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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작 SF

시간과 책,엔트로피와 정보,
혼돈과 질서에 대한 소설

『엔트로피아』 출간 후기

저의 소설 『엔트로피아』가 출간된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제 지인들과 책을 구매한 독자들을 만나면 직접 저자 사인을 해 드리는데요.

저자 사인에는 다음 문구를 꼭 새겨놓습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허물지만
책만은 멈춰서 기록한다.


『엔트로피아』는 시간과 책에 대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는 작가의 말에 있습니다. 다만 지면의 관계로 이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린 적은 없지요.

이번 기회에 한 번 얘기해 보는 것도 좋겠죠.


사인 문구처럼, 저는 ‘시간’과 ‘책’을 대립 관계로 보았고 그에 대한 여러 메타포들을 중점적으로 풀어 놓았습니다.

시간:   과거 ←→ 미래
열역학적 엔트로피: 질서 ←→ 혼돈
정보적 엔트로피: 정보 ←→ 불확실함
작품 속 개념: 시그눔 ←→ 엔트로피아
책의 운명: 기록됨 ←→ 불에 탐
제국와 민족의 운명: 영속함 ←→ 스러짐


시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수억의 시간이 흐른다면, 우리는 폐허밖에 남지 않은 광대한 우주를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물리학의 법칙인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공표되었으며, 이를 어길 수 있는 건 물리적 우주 내에서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책은 멈춰서 기록합니다. 책에 기록된 ‘정보(시그눔)’는, 때로는 복사되면서 보존됩니다. 정보는 특별히 복사 과정에서도 잘 손상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우주의 엔트로피 법칙을 이겨 내며 무한정 생존할 수 있습니다. 「책이 된 남자」의 알 라시르가 자신의 시그눔을 책에 보존해 영원히 살려고 소망한 것처럼 말이죠.


‘시간’에 대항하는 ‘정보’의 측면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은 작중작인 「책이 된 남자」였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독립적으로 읽어도 아무 지장 없는 작품이고, 또 『엔트로피아』 전체 기획 이전에 써놓은 작품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과 혼돈과 엔트로피아에 대항하는 정보와 기록과 시그눔에 대한 이야기를 필요로 했고, 그것은 바로 「책이 된 남자」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거란의 마지막 예언자」에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에, 그것의 안티테제로 ‘정보’에 대한 이야기로 「책이 된 남자」를 두 번째에 배치하였습니다.


9791193078549_01.jpg 엔트로피아 - 김필산 (허블, 2025)


그러나 사실, 물리학의 엔트로피 이론에는 ‘열역학적 엔트로피’와 ‘정보적 엔트로피’의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두 엔트로피 등식은 동일한 형태로, 단지 상수만 다릅니다. 사실상 ‘시간’과 ‘정보’는 대립관계라기보다는 동전의 이면같은 관계라고 볼 수 있지요.

S = -kB Σ p ln(p): 깁스의 엔트로피 정의
H = - Σ p ln(p): 섀넌의 정보 엔트로피 정의


‘정보’ 그 자체가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입니다. 정보를 기록해 놓은 책은 우리의 물리적 우주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 또한 시간의 엔트로피에 의해 허물어지게 될 것입니다. 선지자의 서판처럼, 레오의 두꺼운 필사본 『죽음과 지혜의 책』처럼, 필경사의 『엔트로피아』처럼 말이죠. 책이든, 서판이든, 하드디스크나 SSD든, 미디어가 손실되면 정보 또한 사라집니다. 시간은 책뿐만이 아닌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사물과 관념적 존재들마저 무너뜨립니다. 장군이 죽음을 맞이하고, 거란 민족이 스러지고,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과정이 설령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문학적 주제라 할지라도, 그 죽음들은 우주의 어느 것도 엔트로피적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질서로부터 혼돈으로, 시그눔으로부터 엔트로피아로.


그리하여 ‘엔트로피’는 시간의 방향까지 강압적으로 정해 줍니다. 과거는 미래로, 질서는 혼돈으로, 정보(시그눔)은 무의미(엔트로피아)로, 그렇게 시간의 방향에 따라 우리 인간의 인식도 정해집니다. 우리는 과거의 정보를 알지만 미래엔 무의미한 확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는요? 그가 미래를 기억하는 능력을 대체 어떻게 우리의 물리학적 우주에 속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는 ‘혼돈’의 미래에서 ‘정보’를 가져와 과거로 뿌립니다. 그것은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능력일뿐더러, 작가로서도 논리적 모순에 부닥쳐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대단히 난감해질 수 있는 소재입니다. 미래를 아는 사람이 전한 미래의 예언을 듣고 다른 사람이 운명을 바꿔 나간다면? 그렇게 된다면 미래란 ‘혼돈’과 ‘엔트로피아’가 아닌, 또다른 질서와 시그눔이 될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방법이 더 이상 없어지게 됩니다.


