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들이 조용히 병들고 있다.
내가 실습한 병원에는 청소년이 많았다. 성별로 따지면 여성이 더 많았는데, 10살부터 19살까지의 연령을 주로 이루고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언니, 동생 사이를 다지며 놀았다. 이들은 최애 가수를 자랑하고 연애 고민을 털어놓으며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아이들은 보통 친해지고 싶은 상대에게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말로 다가갔고, 가까워진 후에도 외모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쌍꺼풀이 있어서 좋겠다, 오뚝한 코를 갖고 싶다, 피부가 정말 하얗네, 비결이 뭐야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자랑도 외모 이야기로 가득 찼다.
아이들의 롤모델은 뷰티 유튜버와 40kg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돌이었다. 말을 재밌게 한다거나 음색이 좋다는 게 이유는 아니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쁘고 허리를 숙여도 뱃살이 접히지 않는다는 점에 매료된 것뿐이다. 아이들은 외모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화기애애하고 신중했다. 말 그대로 좋아 보였다.
나는 퇴원 계획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했다. 즐거워 보이던 아이가 면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울상을 했다. 아이들의 고민은 TV 속 언니들만큼 예쁘지 않다는 거였다. 남자친구를 사귀는 아이의 경우, 살집이 많은 자기를 '만나 주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진로를 정하지 못한 아이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있었다. 하루에 거울을 100번도 넘게 보는 아이는 스스로를 기생충이라고 불렀다. 이런 얼굴과 몸매라면 사회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식사를 거부하는 아이가 있었다. 살찌는 게 죽기보다 더 싫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나면 화장실에 가 목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먹고 토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손등에 상처가 나 있기도 했다. 앞니가 부식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손목부터 어깨까지를 촘촘하게 칼로 그은 흔적도 있었다. 식탐이 많은 자기에게 벌을 내리려고, 동시에 식욕을 참기 위해 정신을 돌리려는 것이었다. 아이는 남의 얼굴을 보고 못생겼다는 말을 쉽게 했다. 그만큼 자기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식욕억제제(펜터민)에 중독되었던 아이도 있었다. 펜터민은 기분 변화, 두근거림, 불면증, 우울증, 과대망상, 섭식장애 등을 유발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어 더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약이지만, 체중 감량이 목적이라면 빠르게 처방받을 수 있었다. 부작용으로 인해 자살 사고가 더 강해져도 그조차 자기를 탓했다. 아이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자기 몸을 부정하고 칼로 흉터를 냈다. 1년간 약 133만 명이 식욕억제제(펜터민)를 복용했다는데 그중 91.4%가 여자라는 기사가 낯설지 않아졌다.
정서관리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한 날이다. 긍정적인 감정을 고양하기 위해 장점을 작성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 3가지, 타인이 생각하는 장점 3가지를 작성한 다음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말미에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가지려면 어떤 행동을 하면 될지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이 활동을 준비할 때는 성격적인 장점을 찾아 서로를 칭찬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외모 칭찬으로만 꽉꽉 채워지고 끝이 났다.
여자 아이들은 자기가 갖고 싶은 타인의 장점에다 ‘피부가 하얗다’ ‘눈이 크다’ ‘키가 크고 날씬하다’와 같은 외적인 요소만 작성했다. 나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외모가 아닌 성격적인 부분을 표현할 수 있게 독려했지만, "피부가 타지 않게 햇빛을 하나도 받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들에게 너그러운 성격과, 남을 웃기는 것,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얼마나 말을 재미있게 하는지, 암기를 잘하는지, 남을 편안하게 하는 재능이 있는지 또한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예뻐야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2021년 6월 15일 (화) 수련일지
설명을 아무리 달리 해도 ‘예뻐지는 것’이 매번 주제가 되었다. 여성 청소년은 자신의 이목구비와 피부, 키와 몸무게를 비롯한 모든 신체 부위를 나노 단위로 나누어 평가했다. 자기 얼굴을 극도로 싫어해서 자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회복지사로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고민했지만 외모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선행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어린아이들이 생김새 때문에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