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 떠나면 보이는 것들
특정 나이에 맞춰서 해야 하는 것들을 사회가 정해놓은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때가 많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마치 인생 승부가 거기서 끝난 것처럼 원 없이 놀다가 대학 3학년 정도부터는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한다. 좋은 곳에 취업하고 나면 그다음 인생 코스로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일, 거기까지 이뤘으면 그 후엔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리는 일, 이렇게 ‘일정 나이가 되면 해야 하는’ 대입과 취업, 결혼, 육아를 향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려 나간다. 그 밖의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감히 생소한 다른 길을 선택할 용기도 그만큼 확고한 꿈도 아직 찾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30대 직장인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발견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에 나가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결심을 하면서 정작 본인 스스로 ‘이제 와서 될까?’라는 의구심을 품는다. 그런데 40대가 보면 30대는 한창때이다.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부딪혀 볼 만한 나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50대가 보면 지금의 40대는 아직도 젊고 ‘좋은 나이’가 된다.
인생에서 무엇을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누군가가 젊고 늙었다는 판단은 각자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기에 상대적인 것이다. 또한 나이는 어려도 아무런 의욕 없이 수동적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나이는 많아도 늘 배우려 하고 주변의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며 능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생기가 넘친다.
좋은 대학 나왔다고, 좋은 곳 취직했다고 이제 늙었다고 고작 스무 살에, 서른 살에, 마흔 살에 배우기를 놓아버리고 가만히 남은 오십여 년의 세월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다 10대에 최고의 공부 효율을 내고 20대엔 꿈을 찾아야 하고 30대까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야만 하는가. 저마다 인생의 속도가 다르다. 그래서 꽃 피는 시기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점점 어느 나이까지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언제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꿈꿀 수 있다. 끊임없이 배워나가야 하고 알아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이 여든 전후로 인생을 산다고 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4000주라고 한다. 지금 불혹의 나이라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2000주인 셈이다. 지난 2000주의 시간들을 열심히 달려오다가 남은 2000주를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지, 후반전 2000주의 시간들을 자신에게 더 가치 있게 살아나갈지는 결국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늘 ‘이제 와서’를 반복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늘 늦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건 자신만의 생각일 뿐이라고 일본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는 말한다. ‘자 지금부터 하는 건 이미 늦은 거야’라고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와서’라는 말은 포기하려는 스스로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이 낫다. 십 년 후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십 년 젊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길이 조금은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일본의 국민 시인이자 서예가인 아이다 미츠오(1924~1991) 선생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산다는 건
매일 무언가에 감동하고 감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오늘은 새롭게 발견하고 감동하는 것.
세월과 함께
얼굴에 주름은 생기지만
마음속 주름은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마음에 주름이 생겼을 때
우린 더 이상 감동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요.
감동하고 감격하는 데 돈은 들지 않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직함도
일절 관계없습니다.
평생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괜찮으니
감동 가득한, 감격에 찬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다 미츠오(相田みつ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