미래에서 정보를 가져와 과거에 뿌리는 괴이한 반물리학적 사건은 작품에서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두 서울 전쟁」 속 미래에서 온 저자 없는 논문. 완서준은 이 논문들이 명백히 엔트로피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것을 밝힘.

하지만 완서준 스스로 미래의 자신이 쓴 논문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게 됨.

‘엔트로피’라는 용어 자체. 미래에서 온 선지자는 자신의 말을 기록하는 필경사의 책이 미래에 전해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며 ‘엔트로피아’라는 용어를 남발하지만, 필경사의 표지에 기록된 그 단어 자체만은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에게 전해짐. 그게 바로 ‘엔트로피’라는 물리학 용어가 되었다는 소리. (실제 역사는 아닙니다)

우다영 작가님의 추천사: “가여운 김필산, 어서 이 놀라운 책을 쓰렴.”


저는 「두 서울 전쟁」의 세계관, 즉 미래와 과거가 혼재되어 정보를 공유하는 세계 자체도 엔트로피의 지배를 받길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계관에 사는 사람에게 미래의 정보는 미리 공유되어 있기 때문에, 엔트로피의 역전을 불러일으키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못합니다. 이건 선지자 개인의 능력과 동일한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선지자가 미래를 알고 그 미래의 정보를 과거로 전해줄 지라도 미래는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엔트로피의 증가 양상으로 흘러가는 우주를 만들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작품에서는 ‘자유의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은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이야기여야 하며, 인간은 이 완강한 엔트로피의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자유의지와 선택’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선지자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전에 이미 고민을 끝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필히 서쪽 유럽의 어느 곳에서 어머니를 만나야 함을 알고 있었으며, 그 ‘과거로의 예지’는 거꾸로 살기 때문에 미래를 당연히 알고 있는 상태와는 다른 종류입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들이 미래에 자신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하지만 완전히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는 예언과 같은 성격의 것입니다.


자유의지의 문제를 고민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두 서울 전쟁」의 김신주입니다. 그는 시간축을, 즉 미래를 바꿔 놓을 결정적인 방식을 발견해 내고 성공시켰습니다. 그게 또 다른 실패의 모습으로 보이는 결말에 다다랐다 할지라도, 결국 그는 자유의지를 통해 선택을 내리고 엔트로피를 바꾼 유이한 (또 다른 한 명은 조부진) 인간이었죠. 그래서 저는 「두 서울 전쟁」을 세 가지 이야기 중 소설을 마무리하는 세 번째 이야기로 배치했습니다.


그리하여 마무리, 김신주의 위대함을 알고 있는 선지자지만, 스스로 그처럼 자유의지를 행하며 시간을 바꾸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단지 운명에 순응하며, 그 또한 위대한 일임을 장군에게 말해 줍니다. 장군과 선지자는 미래와 과거를 엇갈려 스쳐 가는 대립적인 인물이지만, 김신주는 그들과는 다른 차원의 인물입니다. 장군과 선지자의 대립축에서 수직으로 서 있는 또 다른 축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원래의 과거 ←→ 미래 시간선에서 벗어나 그에 수직인 두 번째 시간선을 개척한 것처럼요.




많은 분들이 『엔트로피아』를 읽어 주시고 시간내서 서평까지 써 주셨습니다. 제가 읽고 감명받은 여러 서평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물론 칭찬도 있지만 비판도 있으며, 비판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내는 데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wngus2358/223933193027

한국 SF 1황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으쓱)


https://blog.naver.com/lim_soyan/223949178800


https://blog.naver.com/dorangun1/223946829805

로저 젤라즈니 「완만한 대왕들」 이후 ‘시간’이 주제인 SF 소설 중 가장 창의적인 작품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직은 로저 젤라즈니보다는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ㄷㄷㄷ


https://blog.naver.com/mogulkor/223941861045


https://blog.naver.com/praster01/223939520032

“『엔트로피아』는 하나의 사건이다”라고 평해 주셨습니다. 그정도까진 아닌 것 같지만...감사합니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질서로부터 혼돈으로, 시그눔으로부터 엔트로피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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