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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Jan 04. 2019

저 길 위에 진짜 파리 Paris 가 있다.

파리를 저렴하게 여행하는 백패커를 위한 안내서 (2)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여행지의 골목에 매우 집착한다. 샹젤리제를 걸으면서도 뒷골목을 자꾸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에펠탑을 눈 앞에 두고도 근처 골목에 살고 있을 사람들의 발걸음에 더 눈이 간다.


무슨 연유일까. 그들의 삶에 간섭하고 싶은걸까.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이 궁금한걸까. 화려한 대로변에는 드러나지 않는 그곳의 일상을, 그 도시의 겉 껍질이 아닌 속살을 맛보고 싶은걸까.


무튼, 파리 시내를 그저 터벅터벅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프랑스의 공기, 파리의 분위기에 흠씬 젖어들고 만다. 그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면 식민지 등등 세계 각지에서 반쯤 훔쳐온 남의 나라 유물들이 가득하지만, 이 길에야말로 진짜 프랑스와 파리가 있다. 이 길이야말로 수백년 전 파리부터 지금의 파리까지 한 눈에, 그리고 한 숨에 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유적지 아니겠는가.


가끔, 저 골목 안으로 사라지고 싶다 Paris, France ⓒ제석천


집앞을 청소하는 사람, 가게를 손보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도시에서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국에서의 삶보다 조금은 더 평온하고 행복할까,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아름답고 이국적으로 보이는 이 풍경 속에도 사실은 불행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한- 나와 똑같은 하루 하루들이 이어지고 있겠지... 내가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행하고 있는 내가 부러울까- 궁금해하며 여행자(=쉬는 자)로써의 우월감을 잠시 맛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삶보다는 이곳의 일상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비참함을 느끼기도 한다.


정말 그곳에서 살아보지 않고는 정답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의 특권으로, 내 마음대로 생각하기로 한다. 보통 마음이 힘들 땐 그곳의 삶이 더 행복하리라고, 여행의 짜릿함으로 충만할 땐 여기나 거기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을거라고, 결론짓는다.


파리에서도 부촌이라곤 하지만, 건물 하나하나가 다 문화재급이다 16 e arrondissement de Paris, France ⓒ제석천


그런데 파리의 골목을 헤매이면서는, 매 순간 파리지앵들이 부러웠다.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끊임없이 최신 또 최신형 건물들이 업데이트되는 서울보다는 중세의 유적과 역사 속에서 현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이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하룻밤은 자보고 싶다... 저기에서... 16 e arrondissement de Paris, France ⓒ제석천


파리 시내 건물들은 대부분 수백살이다. 중세에서 근대에 세워진 스톤 건축물들을 증축하거나 조금씩 고쳐가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이 오랜 건물들 사이를 걷노라면, 파리에 여행 왔다가 100년 전으로 타임슬립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왜 나왔는지 가슴으로 이해가 된다. 밤이 되어 현대식 복장을 한 이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어디선가 마차가 달려오고 턱시도를 입은 신사가 패티코트로 한껏 멋을 낸 숙녀를 에스코트하며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파리의 밤 골목은 더욱 몽환적이다.


턱시도를 입은 신사가 이내 마차에서 내릴것만 같은, Midnight in Paris, France  ⓒ제석천


실제로 파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수백살 먹은 건물들 때문에 얼마나 불편한지 아냐고 하소연한다. 대부분의 건물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어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수도 없고, 방풍과 방한 기능이 떨어지다보니 집안에서도 꼭 두꺼운 가운을 걸쳐야 한다고, 불평불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를 저 멀리서 까치발로 바라보기만 했왔던 나는, 수백년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품은 문화재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부럽기만 하다. 개발과 발전을 위해 사라진 우리나라의 수백년의 역사와 이야기들이 아쉽기만 하다.


물론 그저 이곳을 스쳐지나가는 나로써는

과거의 유산을 미래에 넘겨주기 위해 현재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과, 현재의 편의를 위해 과거와 미래를 단절을 감수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안타까운 일인지

영영, 판결을 내릴 수 없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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