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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틸 Aug 21. 2018

나긋나긋 Nha Trang

Good Morning Vietnam - May2018


슬리핑 버스를 타고 11시간을 뒤척이니, 나트랑의 새벽에 다다를 수 있었다. 타는 순간과 이동하는 순간, 내리는 순간까지 후회를 하기도 했었지만 막상 하루가 지나고 나니 괜찮은 경험이었고 다시 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리 체크인도 되지 않는 시간, 숙소 소파에 누워 여전히 뒤척이다 보니 햇빛이 로비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유명한 마사지 샵을 찾아 예약을 하고, 그 시간까지 또 뒤척이고 만다. 나름 꼼꼼하게 고르는 편이고, 거의 숙소를 실패하지 않았는데 완벽한 실패였다. 매트 옆에는 먼지 덩어리들이 굴러 다니고, 개미들은 쉬지 않고 행군하며 어깨를 넘지 않은 내 머리와 엄마 머리를 합쳐 놓은 길이감의 머리카락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어설픈 복층의 계단은 하통족인 나한테도 버거웠고, 연세가 있으신 엄마에게도 벅차기만 했다. 잠을 못 자서 멍하다 보니, 방을 바꿔달라고 해야 할지 이 공간에서 벗어나야 할지 그냥 2일 밤을 꾹 참아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눈만 껌뻑이다 나를 속인듯한 리뷰들을 다시 꼼꼼하게 보다 만다. 우선은 나가자.


숙소에서 멀지 않은 거리지만, 아침부터 굉장한 무더위라 발걸음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아마 우리나라의 김밥천국 같은 곳일 듯하다. 'cheap cheap'의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열심히 보고 있다. 모닝글로리만 있으면 된다. 선풍기 밑으로 앉아 해산물 볶음밥과 과일주스 2잔, 물 그리고 모닝글로리를 주문한다. 담백하고 맛있었다. 와이파이도 있다. 그렇게 몽롱한 정신에 한 끼를 충전하고 센스파로 향했다. 영어반 한국어반, 이 공간에서 통용되는 언어다. 만족도는 3.5/5 정도다. 역시 마사지는 태국인가?!!





덤 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기로 했다. 짧은 거리인데도 온 몸이 타들어가는 듯하다. 밖의 노점은 몇 군데 열지 않은 시간이었고, 덤 시장 내부는 거의 다 문을 열었다. 시원해서 나가기 싫지만 필요한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그늘에서 그늘로 뛰어본다. 나트랑의 태양은 정말로 강렬하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배가 고프다. 모닝글로리 파는 곳이면 어디든 들어가려 했는데, 덤 시장에서 나트랑 센터까지 오는 길에 4번째 식당에서만 공심채를 팔고 있었다. 딱 하나 남은 테이블에 앉아, 중국어로 적힌 메뉴판을 받았다. 완벽한 로컬 식당이다. 옆 테이블에서 먹는 생선 요리가 맛있어 보여서, 어떤지를 묻고 같은 요리와 모닝글로리 그리고 흰밥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옆에서 식사 중인 가족 중 어머니 분이 깻잎에 얇게 썬 생강 그리고 무슨 소스를 넣어 쌈을 싸주신다. 엄마가 먼저 드셨고 그다음에 나도 맛을 본다. 상큼하고 입맛을 돋운다. 여태껏 살면서 내 나라에서도 이렇게 타지에 나와서도 초면에 쌈을 받은 적이 처음이라 당황했다가 웃음이 나고 맛도 좋고 기억에도 남는다. 나트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옆 테이블에서 쌈을 선물 받은 일이다. 베트남도 정스럽다고 생각했다. 박항서 감독님의 후광일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디서든 좋아해 준 것도 같다. 드디어 우리의 요리도 나왔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의 가족분들이 식사를 마치며 일어선다.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고 이별했다.





나트랑 센터는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마트에 들러서 과일도 사고 커피도 사고 알로에 젤도 사고 이 나라에만 있다는 커피 콜라도 샀다. 푸드코트에 올라가 망고와 커피 콜라로 후식 배를 채운다. 통유리 밖으로 나짱의 진한 바다가 펼쳐진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데, 태양은 아직도 강렬하다. 시원하게 뻗은 야자수 그리고 예쁘게 조성된 비치 주변의 시설들. 나트랑은 참 깨끗한 해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나트랑은 리조트 전용 비치가 아닌 누구에게나 공평한 바다를 제공한다. 난 무엇보다 이점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인지 나트랑 바다에 나가면 관광객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참 많다. 정말 못 참겠으면 택시를 타면 되니까, 비치 모래에 다가가 본다. 발바닥을 3초도 신발 밖으로 내밀 수 없음을 알아챈다. 다시 바다 반대편 도로로 건너, 그늘로 숨는다. 졸음이 밀려온다. 더위에 서있는 것만큼 숙소에 가기가 두렵다. 숙소가 두렵다고 느낀 건 처음이다.





곯아떨어져 자다, Iced coffee simply original로 정신을 옮겨본다. 그럭저럭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우리나라의 카페베네랑 비슷한 느낌이 든다. 커피값은 내가 마신 베트남 커피 중에 가장 비쌌다. 우리나라 프랜차이즈랑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맛은 평범. 베이커리가 다양한 편이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나트랑의 야시장을 가로지른다. 길지 않고 복잡한 편도 아니다. 쓱 둘러만 보고 바다로 나섰다. 수제 맥주를 마시기 위해 Louisiane brewhouse and restaurant로 왔다. 이 곳도 거의 만석이다. 금세 칠흑같이 어두워져서 내 눈 앞에 있는 게 바다인지 그냥 새까만 모래더미인지 알 수가 없다. 수제 맥주 2잔과 피자를 주문했다. 맥주도 피자도 괜찮았다. 음악도 좋았고 낮에는 인색 하던 바람도 불어온다.

