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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i Oct 30. 2022

나도 한 번은 시체로 살고 싶어

폐쇄병동과 엄마

내일이면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학교 열람실에 사람이 꽉 차서 복도 아무 데나 엉덩이를 붙인 학생부터 구석진 화장실 앞에서 자기가 외운 걸 중얼거리는 이들로 북적이고 있다. 나는 운 좋게 딱 한 자리 남은 걸 잡아채 의자에 백팩을 걸치고 전공 책 두 권과 필통을 책상 위에 올렸다.


하필이면 내일 아침 9시부터 시험을 쳐야 해서 마음이 바쁘다. 교수님이 시험에 나온다고 했던 걸 손으로 쓰면서 외우고 선배가 준 족보를 풀고 시험 범위를 3 회독하는 게 오늘의 목표다. 한 눈만 팔지 않으면 새벽 4시 전에는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책을 쫘악 펼치고 검정, 파랑, 빨강 볼펜과 형광펜 2개를 차례대로 꺼낸 다음, 이면지 한 움큼을 탁탁 정리해 책 뒤에 뒀다. 그리고 에어플레인 모드를 하려고 휴대폰을 잠깐 꺼냈다. 미리보기로 뜬 카톡만 확인하고 공부해야지. 


시험공부를 얼마나 했냐는 동기의 메시지는 읽지 않았다. 올리브영에서 할인한다는 카톡은 길게 눌러 삭제했다. 아프다고 시작하는 엄마의 카톡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딸램아 나한테 와줄 수 있니' '몸이 안 좋아' '혼자 있어?' 세 마디가 한 시간 간격으로 드문드문 와 있었다. 나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열람실을 나갔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 몰라 언니의 연락처에 들어가 차단을 해제하자 바로 전화가 왔다. 이미 애태우며 통화가 될 때까지 전화했는데, 영영 받지 않을까 봐 걱정됐다고 우는소리를 한다. 나는 용건만 말하라고 했다. 


언니는 엄마를 데리고 내 자취방에 들러도 되겠냐고 물었다. 엄마가 불안에 떨고 있는데 새로운 장소로 옮기면 조금 나을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어깨를 움츠리고 누군가를 의식하는 듯 눈알을 양옆으로 굴리는 게 꼭 다섯 살 아이로 돌아간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엄마는 어떤 남자가 방에 숨어서 자기 말을 엿듣고 있으니 말소리를 내면 절대 안 된다는 걸 휴대폰에 급히 써서 보여줬고, 손을 얼마나 떨었는지 오타로 가득했다고 한다. 열람실에 있던 책과 펜과 이면지를 다시 책가방에 넣었다. 나갈 채비를 하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사람들은 눈치 게임을 하다가 내가 엉덩이를 떼자마자 빠르게 의자를 독점했다. 그 자리를 다시는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자취방으로 뛰어가 널브러진 팬티와 티셔츠를 세탁기에 욱여넣고 페브리즈를 뿌렸다. 그리고 책과 펜을 다시 꺼내 한 페이지라도 더 읽으려고 했다. 이렇게 된 이상 교수님이 집어 준 것만이라도 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자를 막무가내로 소리 내 읽었다.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엄마와 언니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빨리 보고 싶어 허겁지겁 달려가 문을 열고 “엄마!” 소리쳤다. 잇몸이 다 보이게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괜찮냐는 소리가 절로 들어갔다. 엄마는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 엄마는 신발을 벗고 가방을 바닥에 툭 던지고는 밥 얘기부터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 아우 배고파. 얘들아, 우리 찜닭 먹을래? 너희가 좀 시켜 봐. 이왕이면 순살로. 



엄마는 원룸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매트리스 위에 드러눕고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키득거렸다. 외출복에 붙은 세균을 내 침대에 묻히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그를 째려보게 되었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랑 있을 때는 진짜 이상했어. 믿어줘.’라는 말이 눈에 담겨 있었다.




엄마는 일부러 아픈 척 연기를 하는 걸까. 자취방에 엄마를 초대하지 않은 게 섭섭해서 불시로 찾아온 걸까. 아빠한테 맞기라도 했나. 드라마처럼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나. 아니면 우리한테 밥을 얻어먹고 싶어서 쇼하는 걸까. 언니와 나는 밖에서 담배를 태우며 엄마가 왜 저러는지에 대한 경우의 수를 늘어놓았다. 하나 확실한 건 밥 한 번 얻어먹으려는 계략은 아니라는 거다. 엄마가 왜 불안한지 알아내려면 최대한 나이스 하게 심문해야 한다고 합의한 우리는 찜닭이 오자마자 바삐 움직였다. 



