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빵 May 22. 2020

노인행(老人行)과 지지위지지(不知爲不知)

금지된 욕망, 그리고 한문2

공부할 수 있는 곳들이 문을 닫거나 모집을 하지 않게 되며 사라지게 되자, 오히려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비록 공부장소는 임용고시반에서 집으로 바뀌었지만 원체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상태에서 하다 보니 공부의 맛을 충분히 느끼며 하나하나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 올해의 공부 공간. 내 방에서 무르익는 학문의 열정.




18년부터 이어져 오던 스터디 20년에도 계속된다     


2018년엔 무작정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서 교수님이 진행하는 스터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들이대고 봤었다. 공부는 해야만 했는데 아는 건 하나도 없고 더욱이 스터디팀을 꾸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들이댐은 어찌 보면 궁지에 몰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김형술 교수는 ‘공부하고 싶은 사람 모여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그런 흐름은 작년까지 도도하게 유지되어 올해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학교의 개강 연기에 따라 스터디도 좀처럼 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을 때 김형술 교수는 너무 미루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 결국 5월 13일에 각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스타트를 천명하기에 이르렀고 5월 20일엔 첫 스터디가 열리게 되었다. 



▲ 스터디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함께 모여 스터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로 대학교 개강은 2학기로 연기되었고 그에 따라 대학교의 강의실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살다 살다 공부할 장소를 구하지 못해 스터디를 하지 못할 상황에 몰리게 될 거란 건 전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늘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할 의지가 없음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핸 의지는 충만하되 할 장소를 구하는 게 쉽지가 않으니 김형술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면 우리 집에서라도 합시다”라고 말을 했다. 그건 곧 단순히 스터디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 스터디를 제대로 된 공부모임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공부장소를 구하는 문제라는 복병에 좌초할 뻔했던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편안하게 스터디를 준비하기만 하면 됐다. 물론 스터디 당일에 스터디 장소가 교수님의 댁에서 커피숍의 스터디룸으로 변경되긴 했지만 어찌 보면 이것 또한 ‘뜻하는 바에 길이 있다’는 유명한 말이 실질적으로 발현된 예가 아닐까.                



▲ 장소가 변경되었다. 카페에서의 스터디는 정말 오랜만이다.




노인행을 공부하다     


첫 스터디에서 내가 맡게 된 원문은 성간의 ‘노인행老人行’이란 작품이다. 이미 19일에 썼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었다.           



다시 스터디를 해야 하는 이 순간에 나에게 솔직하자는 생각이 먼저 든다. 겨우 2년 동안 공부한 것만으로 나의 한문실력이 월등할리는 없다. 그저 이제 첫 발걸음을 떼는 사람처럼 모르는 게 훨씬 많은 초심자일 뿐이다. 그러니 스터디를 준비하면서도 번역본이 있지만 참고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어설프게 나마 내가 해석할 수 있는 그대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없으니 나를 인정하기 쉬웠고 스터디에서 여러모로 배울 테니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실력으로 한걸음씩 가자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있어보이려 꾸미려는 마음보다 지금 나의 실력을 인정하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배우고 알면 아는 대로 말할 수 있는 정성일 것이다. 


          

바로 『논어』에 나오듯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이 스터디를 하는 내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전에 우치다 타츠루內田樹의 강의를 들을 때에도 배우는 사람은 “모르는 게 있습니다. 잘 못하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 가르쳐주십시오”라는 세 가지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논어’이든 ‘우치다 타츠루’든 결국 배우려는 자세의 기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솔직한 자기 고백이고 객관적 자기 인식이다.



나 또한 이런 생각에 충분히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에 따라 번역본이 당연히 있는 글임에도 번역은 참고하지 않고 한 구절마다 모르는 상태 그대로 소설을 써가며 한 편의 글을 해석해보았다. 그랬더니 해석에서 가장 걸리는 부분은 크게 ‘남혼여가지기시(男婚女嫁知幾時)’와 ‘독좌망연심단절(獨坐茫然心斷絶)’이란 두 부분이었다. 내용이 짧은 데도, 그래서 쉬울 것 같은데도 이 두 부분에서 여러 생각들이 몰아치니 참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에도 즐거웠던 이유는 지금 나의 여러 생각들을 스터디에서 풀어놓을 수 있으며 그걸 문제화함으로 아이들의 여러 의견을 청취할 수 있고 교수님의 혜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런 고민의 지점이 스터디 내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어 가는지 지켜볼 것이고 그걸 성실하게 기록할 것이다.           



▲ 여기서 스터디가 시작된다.



인용

목차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가 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