고 있던 블라인드를 살살 거뒀다.


    “저기 봐.”


창가에 갇힌 쥐


    남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작은 쥐가 있었다. 둥글고 귀여운 모습의 녀석은 너른 잎 위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였다. 갑자기 쏟아진 불빛에 당황한 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올라앉아있던 이파리 아래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에 용기를 얻었는지 금방 다시 모습을 드러내 저 좋을 대로 이것저것 해보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이 지내는 방은 언덕 위에 선 시가 구조상 1층과 반지하의 특성을 함께 가졌다. 방문을 열면 곧장 너른 뒤뜰이 보이지만 창문은 반지하 창문처럼 반은 지하에, 반은 지상에 드러나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창문으로 흙이 쏟아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창 밖으로 조금의 여유를 두고 철판을 둘러뒀다. 지상 기준으로 일종의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보아하니 그리 빠진 쥐가 나름대로 벽을 타고 올라 나가려는 것 같았다. 계속 나던 자그락자그락 소리는 쥐 손톱이 젖은 철판에 부딪히고 미끄러지며 난 것이었다. 평소 같으면 저렇게 손으로 벽을 잡고 타고 오를 수 있었을 거라고 남편이 설명했다.

 

    “그럼 쟨 어떻게 해?”

   “일단 자고 내일 아침에도 있으면 꺼내 줘야지. 삽 쓰면 돼.”


    추운 밤이었다. 나는 남편의 말에 그렇구나 하고 도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튿날 일어나자마자 창 밖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쥐가 나갔나 봐! 내가 신기해하며 말하자 남편이 사실 새벽에 고양이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쥐가 구덩이에서 빠져나가긴 했는데 아마 아침 도시락으로 갔을 거란 말이었다.


    “좀 일찍 구해줄 걸 그랬나 봐.”

    “잘 된 일일 걸. 쥐는 적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침을 먹으러 주방으로 올라가 시가 식구에게 쥐 본 이야기를 했을 때, 다들 '쥐가 집 근처에 보인다니 날이 추워지고 있긴 한가 봐' 같은 소리를 하는 것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고 반응을 보니 근처에서 쥐 보는 게 아주 드문 일이 아닌가 보다 정도 감상에 그쳤다. 신기했다.


    쥐가 적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 그때로부터 두어 달 지나서였다. 시작은 밤마다 날카롭게 방에 울리는 소음이었다. 이리저리 나무가 쏠리고 움직이는 소리에 자다 말고 놀라서 일어나자 남편이 다독이며 별 거 아니라고, 쥐가 들어온 것 같다고 그랬다. 쥐? 하고 반문하자 쥐가 집 먹는 소리라고 부연했다.


    “나무 여기저기 쏠아먹고 그 사이로 다녀.”

    “그럼 어떻게 해? 집 무너지는 거 아냐?”

    “언젠가? 근데 아직은 괜찮을 거야.”


    그렇게 집에 들어온 쥐는 단순히 소음만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간식거리를 찾아 찬장을 열었던 시동생 1이 앓는 소리를 냈다. 옥수수 칩이 들어있는 봉지에 꽤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 어디 문짝에 잘못 끼어서 찢어진 것 같은 꼴이었다. 쥐가 든 흔적을 처음 본 나는 영문을 모르다가 시동생 1이 쥐를 찾기 시작해서 사태를 파악했다.


    희생된 것은 옥수수 칩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찬장의 다른 층에 있던, 나와 남편이 몹시 사랑하는 소금 식초 맛 감자칩 봉투에도 같은 흔적이 있었고, 전혀 다른 찬장에 놓여있던 시엄마의 곡물 봉투에도 구멍이 나 있었다. 집에 이어 음식을 건드리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온 식구가 쥐를 잡아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두 종의 쥐덫이 창고에서 나왔다.


찬장 안의 쥐덫


    우리는 쥐덫 여러 개를 쥐가 다녔을 것으로 예상되는 여기저기에 설치했다. 하지만 쥐는 쉬이 잡히지 않았고 매일 밤 더 나다녔다. 나와 남편이 한 사람을 방에 남기고 우리 방 위에 있는 부엌에 올라가 발소리를 내도 쥐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보통은 겁이 많아 인기척이 나면 숨을 죽인다는데, 그러지 않는 걸로 보아 바닥과 천장 사이 어딘가에 잘 숨어있는 모양이었다.


    잠귀가 밝은 남편은 잠을 설치는 날이 길어지자 침실을 포기하고 빈 방으로 옮겼다. 나는 일단 한 번 잠들면 무슨 소리가 나도 좀처럼 일어나는 일이 없기는 하지만 늘 춥기 때문에 인간 난로를 따라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쥐를 잡기 위한 갖은 노력은 계속됐다. 쥐덫의 위치가 이리저리 바뀌고 꼬여내기 위해 두는 먹이도 다양해졌다.


    그러다 결국 쥐가 잡혔다. 잡히면 곧장 목이 졸려 죽는 종류의 덫이 아니고 찐득찐득한 덫에 걸렸다. 드디어 잡았다는 기쁨도 잠깐, 숨이 붙은 채 덫에 들러붙어 팔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에 속이 찜찜했다. 강력본드에 붙어있으니 떼어다 풀어주기도 애매하고, 차라리 바로 죽여줘야 하지 않을까? 고통은 짧게 하란 말이 있잖아, 같은 말이 나왔지만 서로 집행인이 되길 꺼렸다.


    “그냥 둬도 내일쯤 죽기는 할 것 같은데…….”


    남편의 말이었다. 닭장에 자꾸 드나드는 고양이를 향해 망설임 없이 삽을 휘두른 시아빠와 자기 창밖에 자꾸 출몰하는 쥐를 열몇 마리 넘게 소프트볼 트로피로 때려죽인 전적이 있는 시동생 2는 하필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집에 남아있던 사람은 전부 마음이 여렸다. 우리는 결국 죽거든 묻어주기나 하자면서 쥐를 외면했다.


    다음날 아침, 쥐덫을 확인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쥐덫은 비어있었다. 본드가 묻은 몸을 연신 움직이던 쥐가 끈끈이를 빠져나가 탈출한 것이다. 대단한 쥐였다. 빈 쥐덫에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지난밤 죽여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쥐도 단단히 혼이 났는지 그 후로 집안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일도 사라져서 우리는 다시 밤의 소중한 정적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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