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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Sep 30. 2017

말라파스쿠아, 오로지 휴식뿐인 지상낙원

다이빙과 여행으로 세부 CEBU 한 바퀴 (7)

첫 배낭여행 이후 10여년.

그리고 사회생활도 (벌써?!!) 10년.

세계에서 가장 바쁘게 산다는 한국사람인 탓일까.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여행하든 그곳의 '휴식 문화'를 주의깊게 살피게 된다. 춥고 별볼일 없다는 네덜란드를 인생 최고의 나라로 꼽는 이유도 오로지 그들의 휴식 문화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라파스쿠아'는 정말 신세계였다. 오로지 휴식만을 위한 여행지. 관광도, 휴양도 아니고 그냥 '휴식', '쉼'이란 단어 그 자체인 곳.

...내가 그 동안 너무 유명한 '관광지'만 골라다녔던 걸까? 이 조그만 섬은 이미 유럽사람들에게는 유명한 휴가지라고 한다.


우리가 리조트에 '3박' 예약을 요청했을때, 리조트에서는 "(꼴랑) 3일? 너무 단기간이라 방을 내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결국 1주일을 묵었다.


대체 다들 얼마동안 있다 가길래...?
그리고 거기가 얼마나 좋길래....?

쨍- 한 날씨와 샛초록 야자수들이 가득한 섬은 그야말로 '휴양지'의 스테레오타입 같았다. 코앞이 바다인데도 수영장 딸린 리조트가 많았다.


그런데 그 리조트들은 그 동안 내가 본 리조트들과는 많이 달랐다. 대부분 목재를 기반으로 나무를 얇게 여며 엮은 벽을 가진 필리핀식 건물이었다. 많이 낡았고 허름해보이기까지 했다.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에서도 섬으로 불리는 곳이라, 물자 조달이 힘들어 발전이 어렵다고 한다. 털털거리는 에어컨이 돌아가주는 것만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작은 섬 특성상 수시로 전기가 나가긴 한다.)

열대지방의 건축양식을 따라 방은 2층에 있고 1층은 텅 빈 공간이다. 길가에 늘어선 건물에는 그 빈 자리에 펍을 만들어두었다. 펍 앞의 해변에는 테이블이나 소파를 늘어놓았고 허여멀건한 서양인들이 그 소파 위에 늘어져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 아까 지나갈 때 소파에 누워 일광욕을 하던 사람이 다시 돌아와봐도 그 모습 그대로 누워있다.


곳곳에 '호핑 투어' '아일랜드 투어' 같은 여행 상품들을 광고하는 현수막들이 붙어있지만, 별로 관심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숙소들 사이에 간간이 끼어있는 다이빙샵에서만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며 '움직이고' 있을 뿐, 한낮의 해변에는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 낮잠, 일광욕, 음악, 맥주 한잔. 섬을 둘러싼 이 긴 해변에는 오직 이런것들 뿐이다.


동네 개들은 주인이 있든, 없든 한낮에는 몰려다니며 해맑은 얼굴로 바에 늘어진 여행자들을 쫓아다닌다. 이런 눈망울로 바라보는데 뭐 하나 안 줄 수 없다는걸 아주 잘 알고 있다는듯. 다리에 부비적대든 발 위에 넙죽 주저앉든, 아무도 개들을 쫓아내지 않는다.

말라파스쿠아의 화이트비치 정 중앙에는 언제나 마사지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핑크색, 연두색, 하늘색 등 깔끔한 유니폼을 매일 매일 맞춰서 갈아입는다. 이 한가로운 풍경 위에 이 컬러풀한 유니폼이 더해져서 이 부분만 뭐랄까... 활기찬 느낌이다.


숙소에서 출장 마사지를 불러도 이 분들이 오신다. 사실 독점이나 마찬가지인데, 반장 정도 되는 고참 아주머니가 로테이션 순서를 정해서 칠판에 적어놓고, 그 순서대로 손님을 배정한다. 지명이나 특별 요청 따위도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 독점인 대신 나름의 공정한 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어제 마사지를 잘 했던 그 분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손님으로써는 다소 슬픈 일이지만, 나름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하는 것 같이 마사지 방식이나 실력은 균일한 편이다. 게다가 로테이션은 운이지만 '팁'은 실력이므로, 언제나 성심성의껏 마사지를 해준다.


로테이션으로 운영되는 마사지는 물론이고, 말라파스쿠아 가게에서 '호객행위'를 본 적이 없다. 어차피 다들 오래 머물다 갈테니 한번쯤은 들르겠지... 하는 것 같다. 물론, 동네가 작아 가게가 다양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리라.

아, 비교적 인기가 없는 액티비티 가게에서는 가끔 호객 아닌 호객을 하는데, 그것도 '너 생각 있어?' '오늘은 필이 아니니? 그럼 내일 와. 아니면 내일의 내일. 그것도 아니면 내일의 내일의 내일. 것도 아님 언젠가 생각 나면 한번 들러.' 이런 느낌이랄까.

이런 석양을 보며
어찌 마음이 급해질 수 있을까


내가 느낀 말라파스쿠아는 한가. 여유. 그 자체였다. 물론 그 섬에서 삶을 영위하는 현지인들의 실상이 어떨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휴양지와 리조트가 몰려있는 작은 화이트비치의 정 반대쪽에는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해변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저녁이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작은 언덕을 넘어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간다.

그 마을도 이렇게 여유롭고 한가할지 알 수 없었다. 거기서도 사람들이 햇볕 아래 늘어져 한낮을 즐기고 있을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광지의 현지인들보다 '진심으로' 웃는 일이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른 관광지의 현지인들이 그러하듯, 한달이나 여기서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외국인들과 자기를 비교하며 푸념하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다행히. 아직은.


부디 10년 후에도,

해변의 모양과 건물의 모습이 바뀌더라도,

이 순박함과 여유로움만큼은 변치 않길.




Cheers, Malapasc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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