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Morning Viennam - May2018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시간은 이렇게 빨리 흐른다. 벌써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니, 호찌민이 시작되었다. 무이네 숙소에서 예약한 풍짱 버스로 도시에 편안하게 도착했다. 이제 슬리핑 버스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거친 호찌민의 거리 위를 이리저리 돌고 돌아 숙소에 도착했다. 친절한 사람들이 있어 좋았던 이번 숙소는 에어비앤비 같아서 더욱 마음에 든다. 누군가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언제나 근사한 일이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에어비앤비의 일층에는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찌민'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좁은 골목길을 나와, 간단하게 빵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ABC Bakery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파바나 뚜쥬쯤인것 같다. 다양한 빵 종류를 보니 간단히 먹을 수 있지 않음을 알아챈다. 무엇보다 가격이 언제나 정량을 넘게 만든다. 세 종류의 빵과 커피를 받아, 한편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맛집을 검색해본다. 모닝글로리에 버닝 하느라, 막상 쌀국수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마지막 여행지인 만큼 제대로 된 쌀국수를 먹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빵이 전혀 소화되지 않은 채, 포뀐에 또 착석했다. 닭 육수로 국물을 만드는 곳이다. 매운맛이랑 가장 심플한 메뉴를 골랐다. 배가 전혀 고프지 않은 상태로 먹어서 그런지 반도 먹지 못했고, 맛도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쌀국수를 먹는 어디든 감동을 하며 먹었고, 런던에서도 미국에서도 가난한 내 호주머니에서 맛있고 든든하게 먹던 음식은 항상 쌀국수였는데 갑자기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도심 한가운데 공원도 지나고, 아기자기한 팬시 용품점도 들어가 보고 예쁜 그라피티도 구경하면서 거리 구경을 하니 커피가 생각이 난다. 맥도널드에서 카페 스어다를 판다는 광고판을 보며 지나다 맥도널드 있으면 들어가야지 했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을 해줘서 내겐 베트남 커피=카페 스어다를 한 잔 주문해서 엄마랑 나눠 마셨다. 맥도널드의 현지 전략 칭찬해, 맥 카페 표 쓰어다 맛도 좋고 에어컨도 빵빵하니까 참 좋구나.
성당 가는 길에 cafe apartments 가 보인다. 오래된 아파트에 트렌디한 카페들과 공방들이 입점된 곳으로 호찌민에 오면 꼭 가보고 싶던 곳 중 하나였는데, 우선 봐야 하는 곳들에 막상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일층의 서점에 살짝 들러, 더위만 잠시 식힌다. 소설 표지들이 동화적인 느낌들이 많아서 한 장 담았다. 아 이 나라도 영어교재는 참 많더이다.
호찌민의 동상 앞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호찌민의 명언으로, 자소서에 자주 쓸 만큼 좋아했던 구절인
그렇게 살고 있나 생각 좀 하다, 드디어 차례에 영광스럽게 같이 한 장을 남겨본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 중 하나인 사이공 우체국에 들어가서 바쁘게 업무 중인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둘러보고 바로 옆 성당으로 건너왔다. 이런, 오늘 관람시간은 종료되었다. 바로 앞에 갤럭시 스토어가 있어서 엄마폰 충전하며 잠시 쉬어갔는데, 호찌민 미남미녀가 있는 곳이었다. 므흣.
푸드코트로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는 길에 괜찮은 로컬 커피가 있어서 들어갔다. Thuc coffee로, 나중에 구글 맵으로 보니 지점이 제법 있는 곳이었다.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커피 맛도 무난했다. 사이공 몰로 들어가 푸트코트로 향한다. 다양한 음식점들 중에 한식을 파는 곳들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모닝글로리 먹어야 하니까 37 street란 곳에서 조개탕,해산물밥 그리고 모닝글로리 주문해서 만족스럽게 식사했다. 다음날도 여기서 한 끼를 해결했는데, 맛도 좋았고 깔끔해서 아주 느긋하게 식사를 마쳤다.
벤탄시장의 과일은 비쌌다. 물건들도 눈에 띄는 게 없어서 그냥저냥 좀 돌아보다 여행자 거리의 밤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직은 거리가 완전하게 들썩이는 것 같지 않다. 어디를 들어가야 할까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다닥다닥 모든 가게들 앞에 의자들이 어느새 그득그득해졌다. 완전 로컬스러운 곳도 좋았고 조금은 세련된 분위기도 궁금해졌고 선택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그냥 더 이상 못 걷겠다 싶을 때, 호가든 2병 사면 3병 준다고 해서 그래 이곳이다 하고 앉았다. 안주는 모닝글로리가 없어서 아스파라거스 같은 채소 시켜서, 엄청 분위기에 취했다. 카오산로드만큼은 아니었어도, 호찌민 여행자의 거리도 흥스러운 곳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호가든 두병에 기분이 정점 한 번 찍고 내려왔다. 마음은 밤도 새울 수 있을 것 같지만 내일의 일정을 위해 숙소로 일부러 천천히 돌아 들어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엄청 굵은 비를 보며, 여행자 거리에서 더 있지 못한 아쉬움을 식힐 수 있었다.
