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 없는 선거가 남긴 후유증과 과제
화려한 벚꽃 축제가 끝났다. 벚꽃 구경을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던 거리는 너저분한 꽃잎 쓰레기 장으로 변했다. 지난주는 불빛 유혹의 벚꽃 놀이와 총선 열기로 불꽃 튀긴 한 주가 아니었나 싶다. 총선이 끝난 정치권이나 민심의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았다. 선거 대책 본부 혹은 선거 운동원이나 다름없는 유튜버들은 오늘도 무성한 하마평을 쏟아내고 있다. 개헌 저지선을 지켜 한숨짓는 여당과 개헌선을 넘기지 못해 아쉬워하는 야당이 향후 정국 운영을 놓고 서로가 고심하는 모습이다.
이번 선거에 놀랐다. 아니,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여태까지 선거 민심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서남부 지역 향우회와 동남부 지역 향우회가 맞붙은 선거전이나 다름없다. 지역이나 계층 간 서로 다른 민심이 부딪친 선거나 다름없다. 고질적인 지역 갈등과 양극화 격차를 선거 민심에 노골적으로 드러났기에 아쉬운 선거라는 첫 번째 이유이다. 지역 균형 발전이나 국민 화합에 도움이 안 되는 후퇴한 정치 현실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총선은 국민 전체 대표를 뽑는 일이다. 나랏일이 아닌 지역일을 챙겨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기초 단체장이나 기초 의원이다. 지역 살림살이나 발전을 약속하고 실천하는 공복들이다. 이번 총선으로 선출된 300명의 동량들은 국민 전체를 위한 공복들이다. 지역 패권이나 이익을 떠나 국가 전체 운영을 책임지고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국정 심판 이번 선거에 지역 이기나 특정 집단의 이익이 좌우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 국가 운명이 달린 선거에 지역 향우회나 동창회가 끼어든 우스꽝스러운 선거 결과가 아닌가.
하지만 총선 결과는 실제로 그렇다. 특히 부울경과 강남 지역 민심이 그랬다. 출구 예측조사에 나타난 오차가 말해준다. 정권 심판 바람이 불자 지역 민심이 흔들렸다 결집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권 실패 책임을 묻던 강한 돌풍이 해당 지역에선 예외였기 때문이다. 6~70년 지켜온 알량한 텃밭 자존심을 부울경 유권자들이 지켰고, 강남 부자들이 기득권 속내를 숨겨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출구조사까지 속인 이기적 양식이 탄핵 정국을 막는 데 성공한 이번 선거가 아니었나 싶다. 이번 총선이 아쉬운 두 번째 이유다.
선거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민주사회는 나아갈 수 없다. 시민의식이 성장하여 선거 혁명도 일으켜 삶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주권재민의 민주시민으로 살고 있지만 관존민비에 종속된 사고는 여전하다. 국민을 위한 일꾼이 국민 위에 군림해도 참고 따르는 현실 사회가 그렇다. 67%의 유권자들이 64%의 득표로 부정 평가를 내려도 재왕 노릇에 변화가 없는 그가 말해준다. 가망성이 보이지 않아도 무기력한 주권자로 고통스럽게 사는 모습이 아쉬움을 느끼는 세 번째 이유다.
총선 일주일이 지났지만 책임자의 태도나 행위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낙제점수에도 책임 회피나 변명만 늘어놓는 모습이다. 자질 부족과 자격 미달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그러한 국정 수행 부적격자를 믿고 도와줄 사람은 없다. 곁에 있던 사람조차 사의를 밝히고 떠나는 현실이 레임덕이 분명하다. 2년의 실정으로 수습조차 힘든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직감할 수 있다. 3년 동안 더 이상 민생과 경제가 훼손되지 않도록 간절히 호소하는 마음이다. 이번 총선에 거는 마지막 안타까운 기대이자 희망이다.
침몰하는 난파선도 있지만 구해줄 예인선도 있다. 새로운 각오로 무장한 300 척의 든든한 선박도 있다. 이젠 새로운 다짐으로 승선한 선장들의 항해술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태풍과 해일로 좌초한 난파선에서 구출하는 동안 순항을 기대하면 안 된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건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위기에서 탈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에 빠진 각종 민생 법안부터 건져내 챙겨야 한다. 혼돈과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검찰과 사법, 언론 개혁은 물론 경제 민주화에 힘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항해를 방해하는 파도나 역풍은 항상 불기 마련이다. 문명을 거스르거나 지체시키는 이들도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다. 맛도 영양도 좋은 음식만 먹고 싶어도 냄새가 고약한 음식도 먹어야 한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삭힌 홍어도 코를 막고 먹어야 하고, 퀴퀴한 된장국 냄새가 싫어도 고집하는 아내가 끓여주면 구수한 척 군말 말고 먹어야 한다. 오랜 전통이나 문화는 싫어해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어렵다. 쉽게 바뀌지도 바꿀 수도 없다. 정치적 지향이 다르고 맛과 취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가 몹시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