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백화점, 명품 브랜드와 같은 하이엔드 업종은 타 업계 대비 디지털로의 전환에 그동안 소극적이었다.
나 또한 럭셔리 업계, VIP 고객관리 담당자로 명품은 온라인을 통해 소구 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믿었으며, 자칫 온라인 활동들이 우리 브랜드 품격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심하고 밀착된 케어가 중요한 럭셔리 업계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출처 : Euromonitor; Forrester
럭셔리, 온라인 시장
그러나 글로벌 럭셔리 온라인 시장은 2025년까지 약 91조 원으로 지속적 성장, 전체 럭셔리 매출 규모의 20% 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고객의 40% 이상이 온라인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소비자층의온라인
젊은 고객일수록 명품의 첫 구매 채널로 온라인 비중이 높다.
실제로 18~24세 고객의 14%가 명품의 첫 구매 채널이 온라인으로 조사되었다. 밀레니얼, Z세대 쇼퍼들은 럭셔리 시장의 30%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높은 고객층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밀레니얼과 Z세대만 보면, 2017년 글로벌 명품 성장의 85% 를 견인했다.
2018년 S/S 캠페인 ‘구찌 상상의 세계(Gucci Hallucination)’ 에서 예술적 접근을 디지털 기술과 접목했다. 스페인 아티스트 이그나시 몬레알(Ignasi Monreal)이 르네상스 풍으로 완성한 70여 종의 패션 아트워크를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방식으로 선보였다. 52개의 구찌 매장에서는 몬레알의 아트워크를 티켓 형태로 제공하고, 매장 내 VR 기기를 통해 캠페인 아트워크를 360도 파노라마 형태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스캔 가능한 스티커 형태의 광고를 매장 쇼윈도에 부착해, 스캔 코드를 구찌 앱에서 실행하면 아트워크를 증강현실 속에서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이렇듯 디지털을 새로운 고객 경험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구찌의 진취적인 행보는,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에게 변화와 도전의 메시지를 전하며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럭셔리 업계의 디지털화, 고려할 부분
1. 비즈니스 관점에서의 디지털 접근
다수의 럭셔리 업계들은 기존 오프라인, 매장 중심 조직에서 디지털 조직을 추가하고 있다.
새로운 매장 오픈 시 브랜드 웹사이트 트래픽이 37% 증가하며, 역 상황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땅따먹기 하듯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구분된 조직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우선, 하나의 브랜드 전략 하에 활동할 수 있도록내부 조직을 재정립하고 적합한 업무 역할과 KPI를 부여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은 채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디지털은 단순히 쇼핑하고 구매를 넘어, 고객 경험을 전반적으로 바꾸었다. 특히 럭셔리 업종은 브랜드와의 감성적 교감, 스토리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디지털은 언제 어디서라도 지속적인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가능케 한다. 과거 Instagram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구매 가능한 새로운 매장 창구가 되었으며, 디지털은 이제 매장의 역할과 고객 경험을 재창조하고 있다.
2. 채널별특성, 운영목적에적합한 KPI 설정
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 PPC (Pay Per Click)와 같은 일종의 키워드 광고의 목표는 웹 사이트로 트래픽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트래픽을 구매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와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채널의 특성상 다소 다른 역할을 한다. 인스타그램은 팔로우하고 싶은 사람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채널의 KPI를 구매전환으로 측정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대다수의 소비자는 '검색모드'에 있을 때 브랜드에 대해 조사하고 꼼꼼히 알아본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검색모드의 시간이 더 길며, 까다롭게 진행된다.
소셜미디어와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유입률, 구매전환율과 같은 판매 메트릭보다는 커뮤니티 참여도, 공유, 전달과 같은 브랜드와 연관된 KPI로 고려하는 게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매출, 구매율로 평가하는 것이 유일한 메트릭이 될 때, 캠페인의 창의성이 대부분 손실되고 인플루언서의 역할은 그 의미와 진정성을 잃게 된다.
3. 데이터 전략과 신기술
수익성과 브랜드 차별화는 비즈니스의 데이터 전략과 기술적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럭셔리 온라인 플랫폼 파페치(Farfetch)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통해 수요 예측, 상품을 주문함으로써 리드타임 단축, 재고율도 최소화하고 있다. 구찌는 파페치와 파트너십을 맺고 결제 후 90분 만에 상품 배송을 주문하여 젊은 쇼핑객들에게 즉각적이고 편리함의 가치를 제공하였다.
