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상어와 복직
10년에서 15년 전 즈음.
해외여행 붐이라 할 만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저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특히 필리핀. 세부.
나 역시
언니와 조카.
나의 전남편인 fx와 아이들.
사촌동생네 가족들.
친한 친구와 선후배들.
그렇게 여러 번 세부를 갔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세부에서 오슬롭까지 새벽부터 흔들리는 봉고차를 몇 시간이나 타고 고래상어를 보러 갔다.
내 생애.
자연로부터 받은 가장 큰 감동.
거대한 생명체를 향한 경외감.
무한한 자연이 주는 신비감.
나는 내 아이들에게 고래상어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
내 아이들이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상어와 헤엄을 치고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크기를 직접 느껴보길 바랬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수영을 배웠다.
다행히 학교 내 수영장이 있어서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다.
바다에서 구명조끼 없이 수영을 할 수 있기를 바랐고,
개인강습을 1년 넘게, 그룹수업을 2년 했다.
단 하나의 목적.
우리는 고래상어와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세부공항에서 오슬롭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가야겠다 막연히 계획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4학년. 3학년이 된 2024년. 올해.
나는 이혼을 시작했고, 복직을 앞두게 되었다.
이혼이라는 현실에 버티고 있던 어느 날.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감사편지를 써왔다.
엄마.
지난번에 베트남 갈 때 난기류를 만나서
난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엄마가 내 손을 잡아줘서 안심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우리 또 비행기 타고 날아가요.
충격적인 사건들과 부모의 갑자스러운 이혼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가장 걱정이었다.
학교 상담센터, 가족 상담센터..
여기저기 아이들의 그 작은 마음과 생각을 알아보려 내 마음만 급해지던 즈음.
그 편지를 읽고, 정작 아이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는 것이 무서웠던 나를 보았다.
내 아이들은 내가 손을 잡아주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작고 강한 아이들임을 잊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한동안 아이들과 일주일이 넘는 여행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를 만나 이혼조정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세부행 티켓팅을 했다.
나의 이혼조정심판 청구서가 접수되던 4월의 어느 날.
나와. 나의 아이들.
이제 셋 이 된 우리의 첫 여행.
우리는 고래상어와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