- 이야,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찜닭이 왔어요. 비주얼이 장난 아냐!

- 여기가 이 동네에서 제일 별점이 높더라. 간장 찜닭이 그렇게 맛있대. 아, 찜닭 진짜 오랜만이다. 자자 모이세요. 여러분!



엄마는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도, 대꾸하지도 않았다. 즐거워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미간을 찌푸린 채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스크롤을 툭툭 내리다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푹푹 쉬고,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어떡하지’ 말하고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엄마가 불안해 보이면 대체 무슨 일일까? 눈물이 날 것 같다가도 막상 그가 웃으면 짜증이 났다. 엄마가 우리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동안에 찜닭은 차가워졌다. 차가워진 건 찜닭만이 아니었다.



- 엄마 뭐해?

- 장난해? 이럴 거면 여기 왜 왔어? 아까 나한테 왜 아프다고 카톡 보낸 거야? 무슨 일인지 그냥 말해주면 안 돼? 

- 엄마. 얘 내일 시험인 거 몰라? 엄마 때문에 애가 지금 공부도 못하고 엄마만 쳐다보고 있잖아. 딸 앞길 막고 싶어서 환장했어?



엄마는 우리가 다그칠 때마다 귀를 막았다.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이불을 얼굴 끝까지 올려 갑자기 자는 척을 했다. 엄마는 그 안에서도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지 이불이 미세하게 들썩였다.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당장 제보했을 거다.




아무리 다그쳐도 반응이 없어 화가 치밀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먼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찜닭 몇 조각을 집어 질겅질겅 씹고 엄마를 따라 한숨을 쉬기를 반복했다. 그때 엄마는 이불을 발로 걷어차고 화장실에 갔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언니와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뭐 짐작 가는 거 없어? 내가 어떻게 알아. 별 소득이 없는 대화였다.


엄마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화장실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나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화장실에 다가가 귀를 붙였지만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도, 손 씻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숨을 헐떡였다. 나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쌕쌕거리는 엄마는 초조해 보였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숨기기 바빴다. 엄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화장실 바닥에 고꾸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엄마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끼우고 힘껏 들어 올린 다음, 매트리스에 앉혔다. 휴대폰은 화장실 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심호흡 한 번 하자.’를 연신 반복했다. 엄마는 내 말을 순순히 들었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며 언니에게 휴대폰을 가져오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엄마, 두 눈을 꼭 감고 숨을 크게 마셔 봐,라고 말하며 언니에게 Z 모양으로 패턴을 풀어 보라고 은밀하게 신호를 줬다. 엄마가 과호흡과 한숨을 번갈아 할 동안 언니는 등을 돌린 채 휴대폰 잠금을 풀고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사진첩을 순서대로 클릭했다. 엄마가 심호흡을 7번 정도 했을까, 갑자기 다급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고백했다.



- 얘들아, 미안해. 큰일 났어. 내가 정말 미안해. 나 어떡하면 좋니. 나는 죽어야 해. 이런 나는 죽어야 해. 나는 우리 딸들이 행복했으면 해서, 그래서 그런 거야. 곧 사람들이 찾아올 거야. 



엄마는 울먹이며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 올렸다 내렸다 반복했다. 언니는 엄마의 휴대폰에서 귀신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이게 뭐냐고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고, 언니는 말없이 휴대폰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텔레그램이라는 어플이었다. 거기에는 단체 채팅방과 공지글이 죽 늘어져 있었다. 


나는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대체 모르는 사람들의 정보를 왜 공유하고 있는 건지, 데리고 오지 못하면 벌금은 왜 내야 하는 건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는 자꾸 자기 머리를 손으로 내리쳤다. 이 세상에서 오직 12만 명만 구원이 될 수 있는데, 자기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서 이번 생에 천국에 가기는 틀렸다는 거다. 이런 정보를 딸들에게 누설하면 안 되는데, 큰마음먹고 이야기하는 거라며 엄마는 비밀을 지켜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엄마는 자기가 너무 멍청한 나머지 시험에서 떨어졌으며, 그 결과 우리 가족은 지옥에 떨어지고 말 거라며 안절부절못했다. 내 인생이 꼬인다면 그건 엄마가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뜻과도 같았다. 엄마는 전보다 숨을 더 빨리 헐떡이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언니와 나는 환장하겠다는 눈빛을 주고받으면서도 엄마를 위로하기 바빴다. 내가 엄마를 껴안고 등을 토닥이는 동안 언니는 기업은행 애플리케이션을 Z 패턴으로 열었다. 엄마는 사이비 종교에 300만 원 넘게 바치고 있었다.


