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기록을 남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공간이었는데, 핑계로 먹고 살아가느라 여행으로 다시 부여잡는다. 11일이란 숫자가 이렇게 애매한지 처음 생각해보았다. 유심 때문이었고, 무제한 교통권으로 업무시간에 잡념 속으로 숨을 돌린다. 아팠다. 누구나 그러하듯, 병원도 갔고 병가에 조퇴에 아프다는 표시가 내 눈으로도 타인의 눈에 비치기도 하는 날들이다. 멀리 갈 용기는 없었고, 출발 전날 아니 당일까지도 참 많이 고민했다. 처음인 일이다. 내키지 않지만 온 여행. 이 또한 기록하자.
( 지인 1 - 나리타 공항이라도 보고 돌아오라고 했고, 지인 2- 가서 누워있으라고 했다. 지인 3- 본인이 더 억울해했다. ) : 이런저런 수수료와 신청 비용들.
처음 도쿄 -
퇴사 준비생의 도쿄 /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21MAR18
서울은 흐렸고 도쿄는 비가 온다. 눈 같은 비가 오고 있었다. 워낙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다고 하는데, 공항을 벗어나기까지 상냥했고 퉁명했고 너무나 친절했고 한 번의 확인도 귀찮아했고 환하게 반겼고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했고 이렇게 인상들을 기억하며 스카이라이너에 탑승했다. 누군가의 기록처럼 커피 한잔과 함께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초행자는 어리바리하느라 내 앞사람의 창문에 비친 컵만 쳐다본다.
전통 가옥과 익숙한 집 모양 웃음 짓게 하는 전광판 어느덧 핀 꽃들에 닛뽀리에 도착했다. 3월에 입김이 나고 손이 시리다. 우리나라만큼 정신없는 풍경에 왔다 갔다 겨우 이케부쿠로행 열차에 앉았다. 창 밖에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당이 떨어진 시간은 참 정확하다. 이왕이면 미소가 좋은 가게 앞에 줄을 선다. 3월과 4월 한정 딸기 크림이 들어간 슈를 먹고 싶었는데 솔드 아웃이다. 시간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이른 시간에도 없는 걸 보니 아쉽다.
진한 크림이 한꺼번에 터진다. 꿀맛이다. 출구 C9은 작은 통로라 혼자 여유롭게 얼굴 범벅하고 먹어도 상관이 없다.
도쿄를 온 이유는 딱 3가지다. 츠타야, 벚꽃 그리고 북 앤 베드
10박의 밤 중 2박을 묵기로 했다. 후기들을 보니 쉽지 않은 수면 환경이라고 했다. 그리고 C8에서 나와야 Book and Bed 이케부쿠로에 도착이 쉽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카운터가 있다. 협소할 거란 예상은 했지만 배낭과 캐리어로 꽉 찬다. 다행히 내가 만난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 스태프들은 항상 참 나이스 하다. 사진으로만 본 이 곳에 드디어 머물게 된다는 생각에 지친 몸이 조금 편안해진다. 3권의 책을 갖고 왔는데 머무는 동안 1권을 다 읽고 이 곳을 방문하는 우리나라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선물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나 역시 너무 잘 읽었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자 브런치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정문적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다. 이케부쿠로 북 앤 베드에 한국어 책이 3권이었는데 이제 4권이 되는 셈이다. 요즘의 복잡한 심리상태와 조절이 안 되는 몸 상태 등에 대해서 글을 읽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책장에 남겨두고 싶은 책이었는데, 이 곳에 두어도 참 좋다고 생각했다.
건물 아래에 스타벅스에서 시티카드를 하나 샀고,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메뉴가 있어 주문을 했다. 스타벅스에 아이스 숏 사이즈가 있는 나라. 참으로 부럽다. 이 곳이라고 신호를 잡는데, 우산 아래에서 한 손으로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 건물 로비로 들어와 오락가락하는 표시를 골똘히 보다 누군가의 인기척에 위치를 물었다. 라멘 먹기 아니 츠케멘 먹기 참 좋은 날씨라는 걸 공감하듯 상호를 되묻더니 우리는 그렇게 체감시간 20분 정도를 멈춰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남자 친구가 와서 같이 화면만 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대각선 맞은편에 경찰서를 알려주며 그곳에서 물어보라고 한다. 아직 못 가본 경찰서를 타국에서 가기란 쉽지가 않아 그냥 돌기로 했는데, 야스베가 나왔다. 기대보다는 조금 아쉬운 맛이었다.
유심이 말썽이다. 3일짜리가 아니라 8일짜리가 말썽이라 도토루에 앉아서 투덜대고 있다. 이케부쿠로의 익숙한 듯 불편하지 않은 적당한 온도가 마음에 든다. 그 온도를 고스란히 담은 비 오는 풍경에 유심을 방치하고 도쿄 바나나 한정판 킷캣과 인증을 남긴다. 난 도토루 커피도 오랜만에 마시고 킷캣도 샀고 여행 중이지만 유심 때문에 기분이 끓고 있는 그런 장면이다. 별개로 킷캣을 판매 중인 직원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떠나기 전 재구매를 하고 싶은데, 다시 이케부쿠로까지 올진 모르겠다. 아니 못할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이미 유심이는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 무인양품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 난 아까 스타벅스에서 와이파이로 대충의 감만 잡았는데, 패밀리마트 직원도 모르는 위치를 빗속에서 찾아냈다. 몸이 안 따라주니 정신이라도 혼미해지지 말라며 감이 일순간 최고치의 능력을 발휘한 걸까. 스스로 감격하며 횡단보도를 건넜고 우산 비닐이 우리나라처럼 벌려진 입구가 아니라서, 입김이 날 정도로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손으로 봉지를 비벼 입구를 만들었다. 워낙 어느 도시에서 만나도 일관성 있는 배치와 분위기라 잠 옷 하나 미니미 젤 클렌징 하나 사서 돌아왔다.
" 이 정도면 하루 선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