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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캐쳐 May 18. 2021

자소서만 10년째 쓰는 중 6회-경험

connecting dots(흩어진 점들을 이어 그은 직선)

지원분야 및 직무에 대한 경험 또는 경력을 쓰시오

이 답변에 아르바이트 및 직장 생활 많이 했다고 해서 그것을 다 쓰면 광탈이다.

업무와 관련 있는 것을 써야 한다. 관련이 없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것이 아쉽다면 다른 답변에 녹아내면 된다.




나는 20살이 되면서부터 경제적 자유와 독립을 부모님께 선언하며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했다.

밥을 굶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적은 없지만

자식들을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부모님을 봐왔다.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당연한 의무라 생각했다. 또한 성인이 되었으니 자유와 독립을 외치며 간섭을 거부하면서, 부모님의 용돈으로 술을 먹고 노는 것이 어딘가 모순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용돈을 받고 쓰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된 내가 성인들의 세상에서 직접 돈을 벌고 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대되었고 실제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매우 뿌듯했고, 그것을 쓸 때는 매우 짜릿했다.

 



.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피자 가게에서 피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3000원가량의 최저 시급을 받으며

수능시험을 끝내자마자 한 아르바이트인데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2년 넘게 꽤 오래 일 했다. 그때 남자들은 배달을 했고, 여자들은 주방을 책임졌다.

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다듬어야 했고, 그때 처음 누군가를 위해 칼을 잡아 보았다.

지금은 야채 중 양파 손질이 제일 쉽지만, 당시에 양파를 손질하는 게 너무 싫었다.

한번 하고 나면 양파 냄새가 손에 배 빠지지 않고, 눈은 매워서 화장은 엉망이 된다. 잘생긴 아르바이트생들과 일하던 어린 나는 양파 손질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 덕분에 지금의 나는 칼질을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야채든 무난하게 잘 손질한다. 

 피자집에서 일을 하면 좋은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사장님이 좋았던 것 같다.) 근무하는 날 식사 시간에 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어릴 때 집에서 피자를 안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잘 시켜먹지 못 했는데, 나는 매주 3일(바쁜 날) 마다 피자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하루 8시간 일을 하면서 피자로 식사를 하는 것은 처음엔 좋았지만, 피자를 매일 만들다 보면 피자 냄새만 맡아도 질려서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나중엔 피자 레시피에 없는 것으로 내 마음대로 재료를 넣어 만들어 먹으며 지겨움을 탈피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도우와 소스가 같으니 피자 맛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바쁠 땐, 피자를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웬만하면 밥을 해 먹었다. 우리를 위해.

 처음으로 밥도 지어보고, 야채 손질도 하고, 간단한 한 끼 국거리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걸 2년 넘게 했더니 10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라면 뭐든지 다양하게 집에서 만들고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요즘 친구들을 초대해서 밥을 해주면 배달 음식보다 내가 집에서 해 준 음식이 더 맛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때 피자가게에서 정체불명의 레시피로 불어 터진 라면을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해줬던 오빠들이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



..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투잡을 뛰었다.

방학 때 평일 낮엔 영어학원에서 간단한 영어를 가르쳐주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평일 저녁, 그리고 주말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했다.


나는 이때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당시 주변 친구들은 워킹홀리데이, 어학연수, 교환학생 등을 했는데

나는 그냥 먹고살기 위해 영어 공부를 했었다. 

외국인들이 종종 오는 곳인데, 외국인들은 식사 후에 항상 팁을 줬다. 그래서 외국인 손님 주문을 받으면 팁을 받는 재미가 있어서 서로 본인이 하고 싶어 하지만 영어도 곧 잘해야 했다.


오전에 어린아이들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도 해야 했고

오후에 혹여나 외국인 손님이 올 때 잘 응대해야 했기 때문에 생활 영어도 공부해야 했다.


나는 그때 먹고살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면서,

좀 더 나아가 외국에 나가 경험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조금 아쉽다.


그리고 그때까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비싼 음식을 고민 없이 주문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부러웠다.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또래 친구들과 친해져서, 처음으로 퇴근 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게 너무 맛있었다.(내돈내산) 

한번 먹으면 그날 우리의 일당은 모두 쓰는 가격이 나와서, 우리는 가장 포만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가성비 메뉴들로 주문을 해서 먹었다. 나는 그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머릿속으로 가격을 고민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돈을 버는 드라마 PD가 되고 싶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서빙 알바 이후 값비싼 음식들을 파는 호텔 등에서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만났다. 반말로 주문을 하는 사람, 기저귀를 밥상에 두고 가는 사람, 계속 불러서 메뉴판에 없는 것들을 달라고 하며 직원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몸이 참 힘들었지만 정신이 더 힘들었다. 그들이 파티를 즐기면 나는 눈치껏 음식이 끊기지 않게 채워주고, 다 먹은 접시는 거두는 눈치게임을 했다.

하지만 손님이 들어오면서부터 좌석을 안내하고 말을 거는 우리에게 같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 주문을 하면서 죄송하다 말을 먼저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서버를 하면 할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때 '말의 힘'을 알게 되었다. 같은 밥을 먹으면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고, 기분 좋게 할 수도 있는 것은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말'이라는 것을.

 그때 생긴 버릇이다. 나는 어떤 식당을 가나 들어갈 때 인사를 하고, 나올 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음식을 주실 때마다 자리에 흐름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 매번 고맙습니다를 외친다. 그들도 내 인사가 성은이 망극해서 올리는 감사가 아님을 알면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았으면 한다.

나는 이것들 외에도 소주 홍보 시음 아르바이트, 고깃집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외식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는 음식점을 운영할 수 있는 위인은 안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고, 살림 팁이 조금 늘었다.


