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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Aug 05. 2018

남의집 창업


이런 건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4개월간 재밌게 일하던 직장, ofo가 자금난으로 인해 최소한의 비용으로만 한국 시장 운영을 유지하겠다며 대부분의 직원들을 정리해고했다. 나도 그 대상였다. 동료들 모두 황당, 혼란, 분노에 휩싸였다.


이건 취업사기다!


후회한들 무엇하랴.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내가 선택해서 들어간 직장이였으니. 외국계 회사가 실적 악화로 법인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내 의지와 무관한 결과였다지만 이러니 저러니 난 짤린거다. 지인들은 네 탓이 아니니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된다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으나 막상 짤리고 보니 다른 직장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시간의 문제일 뿐 어디에 다시 취직한들 아무리 길어도 10여년이 지나면 난 정리되기 마련이라는 감각이 몸에 박혔다.


회사를 나오게 되었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아찔함을 경험하니 내 일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지금이야 젊다는 막연한 희망이라도 있다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정말이지 아찔하겠다 싶었다. 따박따박 들어오던 급여가 날라가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심정. 하니 더 이상 나의 쓸모를 남이 주는 월급과 맞바꾸기 보다 내 일에 쓰자 마음 먹었다.


딴짓인 줄 알았는데 보험이였다.

이 상황에 남의집 프로젝트는 제법 의미있게 성장하고 있었다. 거실을 서재로 돌려보는 가설 증명을 마치고, 남의집 서재를 양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였다. 알음알음 알려져 자발적으로 남의집 호스트로 신청하는 이들도 증가하면서 파트타임으로 뛰기에는 버거워지던 참이였다.


그렇게 남의집 프로젝트가 나의 시간과 관심을 더 요하던 타이밍에 이 사단이 난 거다. 딴짓으로 벌려왔던 프로젝트가 어느덧 일의 꼴을 갖추어 왔고, 시나브로 보험이 되어 있었다. 굿타이밍이라 말하기는 뭐하지만 두가지 일의 흥망성쇠 사이클이 묘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보험이라 표현했으나 남의집 프로젝트는 사업으로서의 꼴을 갖추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지표라 칭하기에 부끄러운 숫자들과 가늠되지 않는 시장 규모. 지속가능성의 불확실성 등등. 사실, 될 이유보다 안될 이유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이건 나의 일이다.


넌 누구냐?

정체를 밝혀 보자 마음먹었다. 남의집 프로젝트가 1년 6개월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호스트와 손님들간에 형성되었던 느슨한 취향 공동체가 무엇일런지 제대로 파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창업했다.


내가 좋아서 벌린 일에 사람들이 반응을 했고 점점 커져가는 걸 지켜보니 이걸 딴짓으로만 계속 유지한다면 내가 감당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될 게 자명했다. 그 와중에 두가지 중 하나의 일이 없어졌으니 내 능력과 시간을 온전히 남의집 프로젝트에 투자해서 끝까지 가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게다.


한때의 추억으로 간직하기에 남의집의 경험은 너무도 강렬했기에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또다시 월급이 나오는 직장으로의 이직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감내하는 것으로 후회할 지언정 미련은 남기기 싫다.


무자본 존버

절묘하게도 이 즈음 몇몇 투자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의집이 궁금하단다. 창업을 하게 되면 투자는 받아야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투자 피칭용 데크는 고사하고 남의집을 하게 된 1년 6개월의 스토리만 줄줄이 늘어놓았다.


시장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남의집이 내건 '취향 공동체'라는 것의 실체를 투자자들의 프레임에 맞춰서 커뮤니티 비즈니스 혹은 레져 비즈니스 등등으로 라벨링 한 후에 그것의 성장 잠재력을 판단하는 의식구조였는데 심사관들이 어느 시장으로 보느냐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으로 나뉘었다.


창업자가 바라본 시장에 대한 질문엔 솔직히 답했다. 모.르.겠.다. 특정 시장을 겨냥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고 의미있는 것들로 채워왔고 그것을 향유해 주신 호스트, 게스트의 피드백을 받아 '취향 공동체'로 표현해 왔을 뿐이다. 물론 앞으로 사업으로서 남의집을 이끌려면 시장에 대한 정의가 중요하다. 창업 초기에는 남의집 시장에 대한 고민과 탐색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을 생각이다.