데이터 전략과 신기술은 고객 경험을 더욱 편리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더욱 진정성 있게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4. 균형적인플루언서마케팅
인스타그램은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DNA를 선보일 수 있는 필수 플랫폼의 일부가 되었다. 패션 비즈니스의 최근 기사에 따르면, 브랜드 인스타그램 팔로잉규모와 판매 사이에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왔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추종 자수는투자자를 위한 지표 역할을 한다.
이에 반해, 럭셔리 업계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진행할 때 신중하게 착수한다. 자칫 명품 브랜드의 희소성을 평가절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디올은 2000년대 초에 출시한 새들백을 2018년 초 재 론칭하였으며, 이 캠페인은 수천 명의 인플루언서에게 가방을 선물하는 대규모 인플루언서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디올의 재론칭 가방은 말 안장을 표방한 디자인으로 내가 대학교 2,3학년 때 '잇백 (it bag)'으로 이를 구입하기 위해 용돈을 아껴가며 백화점 브랜드 매니저에게 재고 문의를 몇 번이나 한 바 있다. 이처럼 돈이 있어도 한정 수량으로 구매하기 어려운 상품을 인플루언서에게 무료로 배포한다는 사실은 본 상품에 애착이 깊은 고객들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과거 구매 경험이 있던 나를 포함하여). 결과적으로 디올은 엄청난 수준의 브랜드 인지도를 달성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놓고 보았을 때 과연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브랜드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는 다른 개념이고 럭셔리 브랜드의 경우 브랜드 가치가 인지도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소셜미디어의 높은 접근성, 개인 팔로워와의 친밀성은 럭셔리 브랜드가 추구하는 신비로움이나 희소성과는 상반된 특성이다.럭셔리 브랜드가 이 상반된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소셜미디어의 중요 포인트이다. 장인정신, 독창적 디자인, 개인화 등 럭셔리 제품의 DNA를 희석하지 않으면서 민첩하고 신속하게 운영할 수 있는 럭셔리 업계만의 운영 모델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며 향후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5. 럭셔리 업계,판매채널
온라인 판매채널은 실시간 주문 접수, 재고 확인, 글로벌 결제시스템, 환불, 고객센터 등 기술적으로 수반되는 것들이 있다. 럭셔리 업계는 내부적 역량에 따라 플랫폼 업체와의 파트너십, 인수, 혹은 직접 구축할지 선택한다.
명품 브랜드를 보면, 소규모 부티크 브랜드는 디지털 플랫폼과의 (예. 파페치, 육스, 네타포르테 외) 파트너십, 아웃소싱을 통해 사내 역량을 보완한다. 반면, LVMH 그룹과 같이 멀티 브랜드를 갖고 있는 큰 기업은 LVMH가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들의 통합 판매채널 및 웹사이트를 구축할 자원을 갖고 있다. 멀티 브랜드의 내부 온라인 스토어는 온라인 시장의 78% 를 차지할 만큼 내부적 역량을 갖고 있다. LVMH 그룹의 단독 브랜드의 (예. 루이뷔통, 펜디, 지방시, 셀린, 불가리, 세포라 등) 웹사이트 기능은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 LOOK & FEEL을 보여주는 역할이다. 기존의 오프라인 브랜드 매장에서는 (편집샵, 백화점 외) 불가능했던 채널별 역할 및 포지셔닝이 가능해진 것이다.
판매채널로서 일부 기능에 대한 럭셔리 업계의 선택은 장, 단기적으로 깊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외부 플랫폼과의 파트너십은 단기적으로는 시간과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으나 제3의 플랫폼이 우리 고객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에 데이터 분석과 캠페인에 한계가 있다. 데이터가 곧 자산인 시대에 자칫 소탐대실 (小貪大失)의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 브랜드가 곧 개별 브랜드인 모노 브랜드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상품의 종류도 제한적인 브랜드가 독립적인 온라인 플랫폼을 갖추고 지속적인 운영을 하기에는 실익이 적다.
15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갖은 헤리티지,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정신이 깃든 명품 업계가 디지털 기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태생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명품 업계들의 디지털로의 과감한 투자 및 최근 활동들은 럭셔리 업계가 표방하는 비스포크, 1:1 개인화 서비스에 더하여 빠른 배송, 추천, 제안을 가능케 하는 최첨단 기술의 적용으로 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