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노 Sep 16. 2022

완벽한 가족은 필수가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내가 바꿀 수는 없었지만 가장 아쉽고 신에게 서운한 점이 하나 있다면 화목한 가정을 내게 주지 않았다는 사실. 모든 가족들이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딸한테 죽고 못사는 아빠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다. 고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친구가 아빠 전화를 받더니 아빠가 자기 먹으라고 수박을 사왔다며 신나하며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친구가 세상 부러웠다. 맛난 것을 내 입에 넣어주는 사람이 아빠였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런 적이 있었을까 싶을만큼,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사랑받고 싶었다. 내가 착한 딸이 되면, 내가 멋진 사람이 되면,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었더라. 그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 실패를 하고 세상이 하얗고 마음이 텅 비어버렸을때, 이불 속에서 눈물로 내 인생을 위로할 때 친구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았다. 펑펑 울면서 내 이야기를 하자 상담해주던 의사 선생님은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좋은 가족이 아닙니다. 00씨는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요. 옆집 아저씨, 아줌마라 생각해보세요. 그럼 그 분들이 00씨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을 거예요."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내 속상함과 상처는 생각을 바꾸자 점차 작아지고 아물어갔다. 아버지와는 문자도 통화도 차단했다. 아버지와 연락을 안한지 3년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걱정이 컸지만 오히려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오는 폭설과 윽박지름이 사라지니 삶의 질이 올라갔다. 아버지와 연락을 끊자 어머니와도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완벽한 가족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완벽한 가족은 필수가 아니었다.


그래도 가끔씩 욕심이 난다.


내가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글쎄. 사람이 욕심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안된다는 걸 아니까. 지금은 혼자가 좋다.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진 건강한 어른이 되면 생각해봐야지. 

작가의 이전글 근황. 삼양에 살고 재택을 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