반미 362에서 푸짐한 반미를 다 먹지 못한 채 일어섰다. 제법 커서 하나 시켜서 둘이 먹어도 되겠다 싶다. 이전에 본 반미들이 길거리에서 편하게 접했다면, 이 곳은 완벽한 반미 프랜차이즈로 서브웨이 식이다. 직원들도 사랑스러웠고 종류도 다양해서 아침을 잘 채웠다.
전쟁기념관 가는 길에 큰 마트가 있어서 잠시 또 구경을 하기로 했다. 연유를 한국으로 모셔가기 위해 꼼꼼하게 비교해본다. 망고가 없어서 이름 모를 과일과 요거트를 사서 마트 앞 계단에 앉아 적당히 먹었다.
드디어 호찌민 여행의 일 순위인 전쟁기념관에 들어섰다. 그 시절 사용되었던 전투기 앞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일층의 전시실부터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맨 위층의 전시실에서부터 보면서 내려오는 게 맞는 방법이라는데, 그때는 몰랐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우리의 역사와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이 이 전쟁에 참여했던 역사 때문에 관람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남북전쟁에 대해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먹먹한 마음에 힘들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는 이층에 올라서면서부터 계속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지라는 분노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과 흔적 없이 사라진 마을 등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힘든 장면들이 끝도 없어 이어졌다. 각종 실험으로 어떤 결과가 만들어졌는지, 이 참혹한 상황을 이렇게 볼 수 있을지는 몰랐다. 막연하게 알던 베트남 전쟁과 이 곳에 와서 이렇게 본 베트남전 아니 항미전쟁은 또 달랐다. 대체 왜 우리가 이 전쟁에 참여해야만 했던 걸까. 마지막 전시실을 나서며, 축 쳐져버린 기분에 벽에 기대에 앉아 유리로 된 천장을 바라봤다.
10분 정도 거리에 통일궁이 있었다. 순서로는 통일궁을 보고 전쟁기념관을 보는 게 맞다. 전쟁 기념관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통일궁에 있는 동안 본 장면들은 그냥 붕붕 떠 다닌다. 당시의 긴박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입구에 하이랜드 커피에서 마음을 좀 진정시키기로 했다. 디저트 사면 커피를 싸게 마신다고 직원이 영업을 한다. 잠시 고민했다. 카페 스어다 한 잔과 리치가 들어가는 음료로 이층에 앉아 한가로운 통일 궁 앞의 풍경을 보고 옆 옆 자리에서 면접이 한 창이라 잠시 엿듣기도 했다. 마음이 진정되어 책거리로 나선다. 작은 골목 안에 서점들과 북버스 그리고 중고 서적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호찌민의 또 다른 풍경이었다. 테마들이 귀여웠다. 문득 호찌민의 강은 어떨지가 궁금해져 멀지 않은 선착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강가의 작은 공원에는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 중이었다. 오늘 날씨가 흐린 편이라, 하늘도 강도 예쁘지 않았고 강 저편으로 공사 중인 건물들만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호찌민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중인가 싶었다.
길을 건너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단 말인가. 마침 퇴근길에다 도무지 보이지 않는 횡단보도까지 엄마랑 발만 동동 구르고 있기를 20분째다. 호이안, 나트랑 그리고 무이네에서는 길 건너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는데 호찌민에서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 같았다. 현지인에 묻혀 어떻게든 건너보려 했는데, 그들만 잘 건너갔다. 마침 차가 한 대 멈췄고, 그 안에서 현지인과 관광객 둘이 내린다. 현지인이 능숙하게 오토바이와 차를 컨트롤하며 관광객들을 데리고 건널 채비를 한다. 인사를 건네며 바로 옆으로 붙었다. 정신이 쏙 빠지는 것 같았다. 다행히 반대편으로 무사히 왔고, 고맙다고 하고 헤어졌다. 오늘 저녁도 어제 먹었던 메뉴 그대로 37 street에서 해결한다. 하루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작별이다. 귀여운 할머님께서는 좋은 리뷰를 부탁하신다. 네, 완벽하게 리포트 썼습니다. 미리 찾아 놓은 공항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언제 버스가 오는지를 확인 중이다. 아까 여기서 타면 된다고 알려줬던 말레이시아 친구가 아무래도 여기 아닌 것 같다고 다시 확인해보라고 한다. 공항버스 정류장이 바뀌는 건지, 구글맵이 바뀌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잘 마무리할 것 같았던 여행의 마지막은 공항버스 정류장 찾느라 한참을 또 진을 뺐다. 사실 그랩을 타도 얼마 안 들고 택시 타도 얼만 안 든다고 하는데, 엄마폰에 그랩 깔기도 귀찮고 택시 타기도 억울하다. 진짜 캐리어 끌고 열심히 개고생 한 끝에 진짜 정류장을 찾았다. 옆에서 비가 오느라 장사를 접은 현지인이 공항에 가느냐고 손짓으로 공항을 설명한다. 맞다고 하니, 기다리라고 하다 저기 온다고 하다 아니다라고 하더니 또 있다가 저거 타라고 한다. 진짜 베트남과 그리고 친절했던 베트남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쾌적한 1000원짜리 공항버스에 탑승했다.
Good bye Vietnam :)
추천하고 싶은, 호찌민.
- 전쟁기념관 ( 3층의 1전시실부터 보며 내려올 것 )
- 통일궁 ( 전쟁기념관 전에 볼 것 )
- 사이공 우체국
- Thuc coffee
- 37street ( saigon mall )
- ABC bakery
- 여행자의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