엄마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의 휴대폰에 도청 장치가 깔려 있어 이미 그들의 귀에 들어가고도 남았을 거라고 우리를 주의시켰다. 교회에서 우리 대화를 듣는다면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자기를 죽일 거라고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 새벽이 되어도 잠들지 않고 큰일 났다, 큰일 났다, 나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라고만 되뇌었다.


우리는 녹음기로 엄마의 혼잣말을 기록하고 아침 9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언니는 침대에 걸터앉아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헉, 하고 일어나 휴대폰 시계를 반사적으로 확인했다. 그동안 엄마는 내내 방 안을 걸어 다니며 아흐, 아흐, 울먹일 뿐이었다. 엄마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드디어 아침 9시가 되었다. 엄마에게는 내과에 들러 보자고 회유하고 차에 태운 다음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데스크에서 미리 접수하고 병원에 걸린 티브이를 무표정하게 올려다보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와 인사를 나눌 여유 따위는 없었다. 엄마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자기 얼굴이 CCTV에 담기는 순간 교회에 전송될 거라는 이유였다. 엄마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했다. 카메라에 찍히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몸을 낮추고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제부터 정신과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동기에게 답장을 보냈다. 동기는 시험을 망쳤다며 징징거렸고 나는 학점이 뭐가 중요하냐는 식으로 다독였다. 시험을 치지 못했다는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 입원을 당했다. 아빠와 언니가 동의서에 사인할 동안 엄마는 자기에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 생겼는지 주욱 늘어놓았고, 의사는 엄마를 위아래로 훑으면서 타자를 쳤다. 의사는 종교 망상과 조증이라는 단어를 섞어 가며 엄마를 설명했을 게 분명했다. 미친 사람이라는 걸 순화해가며 2주 정도의 입원이 필요한 이유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는 의사에게 사이비와 관련된 사람들이 환자인 척 위장해 입원하고서 엄마를 잡아가면 어떡하냐고 따져 물었고 의사는 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주치의는 우리에게 그렇게 걱정이 되면 폐쇄병동에 넣어줄 수 있다는 어필할 뿐이었다.


결국 엄마는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로 결정되었다. 우리가 의사에게 엄마의 증상을 꼼꼼하게 설명하는 동안 엄마는 문을 박차고 도망갔다. 얼마 안 가 잡히기는 했지만, 엄마는 비상구 계단으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애썼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계단이 보일 정도만 실눈을 뜨고 발버둥을 쳤다. 180cm의 근육이 많은 남자 세 명이 어깨 스트레칭을 하면서 엄마에게 다가갔다. 이번에 또 어떤 환자냐, 심드렁하게 다가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엄마의 팔을 꺾고 주사기 다섯 대를 연달아 내리꽂았다. 엄마는 큰일, 크으은, 일이라고 되뇌다 바닥에 고꾸라졌다. 불붙은 건물에 들어가는 사람을 막듯 깡패 같은 남자 셋이 나를 막아섰다. 그들의 몸에 가려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볼 수 없었지만, 엄마는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성을 되찾은 척을 하며 남자 셋을 안심시키고 비상구 계단을 재빠르게, 그렇지만 그 남자들이 눈여겨보지는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내려갔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초인종을 눌러 내가 방금 들어간 환자의 딸이라고 하자 문이 열렸다. 102호, 103호, 104호, 109호까지 들어가 엄마를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109호에서 나와 다시 방향을 틀었을 때, 보호실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 발짝씩 걸음을 떼기 시작했을 때, 환자들이 한두 명씩 나와 “방금 들어온 미친년 찾아?” “힘이 어찌나 세던지 보호사 세 명을 이겨 먹더라.” 라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해댔다. 누가 누구보고 미친년이라는 건지, 엄마가 꼭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아 주먹을 꽉 쥐었다.




보호실 문을 열자마자 침대에 누워 곤히 잠자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주사를 맞고 난 후라 그런지 곤히 단잠을 청하고 있었다. “우리 애가 잘 때는 정말 예뻐요.”라는 말이 완벽하게 이해됐다. 엄마는 정말 예뻤다. 오른팔을 왼쪽 가슴 위에 올리고 두 발은 팔자 모양으로 쩍 벌리고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웃옷은 브래지어가 보이기 직전까지 말려 있었고 바지 주머니 한쪽은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아주 가끔 입술 사이로 프- 소리가 새어 나올 때면 깊은 잠에 빠졌구나, 하고 안심이 되었다.