기름 있는 음식을 하고 난 뒤엔 소주로 닦으면 잘 닦이고, 먹다 남은 맥주는 냉장고 잡내를 없애기에 좋고, 야채는 냉동보관보다 냉장 보관해야 맛이 유지된다는 것, 라면에 파 말고 양파를 넣으면 더 감칠맛이 난다는 것 정도의 깜찍한 살림 팁.




...

 PD의 꿈을 접고, 접히지 않는 다리를 한 채로 나는 우체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으로 나는 의자에 앉아서 하는 아르바이트를 해보았다.

그 우체국은 교내에 있어서 접수창구에 앉아 우편물을 보내주는 작업을 도왔다. 요즘 시대에 종이 편지를 누가 보내나 싶었는데 주로 군대를 보낸 여학생들이 자주 와서 350원짜리 우표를 사서 봉투에 붙여 보낼 때면 참 귀여웠다. 그리고 편지 봉투 크기마다 가격이 달라지는데 자주 오는 친구들에겐 저렴한 금액의 봉투 사이즈를 알려주기도 했다. 또, 매주 오시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군인인데 매번 등기우편으로 보낸다. 등기 우편으로 발송할 때 드는 가격이 2000원 정도 했는데, 군대는 등기 발송이 안된다고 해도 매번 등기 우편을 요청하셨다. 1700원의 손해쯤은 아들이 간절하게 보고 싶었던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 마음을 등기우편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방학 때면 외국인 유학생들이 와서 집으로 EMS 우편으로 짐을 보내거나, 배로 물건을 부치러 왔다. 무거운 짐을 낑낑 들고 와서 보내는 모습을 보면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영어로 우편 접수를 받고, 저 물건들을 접수하고 들어서 옮겨야 하는데, 혹시나 내가 잘못 알아들어서 이 물건들이 집으로 제대로 도착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그 과정이 무서웠다. 

 하지만 우체국 업무를 하면서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업무는 내용증명서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땐 내용증명서가 뭔지도 모르는데 일단 무서웠다. 보통 무서운 얼굴을 하고 들어와선 접수를 도와달라 하는데, 도장을 쾅쾅 찍어 한부는 발신인의 것, 한부는 수신인의 것으로 따로 챙기는 그 과정 내내 분위기가 무서웠다. 

 그치만 제일 무서웠던 일은 따로 있다. 교내 우체국이라 학교 동기들이 종종 나를 보러 왔다. 그럴 때마다 금융 업무를 하시는 분이 내게 예적금 및 보험 가입을 권유했고 나를 향해 친구들에게도 홍보를 부탁할 때면 그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영업' 업무는 내가 잘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사무실 내에서 하는 업무가 꽤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방송국의 거친 현장 분위기와는 달리, 우체국에서 같이 일했던 분들은 온화했고,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다양한 업무를 차근차근 알려주시며 계속 우체국 시험을 보고 들어와서 함께 일하자고 말씀하셨다. 한국사, 영어, 컴퓨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을 밥을 먹을 때마다 들었고, 나는 주말에 공부를 해서 한국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한국어 능력시험, 토익 등을 따서 사무직 일을 할 수 있기 위한 준비,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았다. 어느덧 한 학기만 앞둔 복학생이자 졸업준비생이 되었고, 지금껏 준비한 스펙으로 공공기관 직원이 바로 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또 쉬운 길을 택했다. 

졸업하자마자 어느 독립 영화협회의 영화제 기획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should have pp

(~했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과거의 아르바이트 인생을 살았던 내 선택 때문이라고 자책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성적 관리를 잘했더라면.

그때 외국 생활을 해봤더라면.

그때 여행이라도 좀 많이 다녀볼걸.

모두 하지 못했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신문 기사를 읽다가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보고 헛되지 않았다고 위로하게 되었다.

사실 드라마 PD가 되기 위해서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를 꿈꾸면서 내 과거 행적에 대한 자부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기사를 읽다가 본 말에 감명을 받았던 것이 있는데

종종 자기 기 소개를 쓰다가 정말 할 말없을 때, 자주 등장하는 제목이 있다.

<connecting docts>


스티브 잡스의 명언 중 connecting dots 

자신이 해 온 경험 하나하나를 점이라 말했다. 

그 점(과거의 나의 경험)을 연결하니 하나의 선(지금의 내)이 되었다.

지금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소한 경험(점)이라도 ‘나’를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한다.   

나의 업무와 관련없는 긴 아르바이트 경험들은 인성 및 가치관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짧게 서술했다.



서비스직 아르바이트 경험 덕분에 거만해지기 쉬울 수 있는 내 성격은 '사소한 것에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공공기관에서의 인턴 경험은 스스로를 활동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서 절대 사무실에서 하는 업무를 못할 줄만 알았던 내가, 알고 보니 실내에서 하는 사무직 업무를 잘 적응하는 사람이기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업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인지를 여러 아르바이트와 직장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고, 복학을 해서는 잘 다져놓은 스펙을 기반으로 여러 회사에 가기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앙행정기관에서 5년째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5년째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는 멋진 PD가 되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나이 들면 강연도 하러 다니고, 대학교에서 훌륭한 제자들을 양성하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은퇴를 해선 나의 경험을 책으로 쓰고 싶었는데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

나는 책을 쓰고 싶지만, 내가 원하던 이야기는 그려낼 수 없는 것에 좌절을 하고 그 꿈을 덮어뒀다. 하지만 꼭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직업이 아니라도 10년째 자기소개서를 쓰며 꾸준히 서류합격을 해온 나의 이야기는 많은 취준생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쓰기 시작했는데, 벌써 6편이다.  






이상 갤럭시만 10년째 쓰고 있는 취준생 10년 차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활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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