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공부하며 맴맴, 삶을 탐구하며 맴맴
임고반 OT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발표가 난 후에 무려 세 편의 글을 썼다. 한편은 임고반을 모집하지 않는다던 기존의 틀이 깨며 갑자기 모집하게 됐으며 그에 따라 부랴부랴 지원을 하게 됐고 임고반에서 펼쳐질 제2막의 열공 라이프를 꿈꾸는 내용을 담았고 다른 한편은 임고반 모집 일정이 여러 차례 변경됨에 따라 전반기에 어떤 공부를 했는지 정리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니 여기서는 임고반OT와 자리배정에 대한 글만 다루기로 하겠다.
월요일에 스터디 반장이 올린 카톡 내용을 통해 임고반 모집을 한다는 걸 알게 됐고 부랴부랴 지원 기간이 지났음에도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OT에 참여해도 된다는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전화에 들뜬 나머지 당연히 물었어야할 ‘장소’에 대해선 물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전화가 끊겼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해볼까 했지만 OT가 있는 3일엔 문자가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3일이 되었고 오전이 훌쩍 지났음에도 어떤 문자도 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잠시 갈등이 되더라. 2018년 OT 때도, 2019년 OT 때도 그랬듯이 교수연구동 8층 강당에서 할 줄 알았으니, 그냥 가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만약 다른 장소일 경우 걸머져야 할 위험부담이 크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2시가 넘어서야 전화를 걸게 되었고 진리관 506호에서 한다고 사실을 알게 됐던 것이다. 장소가 바뀐 상황이니 이렇게라도 전화를 한 건 정말로 신의 한수이자 잘 한 거란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뿌듯하단 생각도 들었다. 요즘 별다른 성취가 없는 삶을 살다 보니 이런 작은 것에도 성취감을 느낄 정도다. 어찌 보면 씁쓸하지만 또 달리 보면 그만큼 소확생小確幸(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최종적으로 OT 장소가 ‘진리관 506⇒학생회관 대강당’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임고반 입실은 확실시되었고 오랜만에 학생회관 대강당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한다. OT 시간만 보더라도 예년에 오전 8시에 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왜 밤에 OT를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지금 재학생들이 교생실습을 나가 있어 오전엔 모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장소의 변화와 함께 따라온 시간의 변화로 인해 어색함은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집에선 6시에 나갔고 자전거를 타고 갈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지금 이런 모든 변수들이 생긴 원인은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는 다중이 모이는 것에 대한 반감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도서관, 강의실, 콘서트 등의 다중이 모여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서로가 감염체가 될 수 있다는 반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올해 1월엔 임용 2차 시험을 봤었는데 면접 문제는 당연하게도 협동학습과 교사들의 협업에 대한 것이었다. 코로나가 휩쓸기 이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그룹을 이루어 함께 학습하는 협동학습이 권장되었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서로 긴밀히 의견을 나누고 함께 교육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협업이 중시되었다. 그에 따라 매년 면접엔 그와 비슷한 문제들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는 이런 현실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뿐인가? 모든 내부시설에 들어갈 땐 당연히 마스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통제하기 쉽도록 한 군데의 문만을 열어놓게 되었다. 학생회관 2층으로 들어가려다가 문이 닫힌 걸 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 더 인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1층 입구로 돌아가니 들어가는 곳에서 체크를 하도록 되어 있더라.
3층 대강당의 풍경은 너무도 오랜만이지만 매우 익숙한 장면이었다. 고3 때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탐방을 할 때 처음 와본 곳이고 대학 1학년 때는 이곳에서 채플도 했었고 크로스선교합창단 단원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과연 코로나가 휩쓸어 6월에야 임고반원을 모집하는 상황임에도 사람은 어느 정도나 왔을까 기대가 됐다. 이미 공부할 사람들은 각자의 공부공간을 마련했을 테니 말이다.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사람은 많더라. 말을 들어보니 총 138석의 임고반 좌석 중에 이번엔 99명이 신청을 했다고 알려주더라.
임고반 담당 조교는 3년째 같았지만 그분이 말하는 건 예년과 너무도 달랐다. 작년까지는 임고반 상벌점제에 따른 기강 확립을 말했었는데, 올핸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아니 오히려 임고반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까지도 담겨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규칙보단 안전과 건강이 우선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① 2주간은 테스트 기간으로 홀수와 짝수로 나눠서 번갈아가며 임고반에서 공부를 한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붙어 공부를 하여 코로나가 전파되는 상황을 막겠다고 한다. 책상에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사람은 홀수날에 나와 공부를 하는데, 내 책상엔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② 2주 후엔 모든 사람이 나오는데 그땐 5층에 있는 빈 강의실을 활용하여 그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여 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밀집되는 상황을 막겠다고 한다.
③ 그럼에도 발열자가 많아질 경우엔 임고반 운영을 중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작년까지 원칙과 임고반 내의 열공 분위기를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여 공부하지 않길 바라는 심정이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가 바꾼 신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방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교들이 얼마나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늦게 신청을 했기 때문에 502호나 503호로 배정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501B로 배정받았다. 예전 임용공부를 할 땐 501호는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았고 아예 재학생반으로 되어 있었으며 502호가 졸업할 때쯤 만들어져 졸업생반이 되었다. 그러니 501호는 2007년 이후론 한 번도 들어갈 수 없던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재학생반이었던 501호는 A와 B로 갈라졌으며 졸업생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고 502호부턴 재학생들을 위한 반으로 바뀌었다.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게 오히려 나에겐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501호는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OT는 20분 만에 끝났고 창가 쪽 자리가 걸리길 바라며 501호로 올라왔다. 올해 고무적인 사실은 임고반에 들어오는 한문교육과 학생들이 많다는 거였다. 2018년 OT 때는 임고반에 들어온 한문과 학생이 겨우 3명이란 사실에 놀랐었는데 이번엔 7명 정도로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올해 4학년 학생이 임용에 합격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그게 동기들에게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기에 이런 상황이 펼쳐진 거겠지.
올핸 특이하게도 두 번 번호표를 뽑도록 했다. 예년처럼 한 번에 자리를 뽑을 경우엔 2~3장 정도를 뽑아서 좋은 자리를 정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릴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운에 모든 걸 맡겨둘 수밖에 없다. 그걸 모르고 처음 번호표를 뽑으라고 했을 땐 두 장을 뽑아들었다. 처음 펼친 번호는 27번이라 너무 뒷 번호였기에 그건 무작정 다시 돌려줬고 두 번째 펼친 번호는 그보다는 앞 번호인 17번이라 그걸 들고 있었다. 아주 옛날엔 이런 식으로 자리를 선정하는 번호를 정한 후에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찾아가도록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뽑는 순서를 정한 후에 그 순서에 따라 다시 책상 번호를 뽑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렇게 하여 자신이 원하는 자리로 가는 걸 원천 차단했다. 이쯤 되니 창가자리는커녕 중간에 끼인 자리만 아니길 간절히 바라게 되더라. 그래서 17번이 호명되었을 때 뽑았더니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은 자리를 배정받았다. 가장 뽑고 싶었던 54번이나 55번이 아닌 34번 자리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중간에 끼인 자리가 아닌 것만 해도 어딘가?
이번 임고반 신청일의 잦은 여기와 번복, 그리고 홀짝수제로 운영되는 점, 자리 선정의 특이점까지 모든 게 예년과 확연히 달랐다. 그래서 지금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정신이 없는 거겠지.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나만의 공부스타일을 만들어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괜찮겠지? 잘 적응되겠지? 공부하기에 최적의 장소인 거겠지? 그렇겠지?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