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기억
가끔 떠올리며 웃는 꽤 오래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의 기억.
할머니가 하루에 한 잔씩 꼭 챙겨먹던 커피믹스의 냄새가 좋았다. 그러나 어린이는 커피를 먹으면 안좋다는 말이 있었고, 그 말을 들은 엄마와 할머니는 어린이인 나에게 커피를 주지 않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집을 빠져나와 경비실로 향했다. 우리 집은 일층이었고 경비실은 건물 입구에 위치해있었다. 옆집 다음으로 가까운 곳은 옆옆집이 아닌 경비실이었다.
경비 일은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일이었기 때문에 경비아저씨는 두 분이었다. 경비아저씨 두 분은 하루씩 번갈아가면서 왔다. 두 경비아저씨들은 자기가 지키는 동의 많은 어린이들을 다 알고 있었다. 인사를 아주 강박적으로 하는 어린이였던 나는 경비아저씨들한테도 인사를 열심히했고, 그 많은 어린이들 중에서도 특히나 예쁨받았다.
그 중에 할아버지에 가까웠던 경비아저씨인 할아버지(이하 경비할아버지)는 나를 엄청 예뻐했고, 우리 할머니처럼 커피믹스를 좋아했다. 경비할아버지가 오는 날이면 믹스커피를 얻어먹으러 경비실에 놀러갔다. 문을 두들기면 경비할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스윽 열어주고, 나는 그 옆에 스윽 앉는다. 경비할아버지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아 그의 종이컵을 빤히 쳐다보며 엄청 먹고싶은 눈빛을 한다. 그 눈빛을 본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커피믹스를 타준다. 그러면 나는 그와 나란히 앉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긴다. 커피를 앞에 놓고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몰래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법이다. 수십번을 가도 그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매번 껄껄 웃으며 커피를 내어줬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던 커피믹스. 그렇게 후루룩 커피 한 잔을 비우고는 다시 경비실을 스르륵 빠져나온다. 난 아무 것도 안 먹었어. 정말이야.
세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커피믹스와 그 커피믹스가 이어준 우정의 기억. 나는 이제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는데다가 경비할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주변으로 퍼지던 따뜻한 공기와 할아버지랑 마시던 커피가 가끔은 엄청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