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들

브런치를 시작하며_첫 번째

by 최길성

이성과 감성을 키우는 것이 공부다. 이성의 추상력과 감성의 상상력을 기르는 것이 공부 목적이다. 핵심을 요약하고 추출하는 능력이 추상력이다. 문제 제기를 제대로 하면 반이상은 해결한 셈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 엄청난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이 상상력이다. 작은 것은 큰 것을 작게 나타낸 것이다. 추상력과 상상력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지혜라 할 수 있다. 인문의 추상력과 문예의 상상력을 공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삶의 안목과 지혜를 넓혀 살아가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보통신을 전공한 내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지는 15년밖에 되지 않는다. 40년 전만 해도 인문학은 인기 없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수강하는 교양과목으로 여기는 정도였다. 한국의 교육은 해방 후 지금까지 실사구시를 중시해왔다. 직업교육을 강조하고 실용지식을 중심으로 가르쳐왔다. 이러한 영향은 산업화 사회를 살아온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취직이나 취업에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과학기술인을 우대하고 이공계열을 선호하는 정부 정책이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반면에 문학이나 사학, 철학은 밥 빌어먹는 학문으로 터부시 했던 것이 사실이다. 군사 독재 권력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데모 주동자를 키우는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실용학문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사회 분위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농업경제로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60년대였다. 67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한국사회는 노동 경쟁력에 의한 수출주도형 경제 성장체제로 바뀌었다.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농촌을 떠나는 것이었다. 도회지 공단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출세였고 성공의 길로 여겼다. 그들은 가난을 뒷배로 여겼고 인내심이 생존력이었다. 먹고사는 일 이외에 여가나 문화생활은 사치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채찍질하고 담금질하며 지독한 삶을 살아야 생존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들의 치열한 삶은 경주마에 비유할 수 있다. 차 안대를 낀 경주마가 경기장을 달리는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경주마의 차 안대는 곁눈질을 하지 말고 앞만 보고 달릴 수 있게 해 주기 위해 씌워주는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그들의 삶이 그랬다. 근면 성실한 말 잘 듣는 인재가 최고의 덕목이던 때였다. 그러한 인재들이 근로현장에서 대우받고 인정받는 시절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기계 부품처럼 움직이고 땀 흘려 일할 수밖에 없었다. 독재 권력이 빈곤의 늪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농촌에서 빈곤에 찌들어 살았던 내 삶도 똑같다. 가난으로 돈이 안 드는 국립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무원이었지만 기계를 다루는 험한 노동 근로자였다. 철제를 가공하거나 자르고 붙이는 기계 공작원 작업을 주로 했다. 흔히 말하는 기름 밥을 먹는 기술자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2년이 지나 결혼을 하고 나서 학업도 시작했다. 80년대는 주경야독이 유행이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12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골 마을 개천에서 교수가 용처럼 탄생한 셈이다.


내 삶도 경주마나 다를 바 없다. 경기장에서 앞만 보고 달리던 모습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다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선 지 6년 만에 학위 논문이 휴지조각 신세가 됐다. 아날로그 방식이 디지털 시대에 쓸모가 사라진 셈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워낙 빠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도 3년이면 생명 주기를 다할 정도로 짧다. 생계를 위해 새롭게 관심을 갖고 눈을 뜬 분야가 인문 분야다. 방송을 가르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인문학에 관심이 없었더라면 나 자신도 예전에 비해 달라질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장에서 뛰고 달리던 경주마처럼 살던 삶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여 안락을 추구하는 삶이 편하고 최선인 줄 알고 살았다. 초원을 맘껏 누리는 야생마의 삶을 결코 누리게 되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공부하면서 내 삶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180도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발과 성장만을 앞세운 사회에서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 경주마처럼 달려온 삶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진작 좀 알려주지 그랬어요!>라는 책 제목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현대 문명사회를 살고 있지만 눈을 뜨고 나면 변하는 세상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생명주기는 매우 짧다. 때문에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려 들지 않고 바쁘고 아등바등한 삶을 선택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출세와 성공만을 바라보고 살면서 모른 채 외면하고 지내는 모습이 그렇다. 반면에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사상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의 삶에 일깨움을 주고 있다. 동서양 인문학이 아직까지 건재함으로 인정받는 까닭이 아닌가 싶다.


인간을 상품화된 도구처럼 취급하는 현실 사회는 주객이 바뀐 사회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인문학적 삶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 사회에 인간답게 살 권리를 억압하고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은 원인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문교양을 경시하고 소홀한 데서 비롯된 일로 보인다. 인간의 행복한 삶을 훼방 놓거나 민주화 시민 사회로 가는 길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문적 성찰로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미래 사회에 희망을 주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젠 대한민국이 세계적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서게 됐다. 국가나 기업이 근면 성실한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결과다. 공들여 쌓아 온 자랑스러운 결과다. 속내를 채우고 실속을 챙겨야 할 때가 이제부터가 아닐까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지금보다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힘없는 약자라고 무시당하거나 소외되지 않는 모두가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려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인문적 성찰이 없어서는 안 된다. '어제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들'을 주제로 삼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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