그럼에도 감사히 긍정적으로 봐주신 투자자분들은 얼마의 투자금이 필요한지 알려달라고 제안해 주셨다. 한데 막상 이런 요청을 받고 생각해 보니 현재 단계에선 딱히 돈이 필요하진 않았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남의집 공급의 규모에 대한 가설 검증을 마쳐야 추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건비도 나가지 않는다. 내 월급이 문제인데, 내 생활비를 위해 투자까지 받기엔 좀 그렇지 않은가. 몇달간 존버하자 마음먹었다.


창업가들

투자자와 미팅을 하며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창업할 준비가 너무 안되어 있구나. 그도 그럴 것이 창업에 필요한 지식과 업무를 직장에서 배울리는 만무하다. 남의 일만 하는 조직생활에서 내 일을 하는 법을 누가 알려주리요.


남의집을 하게 된 취지가 내 일을 하는 경험이였는데, 창업으로서의 일은 또 완전히 다른 영역이였다. 책도 찾아보고, 블로그와 유투브 강연도 열심히 챙겨봤으나 성에 차지 않았다. 그곳에는 멋진 이야기만 있었고 현실적인 고민과 해결방안에 대한 경험을 공유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창업가들을 찾아 나섰다.


카카오에서 일한 덕분에 카카오 출신의 창업가들을 몇몇 알았고, 그외의 대외 활동을 통해 느슨한 연결 고리를 가진 창업가들이 있었다. 그분들께 연락해서 "남의집으로 창업할라요~ 도와주세요!" 라고 했다. 처음엔 대부분 "남의집이 가능성이 좀 있나 보네?" 라고 묻고 여기에 "아뇨, 여차저차 회사에서 나오게 되어서요. 남의집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구요." 라 하니 토닥토닥하며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흔쾌히 내어 주셨다.


공통질문이 있었다. '시장정의', '공동창업자와 지분율', '엑셀러레이팅' '투자유치' 등등이였는데 희안하게도 전부 의견이 달랐다. 창업은 비정형적이다. 는 말이 이런 걸 두고 이야기하는 거였구나 실감했다. 한데 공통되는 조언이 딱 하나 있었다.


바뀌어도 좋으니, 무얼하고 싶은지 명확히 정의하고 일해라.


앞에 붙은 '바뀌어도 좋으니' 라는 조건절은 그만큼 창업자가 생각한대로,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사업이라는 것에 대한 방증이리요. 실패해도 좋으니 (아니 대부분 실패하니) 이 사업으로 무얼하고 싶은지, 사회의 어떤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은지는 명확히 정하라는 말였다. 외부요인으로 본인이 무얼하고 싶었는지 망각한 채 질주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


이 글을 빌어 당신들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해 준 창업가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방문 순서)

스페이스 오디티 김홍기 대표님,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님, 퍼블리 박소령 대표님, 마카롱 김기풍 대표님, 컬쳐 히어로 양준규 대표님, GGTICS  차민창 대표님, 당근마켓 김재현/김용현 대표님, sopoong 한상엽 대표님


팀빌딩

공동창업자를 열심히 꼬시고 있다. 프로젝트로서의 남의집은 나 하나로 가능했지만, 사업으로서의 남의집은 나 하나로 택도 없다.


우선 올해까지는 남의집 공급의 양적 성장에만 집중할터라 나 하나로 버티고, 팀구성은 올해말쯤 윤곽을 잡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전에 어떤 식으로든 남의집 호스트를 영입하는데에 이런,저런 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면 언제든 연락주시라! 월급은 못드려도 재밌고 의미있는 경험은 내어드리리~ 문의는 아래 카톡 상담으로!



나의 일터

ofo 는 퇴사 통보 후 3주 뒤에 나가라 했다.(7월 31일자 퇴사) 하여 우선 일할 장소부터 구하는 게 시급했다. 원래 일하던 위워크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집근처 카페에서 일하자니 눈치가 보였다. 그때 하늘에서 귀인을 내려보내 주셨다.


