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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ny Park Jun 24. 2022

엄마의 피아노

피아노 치는 엄마의 모습도 그립다.

매일 피아노를 치셨던 엄마


우리 집에는 늘 피아노가 있었다. 엄마의 피아노다. 매일 이른 저녁이면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셨다. 내가 어렸을 때도, 한창 학업에 열중할 시기에도, 내가 떠나 있을 때도, 이곳 제주에서도 엄마는 매일 한 시간 이상 피아노를 치셨다. 아마 제주에 내려와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몇 개월간 피아노를 멈추셨을 때 빼고는 말이다.


35년이 넘은 엄마의 피아노, 아빠가 떠나고 몇 개월은 피아노를 치지 않으셨다.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 집은 아침에 일어나면 전축에서 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그 덕분에 아빠도 클래식을 즐겨 듣게 되셨다고 했다.) 이른 저녁 시간이 되면 엄마는 늘 피아노 앞에 앉아서 땀 흘리시며 매일 피아노를 치셨다. 가끔 나를 불러 연습한 곡을 들려주시기도 했다. 사춘기, 한창 예민할 때는 엄마한테 시끄럽다고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한다. (내가 뭐라고 엄마에게 참 죄송하다.)


그리고 엄마는 "남자라면 악기 하나는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어렸을 때 집에서 엄마에게 피아노 수업을 받았었다. 비록 바이엘 양손에서 흥미를 잃어서 그만뒀지만. 그 뒤로는 하모니카, 기타까지 학원을 보내주셨다. 


보이는 기타 헤드가 내가 초등학교 때 엄마가 사준 기타다.
엄마의 두 번째 피아노를 사러 함께 보러 갔을 때


그리고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엄마는 수개월간 피아노 치기를 멈추셨다. 그렇게 엄마의 첫 번째 피아노는 우리 제주 시골집에 남겨지게 되었다. 당시 아빠의 계좌를 정리하다 125만 원이 들어있던 통장을 찾았고, 아빠가 엄마에게 약속했다던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시겠다고 약속하며 그동안 모으신 돈이었다. 


당연히 그랜드 피아노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그때 통장 잔고를 찾으며 엄마와 난 그냥 웃음과 눈물이 교차했었다. 그리고 몇 개월간 몇 번의 설득 끝에 엄마는 다시 피아노를 치시기로 하셨고, 고스란히 남겨두었던 125만 원 피아노 잔고로 제주도 피아노 매장을 함께 다니며 소리가 괜찮은 중고 피아노 한 대를 샀다.


20년은 쓸 수 있겠다며 고르셨던 엄마의 두 번째 피아노


엄마는 그렇게 다시 피아노에 앞에 앉아 매일 피아노를 치셨다. 아마 엄마 평생의 취미이자 행복이셨고, 적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아빠가 모아두신 125만 원, 앞으로 20년을 쓸 수 있는 중고 피아노를 신중하게 고르시던 엄마,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게 엄마의 두 번째 피아노는 그 시간도 채우지도 못하고 남겨지게 됐다. 


다행히 엄마의 두 번째 피아노는 우리 조카들 곁으로 가게 되었다. 아마 20년은 좋은 소리를 내며 있어줄 것 같다. 오늘은 땀 흘려 피아노를 치시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제는 피아노 소리도 드를 수 없다. 


엄마의 피아노 위에는 항상 내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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