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있을 박람회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서비스가 막 스타트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첫 브로셔, 첫 영상, 첫 족자봉, 첫 홍보물 등을 만드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작은 회사의 마케터는 큰 회사의 마케터보다 좀 더 아쉬운 소리를 업체에 해야 할 때도 많아서, 그 과정의 감정들이 부끄러움과 미안함 하지만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게 유독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제작한 영상 중에 모델과 스튜디오를 섭외해서 찍은 공을 들인 영상이 있다. 그런데 출장 일정만 신경 쓰다가 섭외된 시니어 모델과 우리 제품의 가치가 맞는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업체 쪽에서 힘들게 섭외했다는 이야기에 오케이를 해버렸다. 모델 분도 좋은 분이었고, 촬영 자체는 잘 끝났으나 결과물을 보고서 다른 모델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 서비스가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솔루션이다보니 젊은 모델이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서였다. 출장 일정도 온전히 촬영을 위해서 간 것이었는데 좀 더 깊은 생각을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을 했다.
그런 와중에 내가 대표님을 너무 실시간으로 괴롭힌 탓인지, 기타 잡다한 박람회 관련은 내 선에서 전결 처리하라는 대표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 전 회사에서 대표님 컨펌을 받을 때마다 너무 괴로웠던 기억이 있어서 전결 처리 허가를 받으면 신날 줄 알았는데 이번엔 오히려 걱정이 먼저 들었다. 특히 족자봉! 족자봉이 내게 큰 숙제였다. 따로 디자이너가 없어서 맡길 사람이 없고, 브로셔 업체에서 견적을 받았더니 너무 비용이 커서 차라리 부족한 솜씨지만 결국 내가 해야겠다 생각했다. 미리 캔버스에서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미리 캔버스엔 박람회용 족자봉이 없었다. 결국 일러스트를 켜고 하루 내내 끙끙거렸다. 하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아직 서비스 시작 초기라 고화질의 결과물 사진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욕심이 많으니 내 부족한 일러스트 실력으론 아무리 만들어도 내 성에 차지가 않았다. 결국 대표님께 달려가(메신저로) 고민이 많이 된다고 말했더니 '고민이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라.'라는 말을 들었다. 결과물이 부끄러울까 봐 책임 소재를 은근슬쩍 대표님과 나눠지려다 걸린 셈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어찌어찌해서 일러스트 파일을 다 만들어서, 업체에 넘기고 결제까지 끝냈다. 아직도 파일을 보며 내가 한 결과물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중요한 건 고민이 아니라 일단 만드는 거였다. 내 판단은 우리 회사의 규모로 부담이 되는 디자이너를 구하는 것보다 내용을 디자이너보다 잘 아는 내가 만드는 것이었고, 디자인은 예쁜 것보다 작은 부스나 큰 부스로 나가도 다양하게 사용이 가능하도록 한 장씩 서비스를 나눠 구성했다.
여전히 다시 봐도 손이 오그라들고, 부족한 점이 눈에 띄지만 마감기한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전결 위임은 좀 어렵다. 내년까지는 익숙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