올해 초 나를 딴짓하는 직장인으로 인터뷰하겠다며 연락해 온 '딴짓 매거진'. 매거진 이름처럼 딴짓하는 이들에 대한 콘텐츠로 매거진을 만드는 제작진 3명(a.k.a 딴짓 시스터즈) 역시 본업은 따로 있으면서 딴짓거리로 매거진을 만들고 있다.


최근엔 딴짓 시스터즈 중 한분인 박초롱님 본업차 ofo 제휴 이야기가 오가던 중였는데 사업철수를 이야기하며 더이상 제휴 논의가 곤란해졌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곤 이제 남의집으로 일할 장소를 구해야 하는데 막막하다며 하소연했더니 그녀가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딴짓 매거진이 안국역 근처에 한옥공간을 얻었는데 평일엔 비어요~


이건 잡아야한다! 는 육감이 뒷통수를 쐐렸다. 내가 그 공간을 쓰겠소. 근데 내 주머니 사정상 임대료를 내기엔 버거우니 한옥공간을 남의집 서재로 돌리고 수익을 쉐어해 드리리다! 이래뵈도 내 별명이 문지기요. 라고 제안했고 딴짓 시스터즈는 흥쾌히 받아주셨다.


그분들의 선의가 너무 감사했고 남의집 서재를 열심히 운영해서 쏠쏠한 수익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자 마음 먹었다. 더불어 임대한 한옥 내에서 두가지 다른 프로젝트가 공존한다는 걸 기록으로도 남겨두고 싶어 문서화했다.


계약서로 쓰자니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아서 6.15 남북공동선언문을 패러디했다. 거기에 계약서에 들어갈 수익 배분율과 계약 기간 각자의 역할 분담 등등은 유지해서 아래와 같은 '딴짓 매거진, 남의집 프로젝트 공동선언문'이 완성되었다.


공동선언문 발표 후 기념촬영 (왼쪽의 세 여성분들이 딴짓 시스터즈)


이 한옥 공간에서 운영하는 남의집 서재의 애칭은 '딴짓'이다. 무슨 컨셉인고 하니 말그대로 딴짓하며 놀다가는 공간이다. 딴짓 시스터즈 중 2호인 황은주님이 출판사 편집자인데, 그분이 소장한 책들로 서재를 구성했고 추천 도서 큐레이션까지 해놓아 별생각없이 놀러와서 읽고, 쓰고, 멍때리며 딴짓하기 좋은 공간으로 기획했다.


공간 기획은 딴짓 시스터즈가 했고, 운영은 내가 맡는다. 남의집 업무를 보는 중간중간 방문한 손님을 맞이하며 공간을 소개하고 간식을 내어드린다. 하나의 공간에 서재와 오피스가 공존하고, 주말엔 딴짓 매거진의 각종 행사가 열린다. 진정 공유 오피스. 더 자세한 공간 소개 확인과 방문 신청은 아래 링크를 클릭!



그렇게 광야로

8월 1일부터 한옥으로 출근하며 광야 생활을 시작했다. 얄굿게도 첫출근날은 기온이 39도로 관측 이래 가장 덥다는 날였다. 회사라는 가림막없이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고 있자니 숨이 막혀온다. 독립을 하고 내딛는 첫걸음이 설레임과 환희로 가득차기는 커녕 초조하고 무겁다.


그래서 글을 쓰자 마음먹었다. 롤러코스터처럼 휘청이던 최근을 남기며 생각도 정리하고, 무언지 모르게 머리에 박혀있는 초조함이 글을 쓰면 조금은 덜해지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 막상 글을 마무리할라치니 글을 쓸 시간에 남의집을 어찌할지 더 고민했어야지 하는 자책의 목소리가 마음 저편에서 울린다.


내가 정한 일로, 스스로 시간을 컨트롤하고, 그 결과물을 평가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름 회사에서 자기주도적으로 일한다 생각해 왔는데 남의 일을 자기주도적으로 하는 것과 내 일을 하는 건 완전히 다르더라.


앞으로 수없이 고민하며 바라볼 남의집 사무소의 시선


남의집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남겼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창업할 생각은 없다.
아직. 밖은 추우니까.

그렇다고 지금 하는 일로 평생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언젠가는 창업이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인 시점이 올거라 본다.


생각보다 그 시점이 빨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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