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돌아보며 모든 일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한 달간의 이슬람 금식(뿌아사, Puasa) 즉, 라마단 기간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3월 23일부터 4월 21일까지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이슬람교인들은 물조차 마시면 안 된다. 대략 새벽 4시쯤 해가 뜨기 전, 일어나서 첫 음식(수후르, Suhur)을 만들어 먹고 4시 30분경부터 저녁 6시경 해가 떨어질 때까지 단식을 한다. 한 달간의 단식을 통해 가진 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 똑같이 배고픔의 고통을 느껴보고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눔을 베풀고 봉사를 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단, 어린 영유아는 제외되지만 아이들은 만 6~7세 정도부터 라마단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고 단식 시간과 기간을 짧게 해서 점차 서서히 늘려나간다고 한다. 그 밖에도 아픈 사람과 고령자, 임산부, 수유 중이거나 생리 중일 때도 금식에서 제외되지만 추후에 몸 상태가 좋아지면 금식을 하지 못한 날만큼 보충해서 금식을 진행한다.
해가 지면 금식이 해제되고(부까 뿌아사, Buka Puasa) 가족 및 친구들과 만찬(이프타르, Iftar)을 즐긴다. 몰이나 대형 마트에서는 금식 해제 후 먹는 푸짐한 잔치 음식들과 과자들을 판매하고 매장에 흐르는 음악에서도 라마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자연스레 이 시기에 인도네시아의 식품 구입 등의 소비는 크게 늘고 음식 매출은 최고에 달하며 해가 진 이후 만찬을 하며 폭식을 하게 되어 살이 찌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서로에게 ‘축복의 라마단’이란 뜻의 <라마단 무바라크(Ramadan Mubarak)>와 ‘영광스러운 달, 라마단’이란 뜻의 <라마단 카림(Ramadan Kareem)>이라는 축하 인사를 건넨다.
한 달간의 금식 기간이 끝나면 이슬람 최대 명절인 르바란(Lebaran)이 시작된다. 한국의 추석이나 설날처럼 가족과 친지를 만나러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내려가는 대이동이 시작되고 긴 휴가를 즐기지만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귀성(무딕, Mudik)이 금지되기도 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한 규제가 해제된 후 맞는 첫 르바란이기도 한만큼 많은 이들이 설레는 맘으로 명절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4위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약 2억 7천만 명 인구의 87%가 이슬람교도인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5번째 라마단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영영 나와는 먼 종교와 풍경으로 머물렀을 이슬람교의 주요 행사와 의식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곳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오랫동안 내방 책장에 꽂혀 있던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문화>라는 책을 집어 들어 이제야 꼼꼼히 펼쳐 읽어 보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정부와 운전기사 분들이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스스럼없이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를 좋지 않게 보는 우리네 문화에서 보면 이런 부탁을 때론 당당하게 하는 현지 분들의 태도에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슬람교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상부상조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즉, 경제적으로 자신보다 어려운 형편에 있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이슬람교도의 5대 의무 중 하나이며, 신에게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현세에서의 모든 선행이 천사에 의해 낱낱이 기록되어 사후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짓는다고 믿는 이슬람교에서는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죽은 후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조건을 하나 이룬 셈이다. 이런 종교적 배경을 알고 나니 가정부와 기사 분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어렵지 않게 말하는 문화가 이해되었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당신에게 덕을 베풀 기회를 주었다’, 즉, ‘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그런 행동이 나왔을까 그 배경을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저 모르는 것과 알고 대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또한 죽은 자를 화장하는 경우 영혼의 안식처가 소멸한다고 생각해 시신을 무덤에 매장하는 형태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코로나가 한창일 때 사망자 속출로 자카르타 내 시신을 매장할 무덤조차 부족하다는 기사도 심심찮게 접했다. 문화를 알고 나니 비로소 이해되는 것들이다.
여전히 21세기에도 교리에 따라 금식을 지키고 기도를 올리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새삼 종교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신이 믿는 신 앞에 한없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 그 절실한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종교에 너무 심취해 지나치게 되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종교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 하다. 나이 들수록 느끼는 건 이 세상은 정말 ‘세상은 요지경’ 속 가사 그대로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자신의 마음조차 알 길 없는 인생의 여러 상황에서 이게 정말 맞는 것인지 의심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나온 말처럼, 모든 일에 늘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해 주세요(Mohon maaf lahir dan batin)". 르바란에 그간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서로에게 나누는 인사라고 한다. 라마단과 르바란이 있는 이번 달은 좀 더 낮은 자세로 스스로를 겸허히 돌아보는 기간으로 삼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