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MAR18
중간에 그냥 와야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색하게 지나갔다. 여행지 치고 가장 덤덤하고 딱 기대만큼의 날들을 보낸 것 같은데, 환전해온 돈이 조금 남아서 생각을 하다 또 이도시를 아니 그래도 교토는 언젠가 꼭 와야지 싶어 그냥 조금은 남기기로 했다.
사쿠라가와 공원의 벚꽃은 이제 끝을 향해 간다. 처음 도착해서 곧 만개하겠구나 를 기다리다 활짝 핀 모습을 보고 바람에 흩날리다 이제 그마저도 다 지나간 듯한 시간들이 참 벚꽃 짧구나 봄이 이렇게 마냥 가는구나 여러 생각이 든다. 이 동네 꼬마들은 오늘도 사랑스럽게 지내고 있다.
어제 다이칸야마를 가는 길에 후르츠 산도 맛집을 찾아놓아서 들렀는데, 긴 줄이 어마 무시해 포기를 했다. 맛집 탐방은 안 하겠다고 했지만 편의점 산도 말고 리얼은 하나 먹고 가야지 싶어 그래도 일찍 왔는데 벌써 매진이라며 오후 2시에 다시 오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3시간이 남았다... 에비수 역으로 다시 가는 길, 어제 지나치면서도 깔끔하다는 인상이 남는 커피숍에 들어가 Filter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오늘도 도쿄는 맑음이지만 어제까지의 더위가 가시고 바람이 다시 쌀쌀하다. 내가 아우터 안 챙긴 거 알았니. 안 그랬으면 시원하게 마셨을 텐데 따뜻한 커피를 다시 소환했다. 찬 바람이 불면서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이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여행지에서만 묻어나는 향이다. 기분 탓인가 싶다가도 후각이 예민한 편이라 아직도 아리송하다. 예전엔 미국에서만 나는 냄새인가 싶었다가 어느 계절에선가 어느 온도에 다다르면 이 향이 불어온다. 결론은 이 커피 도쿄에서 최고다. 내가 마신 커피 중에. 산미가 딱 알맞게 있으며 탄맛 전혀 없고 부드러우면서 고소하다. 추천점수 100을 주고 싶은 곳이다. 공간은 평범 분위기도 평범 위치도 보통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맛이 너무 좋은 Perch by woodberry coffee roasters 미리 알았다면 나가메구로나 다이칸야마 올 때마다 한 잔씩 할걸. 스태프들도 나이스.
도쿄는 벚꽃 보러 왔으니, 일요일에 즐겁게 보낸 치도리가후치로 산도를 기다리는 3시간을 보내러 왔다. 한국은 미세먼지 시름 중인데 이렇게 맑은 공기 아래 있으니 이 공기를 뒤로 하고 내일 간다고 생각하니 이게 조금 아쉽다. 도쿄는 원래 이렇게 날씨가 좋은가. 다른 계절은 어떨지를 몰라서, 날씨는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어제 다이소에서 산 토하토 마차 캐러멜콘 야금야금 먹으며 내 눈앞에 풍경이 실화냐 싶고 백번을 말해도 좋은 날씨는 찬 바람 적절하게 순환해주고 소풍 나온 사람들 제법 저물어 가는 벚꽃 아래에서 마냥 즐겁고 호수 물 색은 또 왜 이렇게 이쁜 걸까 사진으로 다 안 담긴다 생각도 하며 그래도 후르츠 산도는 놓치지 말아야지 싶은데 한 없이 앉아있고 싶었다.
다시 후르츠 산도 먹으러 2번을 갈아 타 ( 멀지 않은 거리인데 ) 후츠니푸르츠 도착. 2시 15분쯤 왔는데 이미 다들 기다리고 있는 중. 나는 산도만 살 건데, 이 집 음료들도 제법 유명한가 보다. 모랄까 소녀감성 뿜뿜하는 모양들이다. 정말 기다리는 사람들 연령대가 다들 소녀들이라 관광객 여러모로 낯설고. 점원이 나와서 내 앞에 소녀들까지 줄을 가르며 모라고 하는데, 제발 설마 못 먹는다는 건 아니지.. 앞의 소녀들에게 물어보니 먹을 수도 못 먹을 수도 있다는 거라고 한다. 다행히 내 앞의 상당수가 음료만 주문을 해서 내 뒤 몇 명까지만 산도 성공. 양심상 하나만 살까 했는데, 3번째 온 거니까 2개 샀다. 바로 코너를 돌아 하나 후다닥 먹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안 달아서 괜찮은 건지 안 괜찮은 건지 하하. 그래도 식빵이 나는 쫄깃하고 크림도 괜찮았다. 지나다가 있으면 먹어볼 만한 정도인 것 같다. 그래도 가격은 350엔이니까 착하지. 우리나라에도 푸르츠 산도들 인기 맛집 더 비싼 걸로 아는데, 맛을 못 봐서 비교는 감히 못하겠다. 그리고 바로 다시 Perch 로 입장. 하루 두 번 오기는 또 첨이네, 스벅 말고. 리뷰를 보니 라테가 유명하다고 해서 이번엔 아이스라테 주문해서 잠시 앉아 휴대폰 충전도 하고 정말 일정이 너무 없어서 모를 해야 할지 그냥 고민만 하다 연장이 아닌 원래의 계획대로 그냥 가도 됬겠다 싶은 맘도 굴뚝. 그래도 커피는 너무 좋다. 여기 왜 이렇게 맛있는 건가요? 진짜 해시태그 안 하는데, #도쿄커피 #perchbywoodberrycoffeeroasters
아카사카 주변에 괜찮다고 해서 갔다 아무것도 없어서 마저 산도 먹고 아크힐로 이동해서 벚꽃 보며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피곤해서 숙소 직행.
잠시 자다 일어나, 롯폰기 시티뷰 보러 갔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 아. 유자라멘 맛있어서 이것도 추천. 이치란 라멘보다 개인적으로는 훨씬 좋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유자를 너무나 좋아해서 나는 딱. 유주 소유라멘으로 주문하고 오일도 노멀로 하니까 안 느끼하고 담백하니 아 오늘은 커피 라멘 만족 큼.
아푸리 라멘.
마지막 밤인데, 이렇게 할 게 없다니, 서울의 금요일 밤 하고 똑같다. 난 불금이 사라진 지 오래라, 거의 졸금 졸도금요일 도쿄와도 똑같네.
내일 저녁 비행이라 시간도 널널한데 새로운 동네 한 곳만 가보고 내 소중한 도쿄 커피 마시며 마무리해야겠다. 보통 도쿄 오는 사람들은 어떤 매력에 그렇게 자주 오는 걸까. 그래도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그나마 좋은 계절에 벚꽃 시즌에 와서 본 것들이 황홀한데도 도쿄에 확 끌리는 점은 못 찾겠다. 사람들도 서울이나 여기나 우리 다 똑같지모 그냥 내가 여기저기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