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주 느지막이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평일엔 몸 알람이 알아서 눈을 뜨는데, 여행을 와서도 주말만큼은 한 없이 풀어진다. 일단은 써야겠다. 서울에 가서 다시 고쳐 쓰더라도 써야지. 옮겨 온 호스텔에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 몇 마디 나눴는데, 6층 라운지에 가면 재미있게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데 내가 올 때마다 나는 혼자다. 이것도 사람 따라 가나 싶다. 지금도 혼자라 어제 편의점에서 잔뜩 사 온 주전부리로 배 채우고 살짝 열린 창 밖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벚꽃의 만개를 위해 열 일하는 햇살이 가득 차오른다. 상쾌한 일요일이다.
23 MAR18 FRI : DAY3
북 앤 베드와 이케부쿠로와 이별하는 날.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와 신촌이라고 하는데,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다. 다행히 내가 나오는 출구는 그 보다는 한적함이 있는 편이라 좋았고 도로도 시원하게 뻗어있어 눈 안에 펼쳐지는 시야가 넓어 이 점 또한 좋았다. 북 앤 베드와 안녕을 하고, 근처에 어제 봐 둔 가성비 좋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내 눈엔 가츠동이 490이란 것만 보였는데, 이 곳은 소바 전문점이었다. 온소바는 처음 보는데 옆 사람들이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래도 가츠동을 주문해서 묵직한 한 사발을 받았다. 역시 서서 먹는 조건으로 값도 좋고 맛도 마음에 든다. 할아버지 3분이 하는 곳인데, 일본의 장인정신을 난 이곳에서 생각해본다. 몇 발자국 다시 걸어 시티카드를 산 스타벅스로 다시 가 앉았다. 새로운 숙소 호스텔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여행 계획에 대해 다시 짚어보려고 하는데 역시 와 본 적이 없는 곳이라 도통 감이 없다. 완전히 없어서 여기저기 적어온 것을 다시 옮겨 적는 일만 하고 있다. 이럴 시간에 그냥 하나라도 가는 건데 혹여나 동선이 꼬일까 봐 진짜 봐야 하는 것을 놓칠까 하는 불안함이 문제이다. 캐리어 때문에 자동문 출입구 바로 앞에 앉았더니 아이스음료가 무색하게 아이스 한 바람들이 꾸준히 불어온다. 그래도 도쿄 날씨는 다이칸야마부터 화창함 시작이라 기분 좋게 멍하고 있다. 난 카톡을 메모장으로 주로 쓰는데, 이렇게 써 놓았다. - 계획대로 하려니 피곤하다. 대충 눈에 띄는 거 먹자. - 그러고 있다.
핫초보리로 왔다. 너무나 비교될 만큼 조용한 곳이다. 왠지 우리 집 동네와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여행자라 그런지 이케부쿠로의 북적함이 조금은 그립다. 출구 앞에 작은 놀이터가 하나 있는데 벚꽃이 반쯤 피어서인지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숙소 컨디션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꼼꼼히 고른 보람이 있다. 짐을 대충 풀고 계획과는 무관하게 인스타에 올라온 나가 메구로의 벚꽃이 만개인 것 같아 이쪽으로 왔다. 벚꽃 한정 머핀이 있어 하나 집어 들고, 유명 커피숍 앞에 도착하니 사진보다는 느낌이 아쉬워서 안 사 마시기로 했다. 사실 산미가 강한 커피도 좋아하지 않으니 별로 아쉽지 않다.
