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틸틸 Mar 29. 2018

도쿄9


29MAR18 THU


우수수 쏟아지는 동네 공원의 벚꽃나무 아래에 앉아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군것질이 거의지만, 츠키치 시장에 가서 바로 입장이 불가능할 것 같아 배를 채워둔다. 한 정거장 차이인데 사람들이 쏟아져 시장으로 같이 향한다. 매일 조금씩 더워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좁은 시장 골목에 가득이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유명한 타마고부터 먹어보고 싶었는데 찾을 엄두도 안 나고, 귀찮다는 생각이 밀려와 자리가 비어 있는 규동을 먹을까도 고민했다. 굳이 여기 와서 규동을 먹을거라니...스시 잔마이 1호점은 웨이팅이 차고 넘쳐 2호점에서 그나마 한적하게 기다린다. 적당한 기다림 끝에 한 좌석 차지하고 트랙에서 돌아가는 스시들을 한 접씨 씩 내리기 시작한다. 먹다 보니 옆에 일본 아주머니들이 드시는 게 맛있어 보여 똑같은 걸 주문해서 먹고 이번엔 왼쪽 옆 관광객이 주문한 아보카도 초밥이 맛있어 보여 또 따라서 주문을 한다. 그런데 예상처럼 양 옆에서 주문한 음식들을 따라한 것이 제일 맛있었다니... 해산물 먹깨비라 열 접시쯤 먹을 줄 알았는데 회도 두툼하고 밥양도 많아 금방 배가 찬다. 스시잔마이는 아주 맛있다는 아니고 가성비가 좋다 정도인데, 그래도 만족스럽게 먹고 나왔다. 우선은 츠키치 시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 서서 회를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다음에 도쿄에 온다면 저렇게 서서 몇 점씩 먹어보고 싶단 생각과 빨리 나가자가 교차한다. 입구쯤 다다르니 싱싱한 딸기가 제법 비싼 가격에 팔고 있는데 중국인 아기 엄마가 아기가 먹어도 되냐고 물으며 한 팩을 사는 걸 보니 그냥 또 따라서 샀다. 애기가 먹어도 좋다고 하니 나도 여전히 방황 중인 내 안의 노쇠한 아기를 위하여 구매 완료. 츠키치 역 스타벅스에서 유자티바나를 사서 가게 앞 의자에 앉아 광합성 중이다. 급할 것도 할 일도 아무것도 없는 점심. 딸기를 쓱 먹어보니 달콤함이 제법 진하다. 2개를 더 꺼내먹고 그렇게 한참 의자에 앉아 어떤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나가메구로의 벚꽃비를 맞으러 히비야선에 종점에 내린다.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들이 강물에 내려 같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동영상에 담아 친구들에게 전송했다. 벚꽃은 지금이 클라이맥스가 맞다. 오늘은 한 곳에서 조금 쉬며 앉아 있다가 다이칸야마로 향한다. 안 가본 길로 가는 건 늘 흥미롭다. 츠타야는 오늘도 문전성시구나. 그때 앉아서 너무나 행복했던 좌석은 다른 이의 즐거움이 되어 있어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가부좌하고 가져온 책을 조금 읽어본다. 오늘은 책보다는 그냥 하늘을 보기로 했다. 어제 쇼핑을 마무리한 이유가 오늘내일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는 정말 힐링이 포인트라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마음도 몸도 가벼워지는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입은 무겁게 아니 뱃속은 무겁게, 딸기와 오늘부터 신메뉴로 출시된 아몬드 토피 프라푸치노로 디저트 타임을 갖는다. 예상만큼 달고 첫 맛은 가볍게 달고 중간엔 적당히 달고 밑에 아직 섞이지 않은 아몬드시럽은 깊게 달다.



나가메구로 전성기! 지금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의 감동을 조금 더 길게 갖고 싶어서, 여행 코너와 잡지 코너에서 몇 권의 책을 펼쳐보다 그렇게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오다이바로 이동한다. 신바시에서 갈아타기 위해 가는 길 이케부쿠로에서 아쉽게 먹지 못한 브래드 파파 딸기 슈가 있어 줄을 선다. 역시 먹어야 할 운명은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구나. 하루 패스권을 구매해서 오다이바 모노레일 탑승. 역방향 좌석이었지만 도쿄에서 처음 보는 바다라는 사실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멀리 레인보우 브릿지가 보인다. 밤을 기대하며, 해변으로 이동했다. 파라솔 좌석에 앉아 아이스커피 한 잔 하며 못 먹었음 억울할 뻔했던 크림이 그득 들어있는 딸기 슈와 딸기를 마저 먹는다. 바다 언제 봐도 이렇게 맑게 기분이 차오른다. 석양으로 가는 시간, 해변을 따라 아이폰에 담긴 노래들을 들으며 머무르다 다시 움직여 또 머물러서 시간을 잠재운다. 힐링. 오늘의 아니 이번 도쿄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는 오다이바 지금 여기였다. 도망치듯 온 도시, 기대도 없었고 지루할 걸로 예상하고 마음이라도 편히 머물다 가자했는데 그럼에도 느슨한 게 또 싫다가도 오늘 보이는 풍경에 따른 마음들이 참 감사하다. 자유의 여신상이 벚꽃하고 투샷 한 모습도 보고 하와이 유명 버거 쿠아아이나의 아보카도 버거를 먹기 위해 매장에 들어가 창가 쪽 자리에 앉아 굉장히 두툼하고 리치한 버거를 레인보우 브릿지의 조명을 감상하며 먹었다. 워낙에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한 게 조금 아깝긴 하지만 맛도 좋았고 특히 이곳이라서 더 완벽했던 게 아닐까 싶다. 특히 흘러나오는 음악이 올드팝이라 왜 이리 좋은 건지.








이럴 줄 알아서 하루용 패스를 샀다. 잘 못 내려서 또 감을 못 잡다가 다시 탑승해 대관람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투명 바닥을 타려니 30분 정도 기다렸더니, 차례가 왔다. 맥주 한 캔 사서 들어가고 싶었는데 혼자 대관람차 타보기는 또 처음이네. 아주 천천히 밤을 한 바퀴 돈다. 투명이라고 해도 어두워서 그런지 실감이 나지 않아 무섭거나 짜릿하거나 이런 부분은 전혀 없었고 나오는 음악이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과 내일은 어디를 가야 오늘의 평온함을 이어갈까. 벚꽃비는 또 맞고 싶은데 이런 생각들. 그리고 다이소에 들어가서 산 군것질을 쉬지 않고 먹었더니 입에서 단내가 차고 넘친다.


그래도 오늘 스타벅스 앞 벤치에 앉아있던 순간들과 나카메구로의 쏟아지던 벚꽃비와 오다이바에서 뭉클하게 좋았던 기분들.



매거진의 이전글 도쿄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