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초체력
내가 책을 쓰기 위해 가장 먼저 길러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글쓰기 기초체력'이다. 나도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배운다. 좋은 표현과 글귀는 나만의 스타일로 바꿔 사용한다. 우리말은 '움직씨(동사)'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은 의사표현이 아니라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다. 입 모양을 토대로 한글을 만들었고, 백성의 행동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인조 때, 북벌론에 대한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저 사람들이 노할까 두렵습니다.
청나라, 대국이 노할까 두렵다 하고 기록을 남긴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구와 대화하는 행동을 기록으로 남긴 것 같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동사를 지향하는지 알 수 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는 말로 하지 않는 글(중국 글자 말, 일본말, 서양말)은 못난 글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 글은 말로 시작했고, 그다음에 문법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표현>
진다. 되어진다. 불린다. 뽑혀져야, 키워지는, 보여지는, 표현을 보면 누가 나를 이끌어내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인가 억압받고 있고, 글을 쓰는 이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다. 나도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한다. 된다. 뽑혀야, 키워야, 보이는, 표현으로 의식하면서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글자 말과 서양말>
과거에는 한자를 썼다. 한자를 보고, 읽고, 쓰는 것은 곧 힘이었다. '본인', '필자', '직업(직책)'을 쓰는 것은 권위를 내세우는 조선시대 표현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확실하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 지금의 글이다. 한자는 우리말의 뿌리다. 한자를 모두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주장이다. 때로는 의미를 함축하는 한자가 글을 더 고급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서양말도 그렇다. 굳이 안 해도 되는 말까지, 마구 남발하지만 않으면 된다. 무엇이든 적당하면 약이다.
나는 IT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번역서를 많이 본다. 번역서는 주로 영어로 쓴 글을 우리말로 바꾼 것인데,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아 처음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소리 내어 읽으면 그냥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조금 낫다. 나는 번역서를 맛있게 쓰려면 번역하고자 하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큰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필드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장치 객체' 대신 '디바이스 오브젝트'를 쓴다. 무리해서 번역하면 글을 따라 읽었을 때, 어색하다. 장치 객체도 중국 글자 말인데, 장치 객체를 우리말로 바꾼다고 단어를 억지로 풀어쓰면 촌스럽다. 독자의 시선에 맞춰 글을 쓰면 글이 참 맛있다. 이오덕 선생님의 가르침에는 많이 어긋나지만 지금 시대에 쓰는 이와 읽는 이가 교감하려면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시민 선생님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면 된다고 하셨다. 나 역시 선생님 의견에 크게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