숙소로 돌아가기가 여전히 두려워 나트랑의 밤을 거닐어본다. 구석구석 이 도시를 더 알고 싶어야 하는 밤이다. 콩 카페도 보이고 해산물 거리의 흥정도 반갑다. 주량이 약해서 맥주 한잔이 아직 효력을 발휘한다. 매트에 누워 숙소를 예약한다. 하룻밤이라도 그냥 참고 잘 수가 없다 싶었다.


이른 아침에 체크아웃을 했다. 얼리 체크인 한 비용만 환불받았다. 탈출을 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옮긴 곳에 짐을 맡기고 이 가뿐한 발걸음으로 나트랑 대성당으로 향했다. 기분이 갑자기 급 상승해서 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로컬 시장을 돌아보며 과일 시세도 확인하고 누군가의 집에 예쁘게 핀 꽃 앞에서 사진도 마구 찍고 시장 안 꽃집의 낯선 꽃들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성당에 들어서니 바람이 스며든다. 땀은 제법 흘렸지만, 성당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장소의 특수성 때문인지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게 오고 간다.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짱 대성당에서 나트랑의 정경이 눈에 가득 찬다. 내용이 기억 안 나지만 기도도 들였고 동네 고양이와 같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만족스러운 아침이다.





빈컴센터에 들어와 망고와 파파야 그리고 과일음료를 샀다. 마트 입구에 테이블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오늘도 망고 삼매경이다. 망고는 시원해도 맛있고 미지근해도 맛있고 아침에 먹어도 밤에 먹어도 맛있다. 올해 한국의 더위가 어마무시해 이럴 거면 망고나 열려라라고 생각했다.




다시 걸어 롱썬사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힘드셔서 그늘에 쉬고 계시기로 했고 나는 제일 위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와불상을 보고, 안에 들어가 공손히 한 바퀴를 돌았다. 다들 선풍기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역시 기억이 안 나지만 소원을 빌었고 이 곳에서도 나짱의 정경을 감상한다.




롯데마트로 들어가니, 여기가 천국이다. 베트남에서 세상 제일 시원한 곳. 롯데리아에 가서 주스 한잔 마시고 본격적으로 마트 탐험에 나섰다. 역시 마트는 사랑이구나. 망고는 싸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공산품을 제외하고는 저렴한 편이 아니다. 다른 베트남의 물가에 비해. 그래도 구경할 것도 많고 쾌적한 느낌에 도무지 이 곳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택시 안도 숨이 막혀온다. 프랜차이즈 커피가 아닌 곳에 오고 싶었다. Rainforest는 이미 방송을 탄 곳이라 모든 층이 북적였다. 그래도 인테리어가 특별했고 그 인테리어 덕분에 느껴지는 시원함이 있었다. 제일 높은 층에서 카페 스어다를 주문하고 말끔한 자갈에 적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받았다. 이 공간과 참 잘 어울리는 소품이다. 옆 자리에 세상 귀여운 2살짜리 베트남 아기 덕분에 한참 즐겁게 쉬다 올 수 있었다.


이제 숙소에 가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그래도 적지 않은 여행을 해왔는데, 불편한 사람들이 있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뉴저지의 숙소를 제외하고는 늘 숙소에 만족하며 여행을 해왔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다. 깨끗하다 깨끗해. 개운하게 잠을 청한다. 푹 자기로 했다.



늦은 저녁 드레스 업을 하고 나트랑 유명 맛집으로 왔다. 드레스업이라고 해봤자 태국에서 산 원피스에 카디건이 다이지만 여행 통틀어 제일 멋 냈다. Lanterns 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다 있는 듯하다. 파인애플 돼지고기 볶음, 해산물 밥, 공심채 그리고 코코넛을 주문해서 푸짐하게 먹었다. 진정 맛집이다.

맞은편 뷔페에서는 클럽처럼 들썩이는 음악 들이 쉬지 않고 흘러 나온다.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타 가게의 음악을 배경 삼아 배부른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다. 나트랑은 360일이 날씨가 화창하다고 한다. 잠깐 스치는 비까지 포함해서 일지는 모르겠다. 길거리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는데 갑작스러운 비바람에 엄마는 모래가 씹혀 드시지 못했고 나는 둔한 건지 맛있게 먹었다.





오늘도 어두운 바다의 야경을 보며 한 잔 마시기로 했다. Sailing club 의 제법 푹신하고 넓은 소파 자리에 앉아 칵테일 두 잔을 주문했다. 보슬보슬 비가 오더니 굵직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다들 이야기를 하다 내리는 비에 시선을 고정한다. 나트랑에 오면 꼭 한다는 호핑투어나 빈펄리조트 방문은 못했지만 휴양과 적당한 관광이 있는 도시라 지루하지 않았다. 예전의 패키지까지 총 7군데의 베트남 도시를 방문했는데 이 곳이 3위다. 아직 더 가보고 싶은 도시가 많지만, 공평한 바다, 맛있는 음식, 너무 관광지 같기만 한 느낌이 아니라서 좋다. 숙소를 옮긴 일도 잘 했고 낯 선 이에게 쌈을 받아 본 일도 이 도시가 기억에 남을 이유다.




추천하고 싶은, 나트랑.

-  Cheap Cheap (restaurant)

-  Lanterns (restaurant)

-  Rosaka (Hotel)

-  나쨩 대성당

-  빈컴센터 / 롯데마트

-  Sailing club / Louisiane brewhouse and restaurant (drink)

-  Rainforest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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