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았던 인턴 생활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이었다.
쟁쟁한 지원자,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나의 날것의 자기소개서 때문에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는데. 덜컥 합격이 되니 얼떨떨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말이야. 가진 것도 준비도 안된 나를 뽑아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면접관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인턴이라는 자리에 대학원생은 너무 오버스펙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날것의 자기소개서는 오히려 어디서 베껴온 것이 아니라 더 눈길이 갔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나의 첫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MICE(Meetings, incentives, conferences and exhibitions) 산업이라고 불리는 미팅, 전시회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던 이유는 몇 년간 고민했던 나의 강점과 관심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업무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것을 좋아하며 영어도 활용할 수 있는 직무.
밤 12시가 되어 퇴근하면서 페이스북에 '밤 12시. 야근 후 택시를 타고 퇴근하고 있고 내일 8시 출근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즐겁다'라는 글을 썼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야근해서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설렜기 때문에.
그렇게 3개월을 보내면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보고 행사의 중요한 운영도 작게나마 맡아서 해 볼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의 정보보안 담당자들이 한국에 연수하러 와서 KISA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내부에도 가보기도 하고 또 한국민속촌에 가서 한국 문화를 알려주기도 하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일은 재미있었다. 다만, 주최사인 고객의 갑질이 좀 심했다. 당장 내일 행사 시작인데 밤새서라도 바꿔오라는 오더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힘든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이 어떻게 항상 재밌기만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꼭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빠르게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함께 일하던 팀장님이 내가 꿈꿨던 '커리어우먼'의 표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나도 여기서 일하면 저렇게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웬걸.
내 우상이었던 팀장님이 아파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셨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수술이 필요하다고, 아마 암인 것 같다고 그러더라.
사유는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너무 잦은 야근과 갑질 스트레스로 인해 그렇게 되신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업무 환경에서는 안 아픈 게 이상하다.
그렇게 나는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내 천직을 찾은 줄 알았는데. 이제 진짜 사회생활 해 볼 수 있는 건가 싶었는데.
나는 다시 찾아야 했다.
뭐 하면서 살면 행복하게 살까? 어떤 일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