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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자 Feb 14. 2021

수영을 하다가 깨달은 느림의 미학

물을 잔뜩 마시고 깨달은 것들

연휴를 맞아 호텔에 수영하러 쉬러 갔다. 묵는 숙소의 수영장이 특히나 예쁘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갔으나, 막상 묵어보니 그냥 침대 있고 수영장 있는 숙소일 뿐이었다. 얼마전에 출장으로 갔던 비즈니스 호텔과 다를 것 없었다. 아, 조식이 너무 너무 맛있어서 또 가고 싶다는 거 빼고. 아, 들어가자마자 너무 넓고 쾌적하고 예뻐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는 거 빼고. 이정도면 다른 거 아닌가

호텔 가면 적어도 한 번은 수영장에 간다. 체크인 해서 간단한 피트니스와 산책, 돌아와서 수영, 새벽에 일어나서는 수영하고 조식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면 체크아웃 할 시간이 된다. 이 글은 태릉 선수촌 수기가 아니고 호캉스 가서 수영한 이야기다.

어쨌든 수영을 하러 갔다. 먼발치에 왁자지껄한 어린이들과 진땀 흘리는 부모들이 보인다.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들을 뒤로 한 채 물 속에 들어간다. 자유영, 배영, 평영 등 각종 영법을 구사하며 레인을 돌기 시작한다.

수영할 때 같은 레인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 뒤에 누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빨리 가려고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그럼 자세가 막 흔들리고 생전 안먹던 물도 꿀꺽꿀꺽 마시게 된다. ‘뭐야, 나 왜이래?’ 당황하게 된다. 마음만 급하다. 몸은 급한 마음을 못 따라 간다. '하..분명 저 초딩들이 여기에 쉬 했을텐데..' 빨리 물 밖으로 나가고만 싶다. 억지로 몇 바퀴 더 돈다.

결국 물 밖으로 나온다. 잠시 선베드에서 쉬다보면 물 속에 있던 사람들도 나간다. 레인에 아무도 없으니 다시 들어가볼까? 싶다. 레인에 아무도 없고 또 방으로 올라갈 때가 됐다, 마지막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에라이~ 아무도 없으니까/마지막이니까 천천히 하자~’ 없던 배짱이 생긴다. 물 속에 조금 더 있고 싶은 마음도 든다. 왠지 아쉽다. 그래서 느긋하게 간다. '천천히 가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가는데, 그래도 어쩐일인지 속도는 똑같다. '엥? 나는 디지게 천천히 가는 것 같은데? 속도는 똑같고 물은 하나도 안먹는데다가 자세도 안흔들려. 뭐야?' 어쩐지 조금 더 쉬워진 기분이다. 있는 힘껏 천천히 가는데도 너무 빨리 도착해버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어느새 '한 바퀴만 더, 한 바퀴만 더’ 하고 있다. 빨리 가야 된다는 강박으로 레인을 돌면 1분이 10분 같은데 그런 생각 없이 놀다보면 10분이 1분 같다. 심지어 배영할 땐 물 위에 떠다니는 보노보노의 이미지가 내 위에 오버랩 된다. 신나서 콧노래까지 흥얼흥얼하다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어? 벌써 이렇게 됐어?’하며 호다닥 나오는 나를 발견한다.


물 속에서 삶을 본다. 급하게 간다고 반드시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님을, 때로는 조급함보다 느긋함이 이긴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항상 그렇다는 것을. 물 속을 몇번이고 둥둥 떠다니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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