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나를 만나다
노란색 종이에 후기처럼 남겨두고 왔는데 버리지 마시고 시간 편하신 때에 읽어봐주세요
문자가 한통이 왔다. 방금 전 우리집에서 열린 남의집 숲속의 거실서재 에 다녀가셨던 손님께서 보내셨다. 노란색 편지지가 쪽지처럼 접혀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 편지는 '김성용 작가님' 으로 시작한다. 작가?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다.
안녕하세요. 김성용 작가님. 저는 이제 29살이 되는 ***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편지를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저는 중학생 때 <어학연수 때려치우고 세계를 품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학생 때 1년여간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담은 나의 첫번째 책 <어학연수 때려 치우고 세계를 품다> 의 독자께서 남의집 손님으로 놀러오셔서 남긴 편지였다. 2007년에 내놓은 책이니 10년도 넘은 책인데 아직도 기억해 주는 독자분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분은 중학생 때 내 책을 보고 본인도 대학시절에 장기 배낭여행을 다녀오겠다 다짐하며 돈을 모았고, 그렇게 1년여간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소개했다. 그 뒤 취업하고 사회에 적응하며 정신없이 지내다 얼마전 우연히 본인의 여행 경험을 사내에서 나눌 기회가 생겨 자연스레 내 책 이야기를 꺼냈고, 이 저자는 지금 뭘하며 지낼까 궁금해서 페이스북을 검색해서 지금의 나를 찾았다고 했다.
남의집 문지기.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계시더라구요. 뭔가 자연스러운 느낌이였어요. 무례하지 않게 표현하고 싶은데.. 음. 제가 책에서 봤던 저자님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반가웠던 것 같아요.
10여년 전 여행책에 담긴 내 모습이 지금의 문지기와 어울린다는 말. 내 젊은 날의 화양연화가 지금의 내 삶에 뭍어져 있다는 것 같아서 기뻤다. 더불어 독자의 눈에 비친 현재의 내가 10년전 나에게 부끄럽지 않아서 다행였다. 그간 삶의 풍파에 매몰되어 살아지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닐까 걱정하며 차마 끄집어 낼 용기가 없었는데 과거의 내가 봐도 괜찮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나를 칭찬했다.
저도 작가님처럼 제 다음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작가님의 책으로부터 영향받은 게 크고 조금이나마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요.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학창시절 우연히 내 책을 보고 영향을 받아 나처럼 여행을 다녀온 이분처럼 지금 내가 벌려서 만든 남의집 서비스 경험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번 주말에도 이집저집에서 열린 남의집 후기들이 SNS에 올라가며 남의집이 태그가 되었는데 그 중 이런 후기가 있었다.
여러번 남의집을 방문하고 그때마다 항상 나같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1회에 그치지만 진짜 대화를 하며 나를 곱씹게 되었다. 난 아직 제자리인 것 같지만 오늘의 나는 또 다시 내 방향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오늘 또 좋은 사람들과 진짜 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겠지
플랫폼이 매체인 요즘, 내가 만든 거실 플랫폼에서 많은 이들이 취향을 매개로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며 느끼는 경험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라옵기는 남의집을 경험하는 한분한분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이 되었기를 희망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문지기로 일하는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때도 오늘처럼 10년전 문지기를 만났었다면 알은 채 하는 남의집 유저에게 난 어떤 모습일까?
남의집 호스트를 하며 다양한 낯선이들을 만나다 보니 이렇게 예상치 못한 세렌디피티로 일상을 새롭게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남의집을 '거실여행'이라며 여행업으로 정의를 내린 것 역시 10년전 배낭여행 경험의 편린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