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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Feb 22. 2024

비행 이력

상승 기류를 기다리는 그대들에게

Photo by Andrey Larin on Unsplash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제출하는 요즘 세상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 그런 놀라운 일들이 과거에는 종종 벌어졌다. 여기에 풀어놓는 이야기는 내가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신기하고도 쓸쓸한 어떤 사건에 관한 것이다.


그때는 이력서를 손수 작성하여 우편으로 접수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몇 가지 이력서를 기초로 찍어내듯 복사할 수 있는 편리함이 없었다. 하지만 가여워하거나 동정할 필요는 없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으니까.


J씨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 열심히 공부한 끝에 도시의 명문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출신성분이 문제였다. 그것은 가장 큰 무기이자 약점이었다. 특유의 순박함은 늘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었으나, 그뿐이었다.


“그 사람, 사람 하나는 참 좋아.”


분명 칭찬이었으나, J씨는 그 말이 달갑지 않았다. 그 말은 그저 능력이 없다는, 혹은 요령이 없다는 말을 듣기 좋게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무렵, 그 말은 J씨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수십, 수백 군데에 이력서를 제출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불합격 통지 뿐이었다. 귀하의 인성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나, 우리 회사의 인재상과는 맞지 않는다는 대답과 함께.


‘어차피 또 안될텐데, 제출해서 뭐하나. 우표값만 아까워.’


그날 밤, J씨는 미리 써둔 많은 이력서를 정리하기로 했다.


이력서의 한 쪽을 반으로 나누어 양 귀퉁이를 각각 삼각형으로 접어 맞닿게 하고, 전체를 아래쪽 3 분의 2 지점까지 접은 후, 다시 위쪽을 처음처럼 각각 삼각형으로 접은 다음, 아래쪽에 뾰족하게 나온 작은 삼각형을 위로 접어 올렸다.


“후우…”


잠시 숨을 고르고, 종이를 세로 기준으로 반 접은 다음, 접힌 양쪽을 다시 절반씩 접었다.


‘이렇게 하면 우편으로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


그는 밤새도록 그렇게 많은 종이 비행기를 접었다. 완성된 비행기는 생각보다 많았다. 이윽고 해가 뜨고, J씨는 결심한 듯 창을 열어 젖혔다.


수백개의 이력서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수백개의 종이 비행기는 도심의 하늘을 수 놓았다. 그 해는 마침 개발 붐이 일어 도심 곳곳에서 뿜어대는 중장비의 열기가 열섬현상을 일으키며 상승기류를 만들었다.


계속해서 날아가는 이력서들을 보며 J씨는 별안간 현기증을 느꼈다.


‘이상하네. 왜 떨어지지 않지? 꿈? 그러고보니 좀 졸린것 같아. 몸에 힘이 없네. 아... 이제 떨어지나.’


다음 날 뉴스에서는 두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취업난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한 청년의 안타까운 이야기와 회사의 화단을 온통 새하얀 이력서 비행기로 장식한 정체불명의 기발한 구직자를 찾는다는 이웃나라의 어느 기업에 관한 이야기였다.




얼마전 회사의 대학생 인턴분들과 면담을 하고서 생각이 많아졌다. 회사 혹은 직무에 대한 질문들을 기대했지만, 주로 궁금해 하는 것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작성, 특정 기술이나 도구 숙지 여부가 어떤 직군에 유효할 것인지 등, 당장의 취업과 관련한 팁이었다.


불현듯-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텐데’


‘서른살부터 시작해도 마흔까지 집중하면 한 분야 경력이 10년은 쌓이는데'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다가, 그저 궁금해하는 질문들에 내 의견을 보태는 것으로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했다.


생각해보면 그땐 그저 막막하고 조급하고 불안했던 것 같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는게 맞나보다 싶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에 새벽녘에 끄적인 낙서와는 달리 J씨는 아직도 잘 살고 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술이나 한 잔 기울이며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생각은 최대한으로 하고, 표현은 최소한으로 한다는 점에서 
디자이너는 시인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펜을 들어 마침표를 찍기까지 아무리 단기간에 완성된 작품이라 할지라도, 
한 편의 시를 위해서는 시인이 살아온 모든 계절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테지요.

디자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단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를 마주한 디자이너의
모든 세월이 녹아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당장은 걱정과 조바심을 잠시 접어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과 더 자주 만나면 좋겠습니다.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무슨 일을 하든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 그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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