나는 언니와 아빠에게 차례대로 전화를 걸어 8층 보호실로 모이라고 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엄마의 머리칼을 찬찬히 쓸어내리고, 가슴을 짓누르는 팔을 일자로 내려 주었다. 후에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얼굴을 빠안히 쳐다보았다. 나는 엄마가 꼭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아빠와 언니와 나는 엄마라는 시체를 내려다보며 입으로 편지를 썼다.



- 엄마, 그 사람들을 어쩌다 만나게 된 거야?

- 엄마, 엄마한테는 그렇게 천국이 중요해? 우리는 왜 엄마가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질 걸. 미안해.

- 여보, 당신이 나보다 더 많이 돈 벌어주겠다며. 그게 포섭으로 벌겠다는 거였어?



엄마는 이틀 내내 잠자리에 들지 못했을 정도로 공포에 떨고 있던 터라, 더 깊게 잠든 것 같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쏟아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였다.




우리는 모두 식탁 의자에 앉았지만, 그 누구도 식사를 준비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빛을 그대로 언니에게 보냈다. 언니는 배달의 민족이 없으면 밥을 차릴 줄 모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내가 냉장고 문을 열어 달걀 세 개를 꺼내 후라이를 만들었다. 밥솥을 열어 밥을 퍼낸 다음, 아빠와 언니 순으로 밥그릇을 내다 주었다. 흰쌀밥과 계란 후라이. 그게 다였지만, 나만 식사를 준비했다는 생각에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조촐하기 그지없어서 그런지 아무도 나에게 차려줘서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계란 후라이를 밥 위에 얹어 노른자를 터뜨렸다. 누구든 좋으니 반숙을 참 잘 만든다는 칭찬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아 밥과 노른자를 입에 욱여넣기만을 반복했다. 밥이 한 숟갈 남을 때까지 아무런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만 하던 걸 입 밖으로 꺼내려했다. ‘계란 후라이 어때?’ ‘밥상 차려줘서 고맙단 말, 왜 안 해?’ '엄마한테도 이런 식이었지?'라며 따지려던 순간이었다. 아빠는 밥 한 숟갈과 흰자 한 조각을 같이 입에 넣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더니, 이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가 절규할 때마다 입 안에 든 음식물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뭐야, 왜 울어.”라고 하며 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언니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숟가락을 식탁에 탁 내려놓더니 손으로 눈물을 떨구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울지는 않았지만,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는 않았다.


아빠는 밥그릇을 싱크대에 두고 안방에 몸을 숨겼다. 언니는 아빠를 뒤따라 그릇과 수저를 물에 담그고 담배를 피우러 바깥에 나갔다. 나는 식탁에 남아 턱을 괴었다. 사람이 세 명이나 있는 집은 내 자취방보다 고요했다. 한참 동안 쌀밥과 계란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빠와 언니가 내게 말을 걸 때까지 기다렸다. 혼자 부엌에 남아 멍만 때리는 사람을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라는 걸 이용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도,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한숨을 아무리 깊게 내뱉어도, 씨발- 이라고 소리쳐도, 식탁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드러누워도 나에게 고개를 돌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드러누운 나를 본체만체하는 아빠와 언니의 다리는 내 얼굴 옆을 지나쳤다. 그들의 시선은 휴대폰에만 꽂혀 있었고 집안에는 유튜버들의 목소리만 둥둥 떠다녔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천장만 바라봤다. 미친년 소리 좀 듣더라도 펄쩍펄쩍 뛰다가 시체가 되어야만 저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9년 4월 22일 (월) 일기

안방에서 엄마의 팬티와 브래지어를 챙겼다. 환자복이 준비될 때까지 편하게 입을 옷을 가져오라고 해서 티셔츠는 두 장만 넣었다. 병원에서 준 종이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휴대폰, 칼, 끈, 이어폰, 유리병 같이 위험한 물건은 반입이 안 된다고 빨간색 글씨로 강조되어 있었다. 금지 물품을 피해 여행 에세이 세 권과 시집 두어 권, 잡지 다섯 권, 일기장, 컬러링북을 가방에 넣었다. 간호사는 병원에서 할 게 아무것도 없다며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그나저나 병원 가면 엄마보고 미친년이라던 사람 또 마주치겠지? 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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