근처 동네 꽃집의 꽃들이 아직은 흐드러지지 않은 벚꽃보다 예뻐 보여 한 장 담았다. 동네를 그냥 거니는 것도 일본은 지루하지 않은 것 같다. 인스타에서 본 사진만큼 아직 벚꽃은 화창하게 보이지 않아서 나가 메구로의 흩날리는 벚꽃이 올 때 다시 와야겠다 싶었다. 어느 가게 안에 꽃들을 잔뜩 장식해 놓고 들어와서 포토존을 마련해주는 곳이 있어 잠깐 들어가 보니 향이 작은 공간 안에 가득이라 머리가 트이는 기분이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더 걸어도 아직은 아닌 것 같아 츠타야 세 번째 나가 메구로 점에 와본다. 철도 바로 밑에 위치한 나가 메구로 츠타야는 여전히 스타벅스와 완벽하게 공존 중이다. 위치적 한계 때문인지 책의 종류나 동선이 조금은 아쉽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빽빽하게 앉아 무언가에 다들 열심히다. 오늘은 덮밥 데이다. 츠타야 맞은편에 마츠야가 있어 파가 잔뜩 들어간 약간은 매콤한 덮밥으로 소자 사이즈로 주문했는데, 미니 사이즈여도 될 것 같았다. 유명 츠케멘도 유명 라멘도 그냥 다 내 입맛에는 안 맞아서 음식 탐방은 하지 않기로 했다. 포기가 빠르다. 건강에 좋다. 아까 미처 보지 못한 나가 메구로 동네 탐험을 나섰다. 메인 거리인 것 같은데 특색 있는 가게들이 눈에 띈다. 그렇게 거리를 지나 주택가를 올라가다 약간은 휘어진 코너를 돌면 도로에 도착하는데, 오늘 금요일답게 파티가 있는지 드레스업 한 여성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오랜만에 만나는 블루보틀이 있었다. 어제는 거의 근처에 와서 영업시간이 끝난 걸 알아서인지 오늘은 아예 체크하고 나서서 시간도 여유롭고 줄을 길게 설 꺼라는 에상과는 달리 한적하게 자리도 있었다. 삼청동에도 곧 들어온다고 근처 회사 다니는 지인은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나도 굳이 이렇게 찾아오면서도 사실 그렇게 맛있다고 생각은 안 하면서도 참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다. 커피계의 애플이라는 수식어가 나한테는 이런 의미인 것도 같다. 어디서든 지나다가 애플샵이 있으면 그냥 들어간다. 딱히 무얼 하지도 않는데 들어갔다가 나온다. 블루보틀도 처음 브루클린에서 마셔보고 음 그렇구나 하면서도 다른 도시에 갈 때마다 또 그냥 들어간다. 늘 그냥 들어간다. 이만큼 무서운 게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대단한 브랜드다. 여행책 한 권과 읽고 싶은 책 한 권 이렇게 두 권에 온갖 잡동사니 때문에 아 여기다 물 한병 어깨가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씩씩대고 걸을 때는 또 몰랐는데 이렇게 편하게 쉬고 있으면 다시 일어나기가 겁나 진다. 언제 또다시 돌아가나 싶어서. 비까지는 아니고 하늘에서 분무기 살짝 뿌리는 정도로 나의 하루 여행 퇴근길 마무리한다.
이 날도 무리하진 않은 것 같은데 충분했다. 평상시의 루틴에서는 정말 하는 일 없이 지나가는데 그래도 무리해서 왔지만 이렇게라도 왔으니 힐링의 차원에서 날씨마저 충분하니 하나라도 더 느껴보자 싶다. 하루의 시간마다 날씨의 기복이 있어 감기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지금도 살짝 띵하며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한다. 그래도 창밖에 눈부신 하늘을 보니 미세먼지 걱정도 없고 마저 정리하고 일어나야겠다 싶은데 아직 한 시간 반 가량의 시간이 남아있다. 오늘은 특별하게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 이케부쿠로 반가웠어 그리고 나가 메구로의 츠타야는 한 번쯤 가성비는 덮밥 또한 습관성 블루보틀
지나고 나니 이케부쿠로의 온기가 좋았다고 생각이 든다. 모든 컨디션이 좋아도 동네가 풍기는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처음 느껴본다. 이전의 여행들 중 어떤 한 번의 불만족도 지금 생각해보니 같은 맥락이었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