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 커피에 대한 태도
연유들을 조심스레 포장해왔다. 베트남 커피는 연유가 있어야 하니까, 당분간은 그렇게 마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도시에 돌아와 마시는 커피는 연유가 없어도 차고 넘치니, 조금도 비슷하지 않은 카페 스어다를 마시는 일은 포기하기로 했다. 다시 서울에서 커피를 시작한다.
물개와 커피를
Life is too short for the bad coffee
by 프릳츠
프릳츠의 테라스가 좋은 계절이다. 상큼한 코스터를 받아, 이에 어울리는 캐노피 아래에 앉는다. 적당히 들어오는 햇살이 좋았다. 바람도 제법 불어주니, 의욕이 생기는 계절이었다. 아마 오래가지 못했다는 게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인데, 그렇게 계절은 빠르게 흘러간다. 지치지 않고 허탈하지 않은 계절 말이다.
이 쪽으로 온 김에 걸어 걸어 다른 프릳츠에 도착했다. 앤틱 한 분위기에, 아기자기함이 더 부각된다. 유명한 샌드위치는 아직이라 아쉽다. 아마 또 오기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내년을 기약해 볼까 한다. 예쁜 잔에 받아서 좋았다. 사고 싶던 휴대폰 케이스는 다행히 매장에 없었다. 내 텅장을 위한 프릳츠의 배려.
마지막 프릳츠에 온 날은 txt 에도 들른 날이었다. 서울에 있는 모든 프릳츠를 다 가본 6월이었다. 마당 안에 참새들이 세상 귀여웠다. 왜 자꾸 이때가 좋았지라는 생각이 차고 넘칠까.
공간이 분위기를 추출한다.
브림 커피는 공간이 특별하다. 아내를 위한 소중한 작업실이 커피숍 안에, 중심에 위치한다. 작업하시는 모습을 살짝 엿보기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이 그대로 투영되는 공간이었다. 다들 노리는 소파 자리도 좋았고, 싱그러운 초록색들의 화단도 좋았다. 젤리커피와 화이트 브림을 마셔봤는데 두 잔다 훌륭했다. 가까웠다면 무심하게 식물을 보러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실은 등지고 앉는 게 내 자리였다.
송리단길에서 제일 가보고 싶던 곳. 가배도는 나를 다른 시절로 데려다주는 것 같았다. 비좁지 않아 좋았고, 이름에서 느껴지는 정성이 느껴져서 만족했다. 흔한 것에 익숙하다 조금만 달라져도 불편하다 싶으면서도 그 느낌을 찾아가는 것 같다. 현관문을 열기까지의 묘한 느낌이 제일 인상적이다.
멀지 않아서 빨리 가볼까 싶었는데, 역시 마음과 몸의 시간차는 제법인 듯하다. offset_거리를 두다. 약간의 간격을 두다였었나. 적당한 간격,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 침묵, 적당한 어색함 이런 단어들에 마음이 동요한다. 시그니처 메뉴를 마셨고, 책이 추천된 카드 한 장을 받았다. 책갈피로 사용 중이다. 여기 좋다. 특히 잔잔하게 고여 있는 물에 비친 평범함이 좋다.
성수동이 Brooklyn이라면,
자양동은 flat white 였다.
40분은 기다렸나 싶다. 기다리는 곳은 이 공간의 컬러인 듯한 블랙이 가득했는데, 마음에 콕 찍은 자리에 앉았더니 맑은 블랙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심 저격하는 메뉴가 가장 인기인 듯했다. 그래도 우리는 커피맛이 궁금해 무난한 메뉴를 주문했고, 이름처럼 그레이트 커피의 맛은 훌륭했다. 아쉽지 않게 머물렀다. 바리스타 분들이 프로페셔널하다 느꼈고,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관리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카멜은 언제나 사람이 많구나.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지. 청담동에 2호점이 생겼다고 한다.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에 진출한듯한 이 느낌은 몰까. 그럼에도 나는 브루클린!!
도쿄에서 본 커피숍과 많이 닮아 있던, 로우커피스탠드. 공간 활용의 정석이 아닐까. 가격도 착하고 좋다. 담백하다는 가치는 영원하길.
글로우는 나의 소중한 장소였는데, 계절의 탓과 이런저런 이유로 너무도 오랜만에 테라스에서 햇살 만끽 중이다. 차양이 사라져, 전신이 적절히 뜨거워진다. 그리고 노곤해진다. 노곤해도 되는 토요일이다. 자주 못 와도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콕 장소 중에 하나이다.
유명하구나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문을 열지 않았던 곳이었다. 동네 친구의 추천으로 이제야 왔더니 나만 빼고 다 마시고 있었던 칼레오커피. 플랫화이트가 내 커피의 우선순위는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무조건 마셔야 하는 엄청난 맛이었다. 그리고 늘 당떨리는 내게, 바닐라 시럽은 필수이고요. 맛으로는 챔프와 견줄만한 곳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왜 이제야 알았지.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기분에 지배당한 날엔,
커피라도 홀짝이자.
가라앉는 기분에 무작정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탄 동안은 기분들이 그냥 멈춘 상태였다. 이 곳 가까이 정류장에 내렸을 때, 짙은 어둠 속에 낯섦이 몰아쳤다. 맞은편 정류장에서 다시 되돌아갈까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하도를 지나 공원의 모습이 나오기까지, 참 가라앉는 날이었다. 드디어 눈 안에 들어오는 환한 커피냅로스터스 의 모습에 마음이 좀 풀린다. 예쁘게 꾸며진 장소라 눈 둘 곳이 많다. 처음 본 컵 뚜껑이 마시는 사람에게 너무도 편하게 느껴져, 그렇게 홀짝인다. 친절한 장소, 훌륭한 커피, 인체공학적이라고 혼자 감격한 컵모양. 혼자 히죽이다 나온 밤이다.
자주 연락하진 않지만, 가끔 연락 없이 만나곤 했다. 여전히 잘 지냈고 한결같았다. 그런 친구를 잃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겐 힐링의 장소이자 마음이 혼자 울적할 땐 그냥 맛있게 배를 채우고 나왔던 그런 소중한 친구가 사라졌다. 얼마 전 갔을 때, 건물주인 할머님과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분명히 새로 오는 건물주와 합의가 돼서 계속 장사를 해도 된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묻지 않았다. 혹시라도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꼭 알려달라고. 건물은 새롭게 변하고 있었고 임대문의라는 포스터만이 횡량하게 걸려있었다.
터벅터벅 허탈한 마음으로 한 정거장을 걸었다. 조금은 외진 곳인데, 분위기가 아늑해서인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가득하다. 커피를 시켜 자리에 앉았더니 친구가 커피보다는 차를 추천한 톡을 지금에야 읽었다. 그렇다. 다른 테이블에 거의 차가 올려져 있던 이유가 있었다. 이 동네에 오는 유일한 이유가 이렇게 사라졌구나. 혹시 모른다. 건물이 완공되면 다시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지도, 우선은 완공날짜라도 물어볼걸 그랬다. 매번 한 발 늦는다. 그래서 다시 올지 모르는 공간다반사에서 인생 다반사구나라고 한 모금 크게 들이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