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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틸 Nov 29. 2018

런던 커피 | Flat white

커피의 안부가 궁금해진 날


기록 옮기고 더하기-


 캐럴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 한 해를 벌써 보낸다는 생각에 헛헛해지고 만다. 분위기 탓인지 괜히 런던이 생각나서 그곳에서 마셨던 커피들을 브런치로 옮기고 싶었다. 어느 날은 모가 그리 좋은지 알 수 없는 포인트에 행복해졌다, 금세 마음이 허탈해지곤 했다. 이 도시에서 그 마음의 폭이 가장 큰 날들이 이어졌다. 아니 정확히 가라앉는 날이 많았다. 늘 행복하진 않겠지만 묘하게 쓸쓸하고 서늘하던 여행이었다. 보름 동안 마셨던 커피들이 그나마 나를 이 도시에서 휘청이지 않게 붙잡아줬다.



 도착하고 3일째 드디어 첫 런던 커피를 마주했다. 도시의 명성답게 비가 종일 내린 날이었다. 세련된 공간 멋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첫 플랫 화이트. 막 런던에 온 관광객에게 충분히 비를 배경 삼아 마시기 좋았던 기억이다.  

| Flat white @berwick st, Soho







 나 역시 누군가에겐 좋았던 동행이었을 것이며,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여행 중에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기억하다 다시 기억을 물린다. 하루의 만남과 정보 교류 정도의 연락을 했었고 기억을 미룬다. 참 아이러니하게, 굉장히 좋았던 사람의 얼굴도 희미해져 잘 기억이 안나는데,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음에도 각인이 된다. 그 동행과의 커피는 우연히 들어갔던 곳에서 마셨다. 알고 보니 런던을 대표하는 곳 중 하나. 이 곳의 심볼인 간판에 걸린 자전거가 너무도 멋있었다. 공간 안에서 우리는 겉도는 대화를 하며 그렇게 시간을 나눴다. 별개로 분위기가 충분했고, 풍미가 느껴졌다. 사실 그 짧은 하루가 얼마나 기억이 남을까 싶다가, 순간에 압도되고 마는 모든 것들을 쥐고 살아간다.

| Tap coffee No.114 @kings cross







 당시에 런던을 다녀온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했던 곳이다. 일 순위의 곳이었는데 관광지 동선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일주일 정도 지나서 다녀왔고,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방문했다. 늘 혼자여서 였는지, 웨이팅 없이 쉽게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었다. 한중일 화합의 장소이기도 하다. 크루아상은 보통의 맛이었고, 커피는 좋았다. 반층 정도 올라가는 공간의 구조가 아늑했고, 바리스타들이 유쾌했던 기억이다. 합석해서 커피 마시는 새로움도 괜찮았다. 내겐 너무 추웠던 런던에서 포근했던 곳 중 하나. 거의 모든 런던 커피숍들과 마찬가지로 오후 6:30분이면 문을 닫음.

| Monmouth coffee @monmouth street







 호스텔을 떠나는 날이다. 1 존에만 있다가 에어비앤비가 있는 2 존으로 가던 날, 호스텔 근처로 눈여겨보던 커피숍에 드디어 입장했다. 역시 런던 특유의 감성을 담은 외관은 참 볼수록 좋다. 창 밖에서만 보던 바리스타들의 모습을 직접 보던 날. 아몬드가 들어간 라테와 피치 파이를 주문했다. 베이커리가 맛있었고 국사발만큼 준 커피는 살짝 아쉬웠다. 바리스타분의 허락하에 커피 만드는 모습을 담았다. 친절했던 바리스타와 이층에서 만난 살짝은 들뜬 관광객의 사진을 부드럽게 담아줬던 로컬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커피잔의 색과 클래식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의 공간이 머무는 동안 계속 둘러보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주일 동안 매일 올 걸 그랬지. 늘 마지막에 아쉬움을 움켜쥔다.

| WORKSHOP COFFEE CO. @fitzrovia






 소호에 갔다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장소. 큼지막한 통유리 안에 일인 일 랩탑으로 열심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던 모습들에 끌렸다. 이 브런치에 적은 곳들이미 많이 소개된 장소들이라면, 이 곳은 당시에 내가 찾은 보석이다. 런던에 또 가게 된다면 우선 가고 싶은 곳. 일층도 지하도 만석이라 2번 다 기다렸다 앉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복잡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특히 나를 끌어당긴 창가 자리는 완벽하게 뒤와 분리된 느낌을 주고, 거리에 독립적으로 앉아 있는 기분을 선사했다. 일요일에는 콜롬비아 로드 플라워마켓에 들렀다 이 곳을 찾았다. 직원분이 꽃 너무 이쁘다며 환한 미소와 함께 설렘을 주기도 했다. 쇼디치에서 산 초콜릿도 이 곳의 우드 트레이에 살짝 곁들이니 감성 폭발샷이 터졌다. 런던에서 찍은 베스트 컷이다. 창문 밖에서 그림 같은 모습에 이끌려 들어가, 그 한 폭에 추억까지 담은 예쁜 장소.

