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얻은 경험과 감정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기회에 나의 내면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면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 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살이 된 이후로 나를 알게된 사람들은 나를 "멋진 청춘을 보내는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편이다.
전국 대학생 연합단체 최연소 회장
대기업 회장에게 점심식사를 초대받은 사람
큰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전문 MC
맨땅에 헤딩으로 해외취업에 성공한 청년
특별하고 다양한 경험이 많은 사람
글로벌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청년
멋지게 사는 사람으로 생각해줘서 정말 고맙다.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어딘가 가슴 한편이 찔린다. 맞는데, 맞긴 맞는데...
겉으로 보여지는 나의 이미지는 강인하고 매사에 자신감 있고 걱정과 고민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의 내면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전혀 단단하지 못하다. 마치, 모래로 쌓은 모래성 위에 놓여 있는 위태위태한 그런 상태이다.
어제 저녁,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동생으로부터 느닷없이 카톡이 왔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이번에 산업인력공단에서 출간한 수기집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내가 썼던 에세이 내용이 라디오에 나왔나보다. 동생은 정말 대단하다며, 오빠처럼 자신감 넘치고 멋진 사람이 되고싶다는 뉘앙스로 말을 이어갔다. "자신감이라... 내 자신감은 모래로 쌓은 모래성과 같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냥저냥 대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면서, 내성적인 사람이다.
나는 사교적인 사람이면서,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다.
나는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면서,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이다.
얼마 전, 전문 심리상담사를 통해 최면 상담 같은 것을 했다.
몸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훈련을 한 뒤, 내면에 잠자고 있던 나의 과거 기억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새로 짝꿍을 바꿨는데 내 옆에 앉게된 여자애가 내가 싫다며 도망갔다. 그래서 짝을 새로 배정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반에서 한 가지 직업에 대해 조사한뒤 한 명씩 나와 준비된 내용을 연기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너무 쑥쓰러워서 준비물인 철가방을 안가지고 학교에 갔다. 엄마가 학교로 찾아와 전달해 주셨는데, 내가 결국 못 하는 바람에, 같은 반에 인기 많은 은석이라는 친구가 나 대신 연기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시 동요 부르기 대회를 위해 담임선생님과 몇 주간 준비를 한 뒤 학교대항전에 나갔는데 가사를 틀려서 청중들이 모두 웃었다. (섬집아기를 불렀는데, "바다가 불러주는"을 "아기가 불러주는"이라고 잘 못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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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오래전 기억들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유년기의 나는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그 때의 어린 소년에게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그 어린 소년과 일련의 기억들을 조그맣고 예쁜 상자에 담아 잘 보이는 기억의 서랍에 넣어두었다.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