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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Oct 29. 2024

책을 읽는 이유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법

     책과 친해진 지 오래되지 않다. 불혹이 지날 때까지 책과 멀었다. 공부에 필요한 책을 가까이했을 뿐 취미로 읽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학위를 마치고 대학에 가서도 그랬다. 논문을 쓰고 가르치기 위한 책만 읽었지 인문 교양은 읽지 않았다. 문학이나 예술은 비실용 분야로 알고 관심이 아예 없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IT 전공 지식이 아니면 문외한이 따로 없는 나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반대다. 전공 분야는 남이 되었고 인문 교양과 친해졌다.


     최근 서점을 찾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 출판사와 인쇄소가 바빠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책이 부족해 구매자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듣던 중 반가운 희소식이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은 문학계가 기다리던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대한민국에 내린 축복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다. 한강 작가를 축하하는 소리로 연일 축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를 향한 탄성과 환호 메시지만 듣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글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한강 작가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이번 경사가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더 있다. 휴대폰과 인터넷에 메몰 된 삶에 일침이 될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온라인 세계에 함몰되다시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생겨서다. 한국인이 교육열은 높다지만 실질 문맹률이 7할이 넘는다 한다. 한글이 우수함을 자랑하면서 제대로 글을 모르거나 문해력이 낮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노벨 수상자가 탄생한 국가로서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노벨살 수상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강한 독서 열풍이 불어오길 은근히 희망을 걸러보는 이유다.


     책과 멀리 지내다 독서에 눈을 뜬 계기가 있다. 십 년 넘게 공부한 전공에 위기가 느껴졌다. 전공을 하고 싶은 학생 수가 줄면 담당 과목은 없어진다. IT 전공이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다니! 불안한 미래에 초조해지기 시작됐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인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세상 물정에 어둡던 사람이 새로운 도전이었다. 인생 이야기를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과목이라도 개설할 의도였다. 5년 동안 철학과 문학, 인문 고전과 역사, 예술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며 진선미를 추구하는 삶에 빠져 지냈다.


     엔지니어에게 인문 옷이 어울릴 리 없다. 어설프고 낯설었다. 어색함을 이겨내는 길은 책을 많이 읽는 것밖에 없었다. 읽는 대로 사유한 내용을 블로그와 노트에 옮겨 적는 수밖에 없었다. 차곡차곡 쌓는데 읽은 책이 4천 권이 넘었다. 폭식 독서로 갑부가 된 느낌이었다. 생각의 부자가 된 나였다. 뿌듯하고 벅찬 마음이 든든한 기분이었지만 재미와 감동으로 전하는 스토리텔링은 어설펐다. 야생에 풀어놓은 경주마가 걸음마를 망설이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인생도 드넓은 야생의 삶과 비슷하다. 생존의 길이 두렵고 험난하다는 것이 닮았다. 부모나 스승, 친구가 없으면 더 어렵고 힘들다. 그나마 믿을만한 친구가 있으니 다행이다. 자문으로 지혜를 구하게 도와주고, 불안이나 고통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책이다.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욕망을 달래주는 유익한 친구가 책이다. 책에 매료되어 그 여운을 느끼고 무아지경에 빠지는 이유다. 날개 달린 새가 짐승처럼 살면 안 된다. 날갯짓으로 날아 먹이를 구하는 순간의 짜릿한 기쁨에 살아간다. 책을 읽는 이유다.


     세상을 이끈 인물치고 독서광이 아닌 사람은 못 봤다. 역사 속 주인공 모두 남다른 독서력으로 남다른 사고력을 발휘한 위인들이다. 천재 작가 한강 역시 어릴 적부터 책벌레였다. 세계가 주목할 걸작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도 독서력 때문이라 확신한다. 그의 사유와 통찰을 눈으로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없다. 글 속에 빠져 동행을 이끄는 매력 때문이다. 어휘나 문장에서 벗어나 감히 딴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독특한 마력이 그의 문장 속에 숨어있는 느낌이다. 그의 이야기와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 한 권 펴본 적이 없어도 살 수 있다. 타조처럼 날갯짓을 포기한 새도 있다. 일제 식민으로 태어난 어머님이 그랬다. 평생을 사셨어도 한글도 깨치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책은커녕 글을 모르는 까막 눈으로 사셨다. 폭력이나 무시에도 사리 분별 못하는 숙맥처럼 반항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섬광을 마주하는 희열마저 느끼지 못한다. 괴로움도 두려움도 자유롭게 표현 못한 어머님이 그랬다. 날 지 못하는 새처럼 어두운 세계에 갇혀 지냈다. 처절하고 딱한 운명이 너무나 애처롭다. 가엾고 그리움에 눈물만 자꾸 나온다.


    그런 어머니가 아들 손을 빌려 쓰면서 내뱉던 말이 "배워서 남 주냐"다. 서글픈 마음조차 표현 못하는 한탄 섞인 입버릇이다. 남이 무시하고 얕잡아봐도 눈을 감고 살던 삶에 대한 절규였다. 무지의 지조차 전혀 알지 못하던 울부짖음이 아니었나 싶다. 글을 배운 아들은 그녀에게 언제나 개천에 난 용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마음속으로 남들에게 자신을 대신한 아들을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세상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다.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자신의 여유로운 삶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진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글을 읽기 전 터치 스크린을 사용하는 법부터 배우는 아이들이다. 책을 읽는 아이 보다 휴대폰 중독자를 키우는 격이다. 부모가 한시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아이가 게임과 오락에 빠지는 것을 걱정한다. 너도나도 허구의 세계에서 진리나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허상을 믿고 의지하는 삶에 익숙하다 보니 인생이 허망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의존하는 현실이 우려되는 까닭이다. 한강 작가 탄생을 계기로 한국에 책에서 지혜와 보석을 찾는 열풍이 불어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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