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길성 Jun 05. 2024

달덩이 미소 천사

할아버지 육아 이야기

     오늘도 손자와 하루가 시작된다. 달덩이 미소 천사를 만나면 가족사진을 먼저 찾는다. 할아버지 집에 올 때면 한 번도 예외는 없다. 미소 천사가 제일 마음에 드는 물건이 가족사진 액자라니! 참 희한한 일이다. 할아버지하고 가족 사진으로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던 모양이다. 또 좋아하는 게 그림 동화책이다. 책을 꺼내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아는 녀석이다. 겨우 돌이 지났는데 책과 친한 걸 보면 신통하기 짝이 없다. 읽는 내용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아이처럼 가만히 앉아 듣는 손자가 참으로 기특하다.


      손자가 좋아하는 걸 하고 나면 다음엔 할아버지 차례다. 배우는 시간이다. 걸음마 연습은 매일마다 하고 있다. 생각이 날 때마다 걸음마 보조기를 끌고 다닌다. 아직 방향 조절이 서툴러 부딪히면 포기한다. 하지만 속도는 빨라졌다. 오늘은 하이파이브와 악수하는 법을 가르쳤다. 잘 펴지 못하는 손으로 몇 번 따라 하는 흉내를 낸다. 동작을 따라 하는 행동이 어려운지 쉽게 싫증을 내는 편이다. 율동이나 리듬을 섞어해 줘도 흉내를 조금 내다 만다.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 동작도 어설프고 재미도 없을 수밖에.


     오후에 유아차 산책에 나섰다. 반석천 나무 그늘이 정해진 산책 코스다. 밖으로 나오면 아이 표정이 바뀐다. 사물을 직접 보면서 이야기에 반응하는 걸 즐거워한다. 운 좋게 오늘은 물고기 사냥을 하는 황새를 만났다. 잡아먹는 행위는 부드럽게 표현해야 한다. 녀석이 겁을 먹고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비둘기 두 마리가 풀 숲에서 먹이를 쪼아 먹는 모습도 한참 지켜봤다. 동물에 유심히 관심이 많은 손자다. 강아지든 새든 나비든 관심이 많다. 전엔 신이 나 가리키고 소리를 지르더니 이젠 똘망한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 녀석이다. 


     오는 길에 마트에서 8Kg 수박을 샀다. 태어나 처음으로 구경하고 만져 보는 수박이다. 처음 먹어보는 수박의 단 맛에 꽂혔는지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먹고 나서 자꾸만 달라는 눈치다. 손자의 눈치는 이틀이 멀다 하고 달라진다. 반짝거리는 눈빛이 표정부터 달라진다. 식성이 좋고 잠 속이 좋아 쑥쑥 자라면서 눈치도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다. 호기심을 채우려고 거침없이 실행하는 행동력이 왕성한 녀석이다. 눈에 띄면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 행동으로 인지력이 성장하는 시기가 분명하다.


     손자와 지내는 게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빠르게 지나간 적을 잊은 지 오래다. 하루하루가 달콤 야릇한 꿈속을 지나고 있는 것만 같다.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달덩이 미소로 애교를 떠는 아꿍이와 정을 나누는 현실이 꿈만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요즘처럼 많이 웃고 즐거웠던 적이 있을까. 현실 속 삶에서 환상과 같은 희열은 처음이다. 모두 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껌딱지 덕이다. 몸은 비록 지치고 힘들어도 모처럼 생동감 넘치는 삶을 느낀다. 


     종회무진 기어 다니는 녀석이 아꿍이다. 귀여운 껌딱지를 부를 때 쓰는 애칭이다. 그런 아꿍이에게 자주 내뱉는 말이 '애~비!'와 아~이 야'다. '애비!'는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다. '지지!'라는 말처럼 위험과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집안 두 곳에 경계망을 쳐놔 드물게 사용하게 된다. '아~이 야'는 아꿍이 행동이 다치거나 아플 수 있다는 주의 신호이다. 아무거나 입에 넣거나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걸 강조한다. 억양에 힘을 주면 사전 예방 효과를 내기에 적합한 어울리는 표현이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아찔한 경험을 겪었다. 뜨거운 다리미에 안면에 화상을 입혔고, 차에 치인 교통사고를 당하게도 했다. 대중 속에 유기하여 혼쭐이 나 발을 동동 구르며 운 적도 있다.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 물에 빠뜨려 목숨을 잃게 할 뻔한 적도 있다. 한눈팔고 순간의 방심 탓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뼈아픈 상처다. 육아의무를 방기한 탓에 평생 후회할 뻔한 끔찍한 사고들이다. 돌이킬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이 될 뻔한 사고들이다. 손자 육아에 심혈 기울이게 된 배경이 아닐까. 가장 귀중한 일이 육아 노동이 아닐까 한다.


     움직이는 아이는 위험 경고등이 움직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측 불가능한 아이는 단속하여 사전 예방하는 수밖에 없다. 아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수없이 고개를 저으며 'No'를 외쳐야 하는 까닭이다. 아이들 육아가 진짜 힘들고 부담이 느껴지는 이유다. 경외로운 존재에게 때 묻은 손으로 세속의 언어를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맑고 깨끗한 천사에게 부정어와 금지어를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생아를 처음 안을 때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린 것처럼 선하고 아름다운 아이로 자라고 그런 아이로 키웠으면 해서다.


     달덩이 미소 천사가 고맙다. 고루하다 싶을 정도로 안이한 삶에서 할아버지를 깨어나게 해 줘 감사한 마음이다. 걱정 없이 편안하긴 했어도 긴장이나 설렘은 그동안 내 삶과 멀리 떠나 있었다. 껌딱지 네가 등장하여 삶도 바뀌었단다. 벅차기도 하고 보람도 느끼게 되었구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 경이와 희망을 새삼 일깨우기도 했단다. 너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 웃음과 행복으로 오늘도 가득 채워 정말 기쁘다. 할아버지를 보면 언제나 반가워하고 좋아해 주는 손자가 곁에 있어 할아버지는 좋다.


작가의 이전글 할아버지 껌딱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