| Timber yard @covent garden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참 많은 것들을 두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도 으뜸은 사람. 내게 충분한 감정들을 나눠준 사람들이 있어서 여행은 어떻게든 흘러가는 것 같다. 런던에서는 나의 호스트가 일주일 만에 접고 내 도시로 가고 싶은 마음을 매일매일 다독여 주었다. 프랑스 사람이었던 나의 런던 호스트. 지금껏 만났던 호스트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 최고의 호스트였던 풍부한 감성을 가졌던 사람. 런던을 떠올리니 호스트가 너무 궁금해진다. 그가 제일 사랑했던 런던의 공간이 코톨드 갤러리가 있는 서머셋 하우스이다. 이제는 내게도 런던에서 가장 근사하고 우아하며 최고의 장소이다. 귀했던 맑은 날이었다. 겨울을 부르는 쌀쌀함에 밖에 거니는 게 쉽진 않았지만 명작들을 감사하게 즐긴 후, 하우스 안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한 잔 주문해 테라스에 앉았다. 거의 플랫화이트만 마시다 처음 즐긴 모카의 진함이 여행 끝자락의 노곤함을 달래주는 것 같다. 호스트가 힘주어 말한 사랑스러운 장소에서 마셨던 커피 참 좋다. 시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내가 채워가는 시간임이 분명해진다.

| Tom's deli @somerset house







 확연히 다르다. 탐스 델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한 맛과 모습이었다. 테이트 모던에 가는 길에 만난, 내가 정한 런던 커피의 룰의 공식을 깨준 곳. 굴다리 밑에 알록달록한 외관의 이 곳은 전문적인 느낌보다는 서양 친척집에 방문했다가 커피 한잔 마시러 온 느낌이다. 바로 옆에는 소극장도 있는데, 나를 제외한 서로가 다 아는 사이인 곳이기도 했다. 커피와 소시지 베이글이 2.5파운드로 당시 환율 1800원 가까이 었던 치명적인 물가에서 나를 웃게 해 준 장소. 특별히 들어간 재료가 없었는데도 베이글 맛도 커피맛도 좋았었다. 템즈강의 찬 바람이 가까이 있었지만, 이 곳은 온순한 공기로 가득했다. 이 장소의 주인이던 분의 온기도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안부를 전하고 싶다.

| The union theate and cafe @union st







 바리스타이자 이 공간을 이끄는 분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었다. 자부심과 프로페셔널함에 대한 기억이 지배적이다. 친절하셨고 직원들에게 틈틈이 친절을 교육하셨다. 직원들이 안 친절한 게 함정이다. 인테리어도 블랙 앤 화이트로 심플, 고급, 세련됨 그렇게 이제는 익숙한 런던 커피숍의 분위기. 천장이 높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채광과 조명이 익숙하다 싶다가도 디테일의 조화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전한 플랫화이트와 아몬드 크루아상 그리고 마멀레이드 잼을 곁들였다. 내 옆에 앉았던 이는 드디어 자신의 작품을 오퍼 받는 다고 들떠있었다. 나도 축하를 건네고 싶었지만 이 도시에서는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고 소극적이 되어버려 눈을 돌렸다. 오늘도 라테아트라는 작품을 조용히 홀짝인다.

| Kaffeine @fitzrovia







 오늘이 드디어 서울로 돌아가는 날 D-2가 되고 말았다. 돌아가고 싶던 순간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 와중에 커피는 열심히 마시고 다녔다. 런던의 커피 공간 마지막은 밀크바이다. 당시에 한국인 바리스타분이 계셔서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던 곳. 얼마 전 인스타에서 그때 바리스타분이 제주도에 런던풍의 커피숍을 오픈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 또한 신기하고 제주도에 간다면 꼭 방문각. 밀크바에서도 플랫화이트와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조금 지나니, 한국인 바리스타분이 오셔서 인사를 나눴다. 옆에 계시던 다른 바리스타분이 한국인이냐고 놀라던 뉘앙스가 아직도 생각이 나며 웃음이 난다. 스스로는 전형적인 한국 여자 사람인데, 글로벌한 무드를 가졌다고 생각하련다. 개인적으로 느낀 온도의 차이였을 수 있지만 참 부드러운 곳이었다. 아기자기하며 정감 가는 공간이었고, 내 마무리를 하기에 좋았던 커피였다.

| Milkbar @soho





 

 호스트의 집에 머무는 동안은 역 근처 스타벅스에서 꼭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기도 하고, 하루의 시간이 절단된 것 마냥 아무 일이 없기도 했다. 시간들을 끄집어내며 충실히 여행하려 했던 것 같다. 스스로 힘이 들어가기도 했고, 이내 엉켜버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도 역시 그리워지는 풍경들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starbucks i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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