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 떠나야 보이는 것들
아파트 같은 타워 아래층으로 이사를 했다. 가구가 다 갖춰진 집이라 큰 짐이 없어 며칠간 직접 물건들을 옮겼다. 그랬더니 제일 아끼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먼저 새 집으로 차곡차곡 옮겨 놓게 되고 마지막까지 남겨져 제일 나중에 갖고 오게 되는 짐들이 있었다. 내 삶에 정말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자연스레 구분이 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는 편이었다. ‘언젠가는 쓰겠지’, ‘이건 추억인데 간직해야지’ 등등 각종 이유를 붙이며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남편의 영향도 있었고 이사를 하며 ‘비움과 정리’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짐들을 속속들이 꺼내 정리하며 내 삶을 돌아보고 한 차례 정리할 수 있어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몇 년간 구석에 방치해 두고 존재조차도 몰랐던 물건들도 많았고 작아지거나 유통기한이 지나서 더는 필요 없는 것들도 다 끌어안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들을 비우고 나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내게 중요한 것들이 더 쉽게 보였다.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 미니멀리즘 붐이 일기 시작했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자신이 갖고 있던 가구와 짐들이 오히려 자신을 덮치는 흉기가 된다는 것을 직접 보고 겪으면서 간소하게 사는 생활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졌다.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해 자신의 보금자리와 살림살이가 휩쓸려가고 없어지면서 삶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건들이 없어진 후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뿐해졌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물건이 없는 즐거움’에 눈을 뜬 것이다. 사실 우리 삶에 그렇게 많은 물건은 필요하지 않다. 잘 생각해 보면 여분의 것들이다.
이사를 하며 짐을 줄이고 나니 정리도 잘 되고 많지 않은 가구와 물건들이 묻히지 않고 각각의 용도에 맞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가진 것들을 알고 있고 용도에 맞게 잘 쓰고 있는 기분, 간소해진 살림살이를 더 소중히 다루게 되었다.
예전 필름 카메라 시절엔 사진 한 장 한 장이 그렇게 귀하고 소중할 수 없었다. 24장 또는 36장이 들어간 필름 한 통을 사서 사진을 다 찍고 현상한 후에만 그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한 장 한 장, 정말 남기고 싶은 순간들을 포착해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찍었다. 어쩌다 잘못 셔터를 누르거나 역광으로 사진이 잘 나오지 않으면 그렇게 아깝고 아쉬울 수가 없었다. 몇 장 안 되는 필름 속에 자신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순간들만 고이 담겼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든 수시로 찍고 남길 수 있다. 금세 확인하고 지울 수도 있으니 무턱대고 일단 찍고 보는 경우도 다반사다. 괜찮다 싶으면 무조건 스크린샷으로 저장부터 해 놓기도 한다. 맘만 먹으면 하루에 몇 백장의 사진도 남길 수 있다. 휴대폰 사진 폴더를 열어보면, 수많은 스크린샷과 잘못 찍은 사진들 사이에 정말 소중하고 아끼는 사진들이 끼여 있다. 내게 적은 양의 필름이 주어졌을 때 느낀 사진 한 장 한 장의 소중함과 달리, 지금은 수만 장의 사진 속에 갇혀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진조차 쉽게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H&M, 유니클로 등 패스트패션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대량폐기 문제가 심각해지고 YouTube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넘쳐흐르는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오히려 사람들은 혼동에 빠져 취사선택의 어려움을 겪으며 그 정보들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먹거리들이 등장하면서 배불리 삼시 세 끼를 다 먹고 운동은 하지 않으니 당분 과다 섭취 등의 문제로 심혈관 질환, 당뇨병, 비만 등 각종 성인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인간의 신체만큼은 5만 년 전과 큰 변화가 없는데 지금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섭취해서 병이 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과잉의 시대의 살고 있는 것이다. ‘과유불급’, 뭐든지 정도를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트렁크 하나에 들어갈 물건만으로 살아가는 일본의 한 미니멀리스트는 말한다. 소중한 물건만 남기니 일상을 더 나답게 살 수 있었다고 말이다. 잡동사니가 사라진 공간에 사유가 들어오고 간소해진 삶만큼 더 홀가분하게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설렘마저 생긴다고 말한다.
김국환의 ‘타타타’ 가사에도 나오듯이 이미 우리네 인생은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은 건졌으니 수지맞은 장사인 셈이다. 많은 걸 소유하고 있어도 결국 떠날 때는 수의 한 벌 걸치고 빈 손으로 돌아간다. 살아있는 동안 물건이든 삶이든 비워내면 더 또렷이 잡히는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